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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한계선은 영해가 아니다 북한 상선 영해 ‘침범’으로 흥분하기 전에 생각해야 할 몇 가지 쟁점들
제주해협 통과가 국제법 위반일까
이번 사태와 관련한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북방한계선의 성격과 관련한 것으로, 상선의 북방한계선 진입 또는 월선이 영해침범에 해당하는 것이냐의 문제이다. 또 하나는 이번 사태에 임한 군 당국의 대응이 과연 적절했는가이다. 첫 번째 쟁점과 관련해선, 일단 북방한계선과 영해를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북방한계선은 남과 북의 영해를 가르는 분단선’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이 둘은 전혀 다른 것이다. 영해는 국제법상으로 규정된 우리(대한민국) 관할 바다를 일컫지만, 북방한계선은 오로지 남과 북에만 적용되는 안보선일 뿐이다. 영해는 통상 육지에서 12해리까지 인정되지만, 북방한계선은 서해 40마일, 동해 218마일까지 임의적으로 설정돼 있다. 국제법상으로 볼 때 영해지역보다 공해지역이 훨씬 더 많이 포함된 것이다. 북방한계선은 결코 휴전선이 아니다. 더구나 이 북방한계선은 남쪽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선이다. 종전 직후인 1953년 8월 유엔군사령부가 함정과 항공기 활동의 북방한계로 설정한 것이다. 정전협정은 육상분계선은 휴전선으로 규정했지만 해상분계선은 확정짓지 못했다. 합참 관계자는 “당시 북진통일을 주장하던 이승만 정권이 정전협정을 무시하고 우세한 해군력을 동원해 단독 군사행동을 할까봐 유엔사에서 남쪽 해군력의 북상을 막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북방한계선의 규제대상이 북이라기보단 오히려 남쪽이었다는 설명이다. 북한은 지난 1973년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서해 5개 도서가 북한군 통제를 받는 해역에 위치하므로 출입시 사전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시작으로, 줄곧 북방한계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다. 지난 99년엔 꽃게잡이 어선 호위함의 월선문제로 서해교전까지 벌어졌다.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교수(국제법)는 “유엔사가 일방선포하고 북에는 통고조차 하지 않았다”며 “현재 남북간의 해상불가침선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볼 때, 북쪽 상선이 북방한계선을 넘나든 것은 ‘월선’이라고 할 수 있어도 영해침범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실제 이번에 문제가 된 어떤 북한 함정도 북방한계선을 건너면서는 우리 영해 안으로 들어온 적이 없다. 물론 북한 상선들의 ‘영해침범’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건 북방한계선에서가 아니라 남쪽 제주해협을 통과하면서였다. ‘영해침범’은 지난 6월2일 청진2호 등 북한 상선 3척이 잇따라 사전연락 없이 한반도와 제주도 사이의 제주해협으로 들어서면서 이뤄졌다. 가장 큰 문제는 안보적으로 여전히 민감한 남북관계를 무시한 채 북한 상선이 사전통보 없이 우리쪽 영해로 넘어온 점이다. 정부 관계자는 “남쪽은 비료나 인도지원물자를 실은 배가 북한 남포항에 들어갈 때도 사전에 통보를 해왔다”고 말했다. 남에서 북으로 배를 보낸 횟수만 지금까지 1천여번이 넘는다. 물론 국제법상 영해에서도 군함과 정부선박을 제외한 민간선박은 무해통항권이 인정된다. 이장희 교수는 “이번 북한 상선의 제주해협 통과는 국제법상 무해통항의 요건을 모두 갖춰 국제법 위반은 아니다”며 “우리 영해법 및 접속수역법 제5조도 제3국의 민간선박이 무해통과할 때는 허가나 사전동의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남북한 관계에서도 이 권리가 그대로 통용되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강경대응보다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가 중요
박춘호 고려대 석좌교수(해양법)는 “현재 정전상태인 남북한은 결코 이런 국제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전을 이유로 북한을 무해통항대상에서 제외하는 것도 법적으론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다. 북한과 함께 정전협약을 맺은 당사자인 중국은 현재 아무런 제한없이 무해통항의 권리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해협의 국제해협적 성격도 생각해볼 거리다. 한국 정부는 남해안과 제주도 사이의 일부 섬들을 동서로 잇는 직선기선을 그어 제주해협 전부를 우리 영해로 삼았다. 하지만 일부 구역에선 이들 섬과 제주도의 거리가 영해기준인 12해리를 넘어서고 있다. 북한은 이를 근거로 “제주해협은 국제법상 국제해협으로, 자유로운 통항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현재 이 문제에 대해선 북한을 인정할 수 없다는 극단적 보수파를 제외하면 “남북간에 조속히 협약을 맺어 해결해야 한다”는 데 큰 이견이 없다. 박춘호 교수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경제적 항로개척 시도를 해운협력합의서와 경협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은 쟁점은 군 당국의 대응조처와 관련한 것이다. 야당과 보수언론은 “영해침범에 대해 군이 완전히 손을 놓아버렸다”며 연일 비난 강도를 높이고 있다. 북한 상선의 제주해협 통과 때 우리 해군이 정선 명령이나 경고사격, 나포 등의 조처없이 통신검색만 한 것은 일종의 주권 포기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잇단 북방한계선 월선에 대해서도 비난이 쏟아졌다. “교전규칙에 따른 무력대응 의지는 실종된 채 상부의 대북 눈치보기에 따른 무기력한 대응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군부 한쪽에서도 “이번 침범은 일종의 저강도분쟁으로 단호한 대응이 필요했는데도 유화적 대북정책에 따라 유야무야됐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현실을 도외시한 수구적이고 냉전적 발상이라는 반박 또한 만만치 않다. 합참의 한 관계자는 “교전규칙에 따라 강경대응하라고 하는데, 교전규칙은 상대방이 적대적 행위를 할 때 적용하는 것”이라며 “일체의 적대행위 없이 자신의 출발지와 행선지와 적재화물, 소속회사의 전화번호, 선장 이름과 나이, 선원 숫자 등을 밝히며 항해하는 민간상선에 대해 군사행동을 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만약 북한 상선에 무력을 사용했다면 남북관계를 극도로 경색시키는 것은 물론 국제사회로부터 상선의 평화적 운항을 강제로 가로막는 ‘테러국가’란 비난을 부르고 말았으리란 것이다. 현 정부가 정치적 판단에 따라 군의 원칙적 강경대응을 가로막고 나섰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특히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군이 안보의 상당부분을 맡고 있지만 전부를 담당하고 있지는 않으며 안보에 대한 정치적 판단은 당연하고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번 대응의 기조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결정됐다. 조영길 합참 의장에게서 북한 상선의 월선 보고를 접한 김동신 국방장관은 즉각 국가안전보장회의 개최를 요구했고, 여기서 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대응의 골간이 만들어졌다. 이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생래적으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게 되는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의 한 유력한 수단이다. 군사적 판단에 국한하지 않고 외교와 경제 등 다면적 측면을 종합해 안보에 대한 심층적 판단을 내리도록 한 장치인 것이다. 62년 쿠바 핵미사일 위기 때 미 군부는 즉각적인 쿠바 폭격과 미사일 부품을 실은 옛 소련 상선에 대한 포격을 주장했지만, 케네디 대통령은 철저한 문민통제를 통해 이를 저지했다.
최근 개봉됐던 영화
해상경계선 확정이 시급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북방한계선 수역에서의 군 작전 예규와 작전 범위 등을 대폭 개정할 계획이다. 이에 따르면 북방한계선은 접적수역(경비구역)과 공해해역으로 구분된다. 민간상선의 통과조차 허용하지 않는 접적수역은 대략 서해 24마일, 동해 50마일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외의 지역은 민간상선의 경우 북방한계선 침범이 아니라 통과로 규정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국지적 조정만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내다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제주해협 통과문제가 그대로 남는데다, 서해5도가 포함된 해역을 북한 영해로 바라보는 북한쪽의 입장에도 변화 징후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신뢰구축을 약속하고도 여전히 군사·안보부분에서는 긴장관계가 상존하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북방한계선과 영해문제는 말하자면, 전쟁도 평화도 아닌 남북한의 기이한 대치가 낳은 미해결의 과제이다. 서동만 상지대 교수는 “2년 전 서해교전이 있고도 이번 사태가 재발한 점을 교훈삼아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남북기본합의서대로 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해 합리적인 해상경계선을 확정짓고, 서해 해상의 남북 공동어로 구역 설치 등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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