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골라서 보는 수능이 온다 수능 이원화해 수험생이 교과목 선택… 시행 여건 미비로 우려 목소리 많아
해마다 11월 어느날이 되면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하루 종일 시험을 치른다. 그로부터 한달쯤 지나 성적표를 받는다. 그 시험결과는 고등학교 졸업생의 앞날을 사실상 좌우한다. 때문에 법률가가 되려는 학생이나 의사가 되고픈 학생이나 아니면 장래 음악가를 꿈꾸는 학생까지 모두 그날 하루의 시험에 인생을 건다. 바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그날 하루의 수학능력시험에 모든 것을 걸고, 시험을 치른 뒤에는 엄청난 해방감에 빠져든다. 시험이 끝난 그날 하루는 그들만의 날이다. 이런 추억은 70년대 예비고사 세대나 80년대 학력고사 세대에게나 비슷하게 남아 있다. 예비고사나 학력고사나 수능시험이나 똑같이 적용되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그 시험이 학생의 선택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다. 모두 다 같은 과목의 시험을 치러야 했다. 단지 문과와 이과라는 구분만 있었다. 현재 수능시험은 언어영역, 수리영역, 사회탐구(문과), 과학탐구(이과), 외국어(영어) 등 기본과목에다 선택한 수험생만 치르는 제2외국어시험이 치러진다.
‘무차별’ 시험에서 ‘선택’ 시험으로
그렇지만 이러한 무차별적인 시험은 이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뀔 것 같다. 수학능력시험이 수능1 시험과 수능2 시험으로 분리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현재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 거론되는 것은 수능1은 국어, 영어, 수학 등 필수과목 중심으로 치르고, 수능2는 여러 개의 선택과목 가운데 몇개를 골라서 보는 것이다. 수능1의 수학은 공통수학 수준에서 출제되고, 국어, 영어도 비교적 쉽게 나온다. 수능1은 대학수학을 위한 기초학력을 측정하는 자격고사의 사명만 다하면 되기 때문이다. 학생의 적성과 특기는 수능2를 통해 검증받게 된다. 수능2의 경우 수학2, 물리, 지구과학, 역사 등 다양한 선택과목이 주어진다. 제2외국어에서도 아랍어가 추가돼 선택과목 수는 모두 10개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가운데 수험생은 몇개를 선택해서 보면 된다. 선택은 누가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수험생이 스스로 하는 것이다. 주로 자신이 희망하는 대학과 학과가 요구하는 과목을 치른다. 대학이나 학과에 따라 1∼2개의 과목만 선택할 수도 있고, 네댓개의 과목을 고를 수도 있다. 한마디로 ‘무차별’ 시험에서 ‘선택’의 시험으로 바뀐다고 생각하면 된다. 수능시험의 이런 개편은 현재 진행중인 제7차교육과정의 자연스런 귀결이다. 지난 99년 초등학교 1·2학년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7차교육과정은 올해부터 중학교 1학년에 적용되고 있다. 내년부터는 고등학교에도 적용되기 시작해 2004년에는 초·중·고 모든 학교에서 전면 시행된다. 따라서 현재의 중학교 3학년 학생은 내년에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제7차교육과정에 따른 수업을 받게 된다. 7차교육과정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학습과정을 크게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과 ‘선택과정’으로 나누어 학습하는 것이다.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은 글자 그대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건전한 시민으로서 배워야 할 기본과목을 가르친다. 국어, 영어, 수학, 도덕, 사회, 과학, 체육, 음악, 미술 등 10개 과목이다. 이 가운데는 국사가 빠져 있지만, 최근 일본의 교과서 왜곡파문을 계기로 다시 포함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사가 새로 포함되면 기본과목은 11개로 늘어난다. 하지만 교육부가 앞으로 다른 과목을 줄여서라도 6∼7개로 더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똑같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2∼3학년에 올라간 다음에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고2와 고3이 되면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서 학습한다. 선택과목은 일반선택과 심화선택을 합쳐서 세부적으로 모두 79개다. 이 가운데 학생이 일반선택 5과목과 심화선택 4∼5과목을 학습하면 된다. 두 가지 합쳐서 선택과목은 10개 안팎이 될 전망이다. 이를테면 대학에서 사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은 심화선택에서 한국사나 세계사 등의 과목을 주로 공부하면 되고, 수학전공 희망자는 수학과 관련된 심화선택과목 4∼5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면 된다. 7차교육과정의 기본정신은 한마디로 무사이는 무사이답게 개인의 자질과 능력을 계발해나가자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교육과정에서는 아무리 무사이가 훌륭한 시심을 가졌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는 동안 평범한 둔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또는 케인스 같은 인물도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녔다면 그렇게 불멸의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자괴심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런 자괴심은 교육계뿐만 아니라 2세교육을 하는 부모들이 똑같이 느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7차교육과정은 그야말로 근본적이고도 획기적인 변화라고 아니할 수 없다.
개인 자질·능력에 맞는 학습 기회 제공
7차교육과정의 내용이 이러하므로 수능시험이 바뀌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치다. 현재의 수능시험으로는 이런 새로운 교육과정을 도저히 소화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같은 인문계 학생이라도 고등학교 2∼3학년 때 심화선택 과정에서 한국지리나 세계지리를 집중적으로 공부한 학생이 지금처럼 여러 과목을 혼합한 사회탐구를 잘 치르기 어려운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마찬가지로 고교 시절 생물을 주로 공부한 학생이 과학탐구 준비를 원만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거에는 언어, 수리, 사회탐구, 과학탐구 등 큰 그릇 몇개만 있으면 충분했지만, 새로운 교과과정에서는 크기는 작으면서도 풍부하게 담을 수 있는 작은 그릇을 여러 개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수능2 시험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기본적인 학력과 학문적 소양은 필요하다. 그것은 수능1 시험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대학으로서도 간명하다. 이를테면 물리학과는 신입생 지원조건을 수능1의 일정등급 또는 점수 이상을 받은 수험생 중에서 수능2의 물리와 관련된 영역의 점수와 고등학교 시절의 물리과목 성적을 살피면 된다. 거기다 심층면접까지 거치면 학생의 적성이나 기본소양 등은 완전히 파악해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는 것이다. 철학과나 경제학과 등 인문사회계 학과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수능시험 개편방안의 윤곽이 이렇게 그려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변수는 남아 있다. 비록 7차교육과정의 정신에 비춰볼 때 수능시험의 2원화는 대세이지만, 전문가와 정부의 검토과정에서 달라질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교육부도 7차교육과정의 정신대로 학생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수능시험 개편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하면서도 분명한 결정은 아직 유보해 두고 있다. 연말까지 공청회 등을 거쳐 확정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가 이렇게 수능시험 이원화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아직까지 견지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정부와 학부모의 부담이 커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수능시험을 이원화하면 최소한 2차례 이상 치러야 하기 때문에 시험관리 비용과 절차가 결코 작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과외 부추길 수도… 정부, 확정은 유보
7차교육과정을 시행할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비판도 고려해야 할 처지다. 이를테면 고등학교 2∼3학년에 공부해야 할 선택과목은 학습수준이 상당히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교실이나 교사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심화선택과목은 자칫 현재의 학생이나 교사에게 소화불량을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과외를 부추길 가능성도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대도시지역의 부유층만 입시에서 유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이번에 교사증원과 교실증설에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런 의구심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나아가서는 이런 어려움을 이유로 수능시험이 애매한 형태로 변질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부가 현실적으로 제기되는 부작용에 대한 합리적인 보완책을 마련하기보다는 미봉책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지금까지 정부 관료들이 이런 식으로 특종포도를 잡종포도로 둔갑시킨 예는 무수히 많다. 과연 정부가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매듭을 지을지 연말까지 잘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차기태 기자/ 한겨레 민권사회1부 folium@hani.co.kr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