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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언론대전’은 법정 밖에서 조선일보 등 사외보 발행하며 연일 맹공…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정간법 개정 논의도 뜨거워
혐의 밝혀지면 중형 가능성 높아
물론 그들의 구속이 마지막 성역의 역사적 소멸을 뜻하는 건 아니다. 언론사주가 구속되는 순간까지도 언론사 세무조사와 언론개혁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대치구도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성역없는 적법처리’ 주장과 ‘비판언론 길들이기’ 주장은 구속 이후로도 칼끝처럼 맞서고 있다. 다만 구속을 앞두고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 ‘사회발전에 기여한 정’ 정도라는 다소 옹색하고 지엽적인 문제가 쟁점으로 잠깐 떠올랐다 사라졌을 뿐이다. 언론사주 구속에서 그들의 ‘공간이동’ 이상의 가시적 의미를 당장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공이 사법부로 넘어간 이상 싸움의 성격은 어쨌든 2단계로 접어든 셈이다. 싸움이 정리되는 국면이 아니라는 단서는 곳곳에서 포착된다. ‘사주 구속’이라는 기정사실 아래서 벌이는 새로운 싸움은 인물 중심에 매여 있던 이전의 싸움보다 오히려 전선의 확대를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전선의 확대는 싸움의 결과가 이전보다 훨씬 전 사회적일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범죄와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검찰이 수사를 통해 밝힌 사주들의 혐의는 일단 그들과 민심의 거리를 더욱 벌여놓고 그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이 고발한 조세포탈 금액이 검찰 수사과정에서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해당 언론사의 ‘희망섞인’ 예측보도와 달리 조세포탈 금액은 거의 줄지 않은 데다 주요 언론사 사주들의 수십억원대 횡령 혐의까지 드러났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에서 추가로 드러난 사주들의 횡령 혐의 금액은 조선일보 방 사장 42억원, 동아일보 김 전 명예회장 18억원, 국민일보 조 전 회장 7억8천만원 등으로 알려졌다. 방 사장의 경우 법인의 부외자금 31억5천만원 가운데 사주 일가의 계열사 증자대금으로 사용한 7억7천만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금으로 인출된 부분이 횡령의 단서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전 명예회장은 취재활동비 12억원과 광고활동비 3억2천만원 등 모두 15억원을 개인용도로 사용했고, 조 전 회장은 인쇄용역비 31억원 가운데 운동용품 구입비로 1억원을 사용하거나 현금으로 찾아 쓴 부분 등이 포착됐다. 검찰은 기소 단계까지 남은 기간 동안 일부 사주들의 배임이나 재산 해외도피 등의 혐의를 추가로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웬만한 혐의들은 이미 구속영장 청구 단계에서 다 포함돼 있고, 큰 규모의 개인비리가 더 나올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게 검찰 주변의 전망이다. 그렇더라도 검찰이 이미 밝힌 혐의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진다면 세명 모두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중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높다. 설령 재판과정에서 유·무죄 판단 금액, 정상참작 등에 따라 신체형에 대한 형량이 덜어지더라도 포탈세액의 2∼5배에 이르는 벌금액은 100억원을 넘어설 수 있다. 사주의 자금능력에 따라서는 해당 언론사 소유권의 변화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한편 해당 언론사들과 사주들은 법정싸움에 대비해 초호화 진영의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이들은 앞으로 조세포탈 혐의의 규모와 방법, 동기 등에 대한 변론을 통해 유·무죄 자체부터 정면으로 다툴 것으로 알려져, 최종 확정판결까지는 치열한 법정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질적인 2차전은 법정 밖에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법정싸움이 법리를 둘러싼 제한된 전선에서 정해진 일정에 따라 진행되는 것과 견줘, 법정 밖에서는 여러 세력들이 민심과 여론을 장악하기 위한 매우 역동적이고 예측하기 어려운 싸움을 전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사주가 구속된 해당 언론사들의 선공이 가장 두드러지고 있다.
동아는 편집국장과 사주가 갈등
이번에도 공격의 선봉에는 조선일보가 서 있다. 방 사장은 8월17일 서울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미리 준비한 진술서를 읽어내려가는 비장한 모습을 연출했다. 방 사장은 ‘사우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이 진술서를 통해 “조선일보에 있는 수백개의 펜 가운데 한개의 펜이 꺾이면 다음 펜들이 다시 언론자유를 위해 싸울 것”이라는 김대중 주필의 말을 인용해 조선일보 사원들에게 “언론자유를 위해 싸워달라”고 주문했다. 그의 주문에 화답하듯 김대중 주필은 계열사 주식 대물림 과정에서 주주 명의와 계좌를 빌려준 경위 등을 조사하기 위한 검찰 소환을 20일 현재 계속 거부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또한 최근 세 차례 사외보를 발행해 본지에 삽지해 독자들에게 돌리고 있다. 그동안 친일전력에 대해 외부필진의 입을 빌려 ‘불가피성’을 강조해온 조선일보는 사외보를 통해서는 ‘친일이 아니라 항일이었다’라는 훨씬 공격적인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 김동민 대표(한일장신대 교수)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이를 “곡학아세”라고 맹렬히 비난하고 나서는 등 조선일보의 ‘과거’에 대한 논란은 계속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사외보의 효과가 크다고 판단하고 자사에 대한 외부비판을 반박하는 사외보를 꾸준히 발행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일보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조선일보는 사주 구속과 상관없이 정부 공격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가며 공격 수위를 높여갈 것으로 안다”며 “조선일보가 준비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에 비해 동아일보는 단일한 팀워크를 형성하지 못한 채 내부갈등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김용정 편집국장이 최근 편집국원들에게 “사주 구속이나 세무조사로부터 독립적인 지면을 만들겠다”고 밝힘으로써 이번에 구속을 면한 김병건 전 부회장이나 김재호 전무 등 사주 일가와 갈등관계에 놓여 있다. 더욱이 김 국장 부임 두달이 다 되도록 사주 체제로 구성된 편집국 간부인사가 이뤄지지 못해 김 국장과 사주 사이의 원격싸움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한 언론계 관계자는 “편집국장 신임투표제 탓에 기자들의 신임투표를 통과할 수 있는 대타를 찾을 수 없어 갑자기 국장을 바꿨다가는 심각한 내분에 휩싸일 것”이라며 “김 국장이 쉽게 낙마하는 일도, 내부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는 일도 없이 한동안 긴장관계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아일보의 미래는 여전히 편집국 기자들을 비롯한 내부구성원들의 손에 달려 있는 셈이다. ‘2차 언론대전’의 새로운 변수는 정치권에서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8월21일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국정조사특위를 구성했다. 민주당 의원 8명, 한나라당 의원 10명, 자민련 의원 2명으로 구성된 국정조사특위는 민주당 김태식 의원이 위원장을 맡았으나 캐스팅보트를 쥔 공동여당인 자민련이 한나라당과 공조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어 조사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정조사엔 회의론도 높다
오히려 정치권에서의 변수는 여야 소장파 의원들의 모임인 ‘정치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정개모)에 달려 있다. 정개모는 8월14일 운영위원회에서 정기간행물법(정간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정개모는 9월3일 전체회의에서 소위원회를 구성해 여론수렴 작업을 거친 뒤 개정안을 확정하기로 했다. 정개모는 정간법의 개정 내용으로 △편집권 독립 △소유지분 제한 △발행부수공사제도 △사회적 책임성 담보 등을 거론하고 있다. 한편 여야 중진 및 민주화운동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화해와 전진 포럼’도 독자적인 정간법 개정안 마련을 추진중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간법이 개정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전망이다. 한나라당이 시민단체들의 정간법 개정안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데다 민주당 지도부도 정간법에 손대는 걸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정간법을 다루는 문화관광위원회를 통과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거라는 게 지배적인 전망이다. 김주언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일단 정치권 일부에서 정간법 개정 움직임이 구체화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나타난 것”이라며 “언론개혁시민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올해 안에 법을 개정한다는 목표로 모든 노력과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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