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섹션 : 이슈추적 | 등록 2001.08.08(수) 제37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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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공여지 반환, 지금 장난 하나? 도심 전용공여지는 쏙 빠진 주한미군의 생색내기 숫자놀음… 인근 주민들의 고통은 더욱 심화된다
“공여지를 넘겨준다고 발표한 게 엊그젠데 우리 논에는 왜 또 못 들어가게 하는지 모르겠어. 가뭄이 하도 심해서 양수기로 물을 2km나 끌어대서 겨우 해갈해놨더니만…. 보름 동안 못 들어가는 바람에 약도 못 쳤어. 이제 벼농사는 망했어.” 8월3일 오전 10시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미2사단 훈련장 ‘불스 아이Ⅰ’ 영내 자동화기기 사격장인 ‘오클라호마’ 근처에서 만난 농민 이정우(68)씨는 “분통이 터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7월20일 이 사격장에서 훈련중이던 미군 여러 명이 사고로 다친 이후 근처 논에 들어가려는 한국 농민들을 보름 동안이나 막은 데 대해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이씨 논으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는 미군쪽 봉고 차량과 미군부대 요원 2명이 논에 들어가려는 농민들을 막고 있었다.
보름동안 자기 논에 못 들어간 농민들
미군쪽에서는 불발탄 사고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농민들 가운데는 “미군이 한꺼번에 그렇게 많이 다친 것으로 미뤄 첨단 신형무기를 시험해보다가 사고를 입은 것”이라고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 이씨에 따르면 이곳에는 일본 오키나와 주둔 미군이나 하와이 주둔 미군들까지 원정을 와서 훈련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미군은 공여지에 대한 배타적인 사용권을 가지고 있어 훈련의 종류와 규모를 비롯해 군사행동의 모든 내용을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국내 기지 반환 운동가들이 “한국땅이 미군의 신무기 실험장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맨눈으로 확인한 사격장들의 오염 상태는 심각했다. 기름 오염과 중금속 오염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근처 개인화기 사격장을 살펴보니 한편에 웅덩이가 패 있고 이 웅덩이 옆에는 ‘이곳은 중금속 침전지입니다. 이 물을 사용하지 마십시오’라고 적힌 팻말이 서 있다. 중금속 오염지대임을 미군 스스로가 인정한 셈이다. 사격장 곳곳에는 신형무기들에 의해 파괴돼 흉물스런 구형 장갑차와 탱크, 금속 파편들이 흩어져 있다. 사격장들에서 발생하는 중금속 오염물질은 비가 오면 지하로 흘러들거나 임진강으로 쓸려내려간다. 사격장이나 훈련지는 물론이고 주둔기지로 쓰였던 공여지는 반환을 받더라도 오염이 심해 정화하거나 복구하는 데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것이 뻔하다. 최근 잇달아 터지고 있는 기지 안 기름유출사건을 봐도 이는 명확하다. 이 때문에 환경운동단체들은 미군이 반환하기로 한 공여지의 환경오염 실태조사와 원상회복 및 피해보상문제가 반환과정에서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곳에서 만난 농민 우경복(46)씨는 주한미군의 공여지 반환 발표에 대해 “숫자놀음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파주만 해도 반환 대상지가 2천만평이 넘어서 제일 많다고 하는데 그게 다 사격장 근처의 논이나 밭들 아닙니까. 미군이 자기들이 훈련하려고 사격장을 만들면서 근처 땅까지 모두 공여지로 선을 그어놓는 바람에 공여지가 이렇게 커졌는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반환이라는 말을 쓰는 건 낯뜨겁지 않나요. 굳이 표현한다면 ‘해제’라고 할 수 있겠죠. 또 미군들이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사격장은 반환 대상에 포함되는지 안 되는지도 아직 모르죠. 2011년까지는 앞으로 10년이나 남았는데 반환이 되더라도 5년 뒤에 되는지 10년 뒤에 되는지도 알 수가 없어요. 보세요, 농민들 피해는 여전하지 않습니까. 시청에서조차 정확한 정보가 없더라고요.”
용산과 매향리는 전혀 거론되지 않아
파주는 전국에서 공여지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공여지 면적이 2800만여평으로, 시 전체 면적의 10%를 넘는다. 물론 휴전선과 맞닿아 있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한국전쟁 직후부터 많은 수의 미군이 주둔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씨의 말처럼 공여지 선정이 마구잡이로 이뤄진 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번에 국방부가 반환한다고 발표한 공여지는 대부분 사격장 근처의 논밭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작 농민들의 사유지가 포함돼 있어 직접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200만여평 규모의 ‘스토리 사격장’은 반환 대상에서 빠져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파주 시내에 위치한 기지와 시설들도 반환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쉽게 말해 알짜배기 땅들은 내주지 않은 채 생색만 낸다는 얘기다. 주한미군과 국방부는 지난 7월18일 공여지 4천만평 반환계획을 발표하면서 반환 대상 토지가 전체 공여지(7440만여평)의 절반이 넘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반환 대상 공여지 가운데 100만평을 뺀 3900만평이 기지·시설이 아닌 훈련지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의미를 잃는다. 도심에 위치해 실질적인 피해를 주는 ‘전용공여지’(상자기사 참조)가 많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도심지역 토지가 대부분이라는 100만여평의 경우도 서울·부산·대구·부평·원주 등 전국 여러 곳의 기지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지난 수십년 동안 해당 도시의 균형적 발전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걸림돌이 사라지지 않은 채 온존하게 될 전망이다. 부평이나 대구의 경우 도로를 내기 위해 기지 중 일부만 반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지문제와 관련해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용산기지와 매향리 쿠니사격장 등은 이번 반환과정에서는 전혀 거론되지 않아 적어도 2011년까지 그대로 존속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편 미군은 100만평의 기지와 시설을 반환하는 대신 75만평의 새로운 공여지를 요구했다. 대부분이 의정부·동두천지역으로 기존 기지의 기능을 통폐합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국방부에서는 이에 대해 “진짜 알짜배기는 100만평의 도심지역 공여지이며, 새로 내줄 계획인 75만평은 도시 외곽지역이라서 손해볼 것이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대상지역을 공개하고 땅의 가치를 비교해보자는 기자의 제안에 대해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개하기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의정부나 동두천 등 해당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기지규모가 커지게 될 경우 필연적으로 증가할 미군범죄와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가 흘러나오고 있다. 동두천은 전체 면적의 절반에 가까운 1200만여평이 미군공여지여서 계획대로 된다면 ‘한국의 오키나와’라는 오명을 입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평택의 공군기지 역시 규모가 커질 경우 소음공해와 대기오염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이다.
국방부, 왜 공여지 현황 공개 않는가
이 때문에 이번 계획이 용산기지나 부산 하야리야기지의 반환계획이 무산된 전철을 밟게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벌써부터 지역언론들은 편가르기식의 보도행태를 보여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미군기지는 이미 화장터나 쓰레기소각장과 같은 혐오시설이 된 지 오래”라면서 “기지를 보내고 받는 각각의 두 지역에서 갈등이 심해지면 (이전 및 반환이)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공여지문제의 해결 주체가 그 책임을 지방자치단체의 몫으로 떠넘기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여기에 더해 국방부는 정보를 공개하고 토론을 이끌어내는 대신 공개된 정보마저 감추는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지역 사이의 오해를 키우는 데 일조하고 있다. 경기도청의 한 관계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여지 관련 민원을 처리하기 위해 공여지 자료를 요청한 적이 있는데 국방부 용산사업단에서는 한-미주둔군지위협정을 들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며 “결국 인터넷 미 국방성 사이트에 들어가 자료를 뽑은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공여지 현황을 공개하고 공여지문제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에게 사과를 한 뒤 보상을 서둘러야 할 정부와 국방부는 여전히 뒷짐을 지고 있다. 공여지문제에 관한 한 한국은 여전히 반문명국가인지도 모른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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