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독극물 방류’도 공무? 맥팔랜드 사건 재판권 요구하는 뻔뻔스런 미군… 불평등 SOFA문제 다시 환기된다
지난달 초 서울지검 외사부에는 난데없이 서류 한장이 접수됐다. ‘한강 독극물 방류사건’의 미 군속 앨버트 맥팔랜드에 대해 주한미군사령부 법무실이 발행한 공무증명서였다.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됐으나, “사회적 관심이 큰 사안인데도 약식기소한 것은 부적절하므로 정식재판을 해야 한다”며 법원이 직권으로 맥팔랜드를 정식재판에 회부한 직후였다. 공무증명서는 한장짜리 종이에 불과하지만 실상은 한 나라의 사법주권을 포기하게 만들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지닌다. 미군이 왜 기소까지 한 상황에서 공무증명서를 발급했는지 알 수 없던 담당검사는 이를 법원에 넘긴다. “미군당국이 재판권을 달라는 것인지 아니면 정상을 참작해 달라는 취지로 낸 것인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는 게 검사의 설명이다.
협정에 나와 있는 ‘공무증명서’의 의미
이 공무증명서 제출 사실이 알려지면서 또다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이하 협정)의 불평등성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협정대로라면 미군이 경계근무중에 지나가는 한국인에게 이유없이 총을 난사해도, 미 공군기가 스위치를 잘못 눌러 폭탄이 떨어지는 바람에 수많은 한국사람이 가족을 잃는다 해도 우리 사법기관이 미군 범죄자를 처벌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 공무증명서에 대해 미군당국은 뚜렷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재판권 포기 요구가 아닌 정상참작용이라는 짐작도 있지만, 협정에 공무증명서의 의미가 뚜렷하게 나와 있는 것에 비춰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군은 단지 “법원이 (공무증명서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을 것이며 법원이 판단할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왜 협정상의 ‘정당한’ 절차를 밟아 발행한 이 공무증명서가 문제될까? 사과하고 자진해서 한강을 청소하면서까지 고개를 숙이던 미군이 뜬금없이 재판권을 가져가겠다면 황당할 수밖에 없다. 검찰이 수사 착수 뒤 6개월을 넘겨서야 맥팔랜드를 약식기소한 것은 타협의 산물이었는데, 법원이 전격적으로 정식재판에 회부하자 대응에 나선 것이라는 풀이가 있다. 그러나 협정과 우리 사법당국의 협정 적용관행은 감정적 측면을 떠나 우리나라의 사법주권 회복을 위해 철저히 재검토돼야 한다는 게 시민단체 등의 의견이다. 여러 나라에 군대를 파견하고 있는 미국은 일본, 필리핀, 나토(NATO) 등과 비슷한 내용의 협정을 맺고 있다. 형사재판 관할권문제도 주요 알맹이다. 한-미 협정은 우선 한 나라 법에만 저촉되는 범죄의 경우 그 나라에 전속재판권을 주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범죄행위가 그렇듯 두 나라 법에 모두 저촉되는 경우 관할권이 경합할 수밖에 없다. 협정의 본협정 22조3항은 이 경우 일차적인 재판권을 우리나라에 두게 했다. 속지주의의 적용이다. 그러나 이 조항은 “미군당국의 요청이 있으면 대한민국 당국이 재판권을 행사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결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차적 권리를 포기한다”는 부속 합의의사록에 의해 사실상 선언에 불과하다. 본협정은 아울러 △미국의 재산이나 다른 미국 군인, 군속 및 그들의 가족에 대한 범죄 △공무중 범죄에 대해서는 1차 재판권을 미군에 넘기도록 했다. ‘미군끼리 치고 받은’ 사건은 미군당국에서 알아서 처벌하라는 것까지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문제는 ‘공무중’ 범죄다.
우리 당국은 애초부터 ‘핫바지’ 대상
공무증명서가 진작에 발부되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검찰은 맥팔랜드를 약식기소하고 법원은 그를 정식재판에 회부함으로써 우리나라는 사실상 1차적 재판권을 행사해버렸다. 검찰은 “합의의사록에서 ‘평화시 군무원과 군인 및 그들의 가족에 대해서 미군은 유효한 형사재판권을 가지지 않는다’고 했으므로 당연히 우리쪽에 재판권이 있다”고 밝혔고 외교통상부도 이를 재확인했다. 협정의 맥락상 재판권 행사 주장은 수사단계에서 제기하게 돼있으므로 이미 기소된 사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반면, 미군당국이 공무증명서를 발급한 것은 나름의 준거와 세밀한 검토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무중 범죄’에 대한 미군의 1차 재판권 조항이 합의의사록의 위에 놓인 본협정에 있다는 점이 우선 문제시된다. 협정에 따르면, 전시 또는 계엄령 발효시에는 어차피 미군과 군속, 그들의 가족에 대한 재판권이 전적으로 미군쪽에 넘어가기 때문에 ‘공무중 범죄’조항은 평화시를 위한 것이라는 결론도 나온다. 어쨌든 공은 법원에 넘어갔다. 재판을 맡은 서울지법 형사15단독 오재성 판사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군이 공무증명서를 내긴 했지만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므로 공판이 본격적으로 열리면 주장을 들어보고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또 “소파사건의 경우 정식재판을 통해 다툴 일인데도 약식기소하는 사례가 있다”며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고 서류로만 재판해 벌금을 부과하는 약식기소는 부적절하다는 점을 다시 지적했다.
미군범죄 재판권 행사율 5% 이하
단순히 미 군속에 대한 재판권이 우리쪽에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군인에 대해서도 과연 ‘공무중 범죄’조항을 놔두어야 하는지와 어디까지를 ‘공무중’이라고 봐야 하는지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게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공무’ 여부의 판단도 일방적으로 미군에 양보하는 사법주권 포기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김판태 사무국장은 “한국 땅에서 한국사람을 상대로 벌어진 범죄는 당연히 한국쪽이 심판해야 한다”며 “이 사건을 계기로 모호하고 미군쪽 편의만 고려한 주둔군지위협정의 재개정 필요성이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이본영 기자/ 한겨레 사회2부 ebon@hani.co.kr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