[ 이슈추적 ] 2001년09월26일 제378호 

파월 vs 윌포위츠

테러와의 전쟁 둘러싼 전략·전술상 이견, 미국내 강온파 사이의 갈등도 증폭되는가


사진/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미국 안보회의. 월포위츠와 파월등 내부 강온파의 갈등속에서 전쟁개시와 관련된 의견조율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AP 연합)


‘테러와의 전쟁’ 시기와 범위, 강도를 둘러싸고 미국 강온파 사이의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한쪽에는 ‘걸프전의 영웅’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과 그를 따르는 미 국무부 관료들이, 다른 한쪽에는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을 비롯해 그에 못지않는 매파인 폴 윌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등이 자리잡고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일찌감치 전쟁개시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주춤하고 있는 이유는 이런 내부의 이견조율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 공조 의식하는 파월

<뉴욕타임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등은 20일, 21일, 22일 하루 간격으로 부시 행정부 국가안보팀 내 강온파 사이의 불협화음을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겉으로 보기에는 9·11 테러 대참사 이후 부시 행정부 내 외교안보팀이 그 어느 때보다 단결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들 사이에 긴장이 흐르고 있다”고 썼다. 이런 긴장은 전쟁의 대외명분을 쌓기 위해 시간여유를 갖고 동맹국과의 국제공조체제를 우선 구축해야 한다는 파월쪽과 대통령과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대규모로 신속하면서도 단호한 군사행동을 즉각 취해야 한다는 펜타곤쪽 주장이 맞서면서 생겨난 것이다.


사진/ 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SYGMA)


파월 장관은 테러집단과 그 지원국가에 대한 공격을 감행할 때도 제한적인 군사행동을 취하면서, ‘좀더 덜 전통적인 도구들’ 즉 정치·외교·금융·법적 제재조처들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고 은 최근 전했다. 군사적 제재조처는 날이 무딘 도구이므로 “이번 테러전쟁이 전체 이슬람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는 미 행정부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도 제한적인 군사공격을 감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국제적인 공조를 쌓기 위한 외교적 노력에 가장 힘을 쏟아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또 파월 장관은 테러전쟁이 세계경제에 끼칠 영향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는 테러전쟁이 길어질 경우 과연 세계 각 나라가 지금처럼 계속해서 지지를 보내줄지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쟁이 짧은 기간 안에 끝난다면 처음에는 모두들 참아내겠지만 그렇지 않고 경제상황만 나빠져 당장 실업자가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다면 누가 전쟁에 관심과 지지를 보내겠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파월 장관의 자세를 그가 합참의장 시절 제시한 ‘파월독트린’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결과로 보고 있다. 그는 이 독트린에서 무력 개입은 최후의 수단으로 외교 경제적 수단을 동원해 분쟁을 해결하려다 끝내 실패할 경우에 한해 쓰여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참에 이라크도 치면서 사담 후세인까지 제거해야 한다”는 윌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등 강경파의 주장에 대해서도 파월은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다. 파월 장관은 만약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면 중동 전체에 반미정서를 부채질해 부시 대통령이 필요로 하는 중동국가들의 지지를 잃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파월 장관은 우선 뉴욕과 워싱턴에 대한 동시테러 용의자인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테러조직 알 카에다 제거를 강조하는 반면, 윌포위츠 부장관은 이번 기회에 테러배후국으로 지목돼온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까지 타도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윌포위츠 부장관을 포함한 다수의 보수세력들은 비록 이번 뉴욕과 워싱턴 테러공격과는 연관이 없다 하더라도 사담 후세인을 권력에서 축출하기 위해 단호한 조처를 내려줄 것을 부시 대통령에게 촉구하는 서한을 19일 보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하고 있다.

폴 윌포위츠, 럼스펠드 능가하는 보수


사진/ 폴 월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SYGMA)


이처럼 이번 테러전쟁을 둘러싼 강온건파 논쟁에서 단연 가장 눈에 띄는 있는 인물은 폴 월포위츠(57) 국방부 부장관이다. 부장관 임명 직전까지 존스 홉킨스대학 국제대학원(SAIS) 원장을 지냈던 그는 예일대학 교수를 거쳐 지난 1977년 국방부 지역정책담당 부차관보로 관계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그뒤 그는 국무부 정책기획실장 및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인도네시아 주재 대사 그리고 걸프전을 전후해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을 역임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테러전쟁 준비에 대한 그의 말과 행동을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쟁의 시기와 범위와 관련해 보수세력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시 보수정권에서 가장 입김이 센 인사의 하나로 알려진 그는 요즘 럼스펠드 장관을 훨씬 능가하는 보수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사건건 파월 국무장관과 맞서는 한편, 보수세력의 규합에도 가장 앞장서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파월 장관도 그와의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이 국제정서와 관계없이 미국의 힘, 우월성, 일방주의에 기초한 단독행동을 옹호하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중시하는 진영을 이끈다면 파월 장관은 상호공존과 국제 공조를 중시하는 진영을 대표하고 있는 셈이다. 제프리 켐프 전 국가안보회의(NSC) 간부는 “한쪽은 미국이 충분히 강경하지 않기 때문에 강한 지위를 상실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으며 다른 한쪽은 미국이 강해지는 유일한 길은 동맹국들과 협조하고 단독 행동보다는 동맹국들을 설득시키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부시 대통령은 이번 강온파들의 목소리 가운데 어느 쪽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지금까지의 여러 정황으로 보아 파월 국무장관의 주장이 더 먹혀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부시 대통령이 우방국 정상들과 하루가 멀다하고 만나 국제공조체제를 다지는 한편, 최근 국가안보회의에서 이라크를 공격하기보다는 우선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테러조직 알 카에다에 대한 공격부터 하기로 결정한 일 등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소 파월 국무장관의 반대편에 섰던 딕 체니 부통령이나 럼스펠드 국방장관도 이라크 공습과 관련해서는 파월의 입장에 동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측근은 “럼스펠드가 이라크를 이참에 혼내줘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나 초기공격 목표에서는 이라크를 뺐다”고 말했다. 파월 장관은 그간 북한 및 이라크정책, 교토의정서 거부, 남아공 더반 인종차별회의 대표단 철수 등과 관련해 행정부 안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으며, 일부 측근들이 그가 부시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할지 여부에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부시 정권 내에서 입지가 좁아진 것으로 알려져왔다. 이번 테러와의 전쟁을 계기로 그가 다시 걸프전의 영웅으로 부활할지는 아직 지켜볼 일이다.

파월이 주장하는 제한전이든, 아니면 전면전이든 테러범과 그 지원세력에 대한 공격은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부시 행정부는 미 본토에 대기중인 전투기와 항공모함을 중동해역에 급파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움직임 등을 근거로 조만간 1차 공습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 스스로 밝혔듯이 이번 전쟁은 장기전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여론 등을 감안해 우선 공격을 감행하겠지만 지상군을 포함한 추가 병력배치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장기전으로 접어들수록 미 강온파 사이의 전략과 전술을 둘러싼 갈등도 증폭될 확률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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