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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파 내세운 세습의 수순? 주주 김병관의 영향권에 있는 동아일보, 위기 극복의 해법은 무엇인가
김 전 명예회장의 사퇴는 오늘날 동아일보사 경영은 물론 지면의 난맥상에 결정적 책임이 있는 것으로 지목돼온 인물이 무대에서 공식 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사내외 여론의 십자포화를 견디지 못한 것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동아일보>로서는 일단 앞길에 놓여 있던 크고 높은 걸림돌, 아니 등에 업혀 있던 거대한 짐 하나가 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포스트 김병관 시대’는 아직 일러
김 전 명예회장도 퇴임사에서 “동아일보가 시련에 처한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그의 사퇴가 지금 사태를 책임지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임을 내비친 것으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용퇴’인 셈이다. 하지만 그가 떠밀려서 물러났든 아니면 제발로 내려갔든, ‘포스트 김병관 시대’를 맞은 동아일보가 그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사퇴’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경험 속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김 전 명예회장은 지난해 10월 ‘고대 앞 사태’를 일으킨 뒤 회장 자리에서 사퇴하고 명예회장으로 물러나 앉았다. 그때도 그는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밝혔다. 그러나 달라진 건 ‘회장’ 직함 앞에 ‘명예’ 두 글자가 덧붙은 것말고는 없었다. 사내 위상은 전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전 명예회장의 사퇴가 ‘대정부 전투태세’로 체제를 전환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그가 이를 위해 ‘수렴청정’할 가능성이 엿보이는 단서들은 얼마든지 있다. 7월27일 동아일보사 임시이사회에는 김 명예회장뿐 아니라 모든 이사진이 사표를 제출했다(김병건 부사장은 29일 제출). 사표는 선별적으로 수리됐다. 김 명예회장과 오명 회장을 빼면 정구종 출판이사, 남중구 21세기평화연구소장, 박기정 동아문화센터 사장 등 ‘온건파’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이에 비해 김병관 명예회장의 최측근이자 현 정부에 대해 줄곧 강경노선을 주도해온 이현락 전무와 김 명예회장의 아들인 김재호 전무의 사표는 수리되지 않았다. 동아일보사 내부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적어도 사표 선별수리는 특정인에게 힘을 몰아줌으로써 정권과의 싸움에서 기동성을 높이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며 “다만 그가 앞으로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에는 검찰 수사결과 등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고 내다봤다.
“체질 바꾸는 충격적 해법이 필요하다”
하지만 동아일보에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김 전 명예회장의 의지만큼은 분명히 읽을 수 있다. 그는 퇴임사에서 “주주로서 남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주식회사에서 대주주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경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실제로 동아일보사는 1955년 인촌 김성수가 숨진 뒤 16년 동안 제3자를 경영인으로 내세우기도 했으나, 일민 김상만이 사실상 사주 노릇을 해온 과거가 있다. 김재호 전무가 이사로 남은 것은 김 전 명예회장의 사퇴가 세습을 가속화하기 위한 수순밟기라는 해석을 낳게 한다. 굳이 사표를 내지 않던 김병건 부사장에게 사표를 종용해 받아낸 것도 장자세습을 위한 정지작업의 성격으로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김 전 명예회장 사퇴와 이사진 개편은 결국 울고 싶을 때 뺨 맞고 우는 셈이 된다. 동아일보사의 한 내부 관계자는 “어쨌든 동아일보 지면이 사주 입김으로 널뛰기할 여지는 현저히 줄어들게 된 것 아니냐”며, 앞으로의 변화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동아일보 출신의 한 인사는 “동아일보의 체질이 변하지 않으면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라며 “좀더 충격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근본적인 해법의 하나로 소유구조의 변화를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이렇듯 작은 희망과 큰 희망은 아직 엇갈리고 있다. 여전히 동아일보에 남은 딜레마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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