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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볼모로 그물망 씌운다 보건복지부 전자건강카드 추진 논란… 주민증 대신하는 감시체계 가능성 높아
‘건강보험증에 신용카드 기능’으로 현혹
종이로 된 보험증 대신 전자건강카드가 도입되면 건강보험 가입자는 진료를 받고 처방전 없이 약을 타게 된다. 모든 의료기관의 전산망이 촘촘히 연결돼 있고, 수천자의 정보를 썼다 지울 수 있는 IC칩이 내장된 전자건강카드가 진료 기록을 다 기억하는 덕분이다. 처방전이 없어질 뿐 아니라 진료 차트를 이 병원 저 병원 들고다닐 필요도 없다. 이전의 진료 기록이 모두 입력돼 있기 때문이다. 진료를 받거나 약을 탈 때도 현금이 필요없게 된다. 건강카드와 연계된 신용카드사가 자동결제한다. 전자건강카드의 의무가입 ‘고객’은 의료보험 수급자 전부인 4500만명에 이른다. 의료보험료조차 낼 수 없는 극빈층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이 대상인 셈이다. 98년 국민들의 반발로 도입이 좌초된 전자주민카드가 17살 이상 3600만명을 대상으로 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대상자가 굉장히 광범위하다. 그만큼 국가신분증으로 쓰일 가능성 또한 높다.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전자건강카드가 도입되면 주민등록증은 어쩌면 천덕꾸러기가 될지 모른다. 처음으로 사진이나 지문을 전산화해 데이터로 보관하는 이 카드는 귀찮은 신분확인 절차를 간소화해주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주민증과 신용카드와 교통카드를 빼낸 자리에 전자건강카드가 들어서는 간편한 세상, 모든 생활이 카드 하나로 해결되는 행복한 세상, 과연 유토피아일까? 사회진보연대, 민주노총 등 전자건강카드 도입에 반대하는 46개 시민사회단체들은 “모든 생활이 카드 하나로 해결되는 대신 모든 생활을 감시당하는 디스토피아”라고 답한다. 먼저 국가 감시체계의 강화다. 전자주민카드의 도입이 무산된 맥락과 일치한다. 개인의 신분을 전자적으로 확인하는 방식의 도입은 국민 개개인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통합하고 업그레이드하는 매개고리가 된다. 그래서 좀더 강한 정보통제력을 바라는 국가는 국민 개개인의 정보를 전산화하기 원한다. 더구나 전자건강카드에는 전자주민카드에 없던 신용카드 기능까지 보태져 진료기록뿐 아니라 금융거래, 쇼핑내역까지 세세히 남는다. 여기에 교통카드 기능까지 덧붙이면 국민 한명 한명의 하루 생활을 낱낱이 알 수 있게 된다. 이제 국가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국민의 일거수 일투족이 기록으로 남는 것이다. 사회진보연대 홍석만 편집실장은 “전자주민카드 도입이 무산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이런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며 “전자건강카드는 전자주민카드 도입보다 더 심각한 감시사회 도래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무엇보다 큰 우려는 개인정보 유출문제다. 아무리 보안성이 있는 IC칩이라 하더라도 암호해독이 불가능하지 않은 탓에 개인정보가 유출될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게다가 전자건강카드에는 개인의 병력 같은 비밀정보가 담길 가능성이 커서 개인정보 유출문제는 더욱 치명적이다. 민중의료연합 정책센터 책임자 최용준씨는 “입사할 때에 회사에서 전자건강카드 제출을 요구해 개인병력을 확인하는 게 보편화될 수 있다”며 “숨기고 싶은 질병이나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는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한 개인의 유전질환이나 정신질환에 관한 정보가 노출됨으로써 사회생활에 결정적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전자건강카드를 신용카드와 연계해 사용하면, 신용카드회사에 개인 병력이 넘어갈 가능성도 크다. 대금결제를 위해서는 의료비 지불내역서를 신용카드회사에 전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용카드회사는 넘겨받은 진료 및 제약정보를 기반으로 환자별, 의료기관별, 약제품별로 데이터베이스를 저장할 수 있어 상업적 이용이 우려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의료정보를 노린 해킹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병력 등 개인정보 유출 부작용 많아
국가감시와 개인정보 유출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서도 보건복지부가 전자건강카드 도입을 추진하는 명분은 의료비 부당·허위청구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IC카드를 통해 실시간으로 의료보험관리공단에 진료내역을 전송하고, 보험청구가 이뤄지면 부당·허위청구가 줄어들 것이라고 복지부는 주장한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이마저 실효성에 의문을 표한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문혜진 부장은 “전자건강카드로 막을 수 있는 것은 임의로 환자가 병원에 온 것처럼 속이는 가짜 환자 조작 정도가 고작”이라며 “날로 고도화되는 부당청구 수법을 막을 근본적인 처방은 못 된다”고 지적한다. 실시간으로 진료내역을 보내더라도 진료내역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부당·허위청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IC칩에 저장하기 위해 진료내역이 코드화될 수밖에 없어 코드를 해독할 수 없는 환자들은 부풀리기 청구를 당해도 속수무책이다. 가짜 환자 만들기도 병원과 약국, 환자가 담합을 하는 경우가 많아 전자건강카드 도입 효과가 의심된다. 한편 허위·부당청구를 막지 못하면서도 의료비 부담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보건복지부는 시스템 구축을 민간자본 유치로 해결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카드판독기 구입, 카드 발급비용이 빠져 있다. 민자유치로 충당할 시스템 구축비용을 빼고도 카드 신규발급비용 등 전자카드 시행에 드는 비용은 2조원가량으로 예상된다. 이는 고스란히 건강보험 가입자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이외에도 매년 카드 재발급비 약 4천억원과 카드 수수료 약 5천억원 등 매년 1조원가량이 보험 가입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가야 하는 형편이다. 마지막으로 시스템의 안정성문제다. 전국 6만3천개 진료기관에서 동시에 접속할 경우, 과연 시스템에 이상이 발생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의료기관의 특성상 이용시간대가 집중되는 점을 감안하면, 처리불능사태를 걱정하는 것이 단순히 기우만은 아니다. 의료파업을 뛰어넘는 진짜 의료대란이 도래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이런 예상되는 부작용에도 보건복지부는 전자건강카드 도입을 밀어붙이고 있다. 보건복지부 담당자는 “아직 복지부의 안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하지만, 지난 4월15일 보건복지부 김원길 장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전자건강보험증 추진계획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5월21일 보건부지부는 KHC, SKC&C 등 4개 컨소시엄을 불러 사업설명회를 가졌고, 민주당은 6월16일 전자건강카드 추진내용을 담은 ‘국민건강보험 재정건전화특별법’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제출했다.
“국민 인권에 치명타를 입히게 될 것”
하지만 가파르게 추진되던 입법과정은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당 내부의 반대에 부닥쳤다. 먼저 민주노총 등 46개 시민사회단체가 6월21일 “제2의 전자주민카드, 전자건강카드 시행방침을 철회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민주당이 발의한 이 법안에 대해 민주당 보건복지위원회 간사인 김성순 의원조차 반대하고 나섰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도 “전자건강카드의 도입은 국민 인권에 치명타를 입히게 될 것”이라며 강력한 반대의사를 밝히고 있다. 결국 6월 임시국회 처리를 목표로 했던 이 법안의 통과는 다음 회기로 미뤄진 상태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9월 정기국회에서는 반드시 통과를 관철시킬 계획이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안에 따르면, 법 제정 이후 1년 뒤, 또는 2001년 9월부터 이 제도를 시행할 것으로 못박아두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의 장밋빛 약속과는 달리 “카드 하나로 불행해지는 세상”이 가까이 왔는지도 모른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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