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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정리해고는 ‘오답’이다 대우차 문제에 장기적 대책없이 외국자본 눈치만 보는 정부의 공허한 구조조정
영국과 한국은 왜 달라야 하는가
그러자 영국 정부는 닛산의 방침을 저지하려고 내각이 총동원해 유럽연합을 상대로 로비(선더랜드 공장 에 대한 재정지원 승인)에 나섰다. 심지어 스티븐 바이어 상무장관은 도쿄로 카를로스 곤 닛산 회장을 찾아가 ‘차 한잔도 못 얻어 마시는’ 수모까지 당하며 구걸을 했다는 게 영국 언론들의 전언이다. 영국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 지키려고 했던 것은 선더랜드 공장의 1개 라인에서 제공하는 1300명의 일자리였다. 적자가 나는 기업이지만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고 온갖 외교적 노력을 다 기울여 일자리를 유지한 것이다. 똑같은 시기이며 똑같은 부실 자동차회사인데 우리 정부의 처리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대우차가 마침내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미국 제너럴 모터스(GM)에 팔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자체 구조조정의 일환이다. 지난 2월17일 통보된 정리해고 인원은 1750명. 98년 초 정리해고 관련법규가 시행된 뒤로 사상 최대규모이다. 정부와 채권단은 대우차가 영업수지를 맞출 수 있게 인원을 정리하지 않으면 GM에 대한 매각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노사 양쪽에 대규모 정리해고를 줄곧 압박해왔다. 심지어 정리해고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법정관리를 중단하고 청산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는 무지막지한 협박까지 했다.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2월9일 외신기자간담회에서 “대우차가 구조조정 등을 통해 영업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면 법원에서도 법정관리를 계속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정관리의 중단은 곧 청산을 뜻한다. 진 부총리는 이처럼 법원의 고유권한까지 건드리며 “대우차가 올해 영업수지를 맞추고 하반기부터는 추가 자금지원 없이 운영돼야 해외매각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닷새 뒤 채권단 대표인 엄낙용 산업은행 총재는 좀더 직접적으로 대우차의 정리해고를 압박했다. 엄 총재는 “대우차 노사가 정리해고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지 못하면 채권금융기관들이 신규 자금지원을 계속하기 어렵다”면서 “채권단의 자금지원이 끊긴다면 법원도 법정관리를 중단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대우차는 지난해 11월 부도 뒤 법정관리에 들어가 현재 채무상환은 유예돼 있다. 이자비용은 당분간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대신 자체 신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능력도 전혀 없다. 차를 만들어 판 돈으로 모든 재료비와 인건비를 포함한 판매관리비, 시설유지비 등을 스스로 충당해야 하지만 역부족이다. 그래서 채권단이 달마다 1천억원가량씩 운전자금 부족분을 메워주고 있다. 따라서 채권단의 지원중단은, 마취를 시켜놓고 한참 수술중인 환자에게 갑자기 산소호흡기를 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채권단은 대우차에 올 6월까지만 자금을 지원해줄 방침이다. 그 다음부터는 대우차 스스로 굴러가야 한다. 영업이익을 내도록 하라는 주문이 바로 이것이다. 빌려준 돈에 대한 이자는 받지 않을 테니 나머지 모든 비용은 차 판 돈에서 충당하라는 이야기이다. 물론 시설개조와 새차종 개발 등을 위한 신규투자 따위는 꿈도 못꾼다.
정리해고 한다고 영업수지 맞출까
대우차가 정리해고를 단행한 데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다. 대우차 노조는 정리해고를 둘러싼 노사협상 막판에 ‘무급 순환휴직제’를 제시했다. 그 방식과 규모도 사쪽에 맡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경영진은 거부했다. 비용절감 효과를 따지면 정리해고와 무급순환휴직제는 전혀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우차 경영진은 ‘구조조정의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 정리해고를 택했다. 대우차의 한 고위관계자는 “올해 생산목표 56만대도 노조와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짜맞춘 수치”라고 실토했다. 즉 시장상황 등 여러 가지 여건을 감안해 적정 생산목표를 잡고 이에 따른 비용절감 계획을 구상한 게 아니라, 정리해고를 포함한 비용절감 목표를 먼저 설정하고 여기에 맞춰 매출목표를 정했다는 것이다. 56만대 생산이면 지난해 대우차의 판매대수 83만대보다 30% 이상 준 물량이고 전체 생산능력 155만대의 3분의 1 수준이다. 고정비가 많이 드는 자동차 회사에서 적정 가동률을 유지하지 못하면 수익구조가 나빠질 수밖에 없다. 가능하면 많이 팔아야 상대적으로 고정비 부담이 줄어 수익을 낼 수 있다. 그런데 대우차는 99년 8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뒤 계속 축소경영전략을 펴고 있다. 경영진으로서도 채권단이 기본적인 생산에 필요한 돈만, 그것도 찔끔찔끔 대주다보니 어쩔 수 없다. 특히 지난해 11월 부도를 낸 다음부터는 기업활동이 더욱 위축됐다. 그 이전보다 매출이 40%나 줄었다. 원부자재와 시설투자에 대한 감가상각비 등 고정비용을 줄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영업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영화회계법인이 인천 지방법원의 의뢰로 2000년 12월 말 기준으로 대우차의 자산을 실사한 한 결과, 존속가치가 3조7579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우차가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직전 삼일회계법인이 실사를 했을 때의 존속가치는 5조3727억원(99년 6월 말 기준)이었다. 1년 반 만에 기업가치가 1조5천억이나 떨어진 셈이다. 대우차의 한해 임금총액이 6천억원이기 때문에 정부나 채권단이 주장하는 것처럼 ‘제 앞가름도 못하는 대우차 종업원들의 집단이기주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오히려 불확실한 해외매각에만 매달려 대우차의 잠재적 기업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지원하지 못한 정부와 채권단의 탓이 더 크다.
대우차 청산 발언, 무책임의 극치
어쨌든 지금까지 대우차와 관련해 정부가 보인 태도에는, 중장기적으로 국내 자동차산업을 어떻게 키워나가야 할지에 대한 산업논리가 전혀 없다. 이런 가운데 채권단에게만 맡긴 대우차 처리는 대우차의 기업역량을 더욱 갉아먹는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한 임원은 “금융기관은 날씨가 화창할 때 우산을 사라고 조르다가도 비가 오면 우산을 거둬들이는 게 기본 속성”이라며 “대우차에 대해서는 채권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게 우선이지 앞으로 2∼3년 안에도 흑자를 낼지 못 낼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돈을 대줄 만큼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와 채권단 관계자가 툭하면 대우차의 청산가능성을 내비치는 대목에서는, 산업정책의 부재뿐만이 아니라 무책임의 극단을 느낄 수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이나 산업전문가들은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 완성차 회사를 청산한 데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미국 크라이슬러사가 70년대 말 파산위기에 몰렸을 때 미 의회는 특별법을 만들어 25억달러의 금융지원에 대해 정부가 지급보증을 서도록 했고, 재무·상공·노동·교통장관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연방회계감사원(GAO) 원장 등으로 특별이사회를 구성해 구조조정에 나섰다. 80년대에 일본차가 급속히 밀려들어 빅3가 위기에 몰렸을 때에는 일본차의 연간 수입물량 한도를 160만대로 묶어 “자동차를 팔려면 미국에 공장을 만들라”고 유도한 게 미국 정부이다. 시장원리대로 가만히 내버려두면 경쟁력에 밀리기 때문에 자국 자동차산업 보호차원에서 이런 정책을 펴는 것은 유럽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정부가 모범으로 삼고 있는 영국의 대처 전 총리도 로버자동차가 쓰러지는 것을 막으려고 80년 초에 무려 10억파운드의 재정을 투입했다. 그만큼 자동차산업이 미치는 전후방 산업연관효과와 고용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대우차를 지금 청산해 버리면 고철과 땅덩어리만 팔아 채권단끼리 나눠가져야 한다. 대우차의 생산시설, 국내외 생산·판매조직, 연구개발능력, 브랜드가치, 그리고 무엇보다 수십년 동안 축적된 기술경험 등이 모두 물거품이 된다. 김우중 전 회장이 사기를 치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여기에는 20조원가량의 국민 예금과 세금이 투입되어 있다. 대우차 부평공장의 담벼락 한편에는 새천년민주당이 내건 이런 플래카드가 길게 나붙어 있다. “부평은 자동차의 본고장입니다. 우리의 손으로 대우자동차를 살려냅시다.” 그런데 지난 2월16일부터 부평공장 사무실에는 중부지방국세청 조사국에서 파견한 30여명의 세무조사 요원들이 이런저런 서류를 뒤적이고 있다. 금감원 회계감리와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분식회계를 보면 탈세혐의가 있기 때문에 국세청이 특별세무조사에 나선 것이다. 조사 결과 김우중 전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회계분식을 통해 회삿돈을 빼돌렸다는 근거가 포착되면 대우차를 상대로 세금추징에 들어간다. 불로소득을 챙긴 사람은 따로 있더라도 납세의무는 회사쪽에 있다는 게 국세청 설명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법원에서 6월 말까지 최종 회사정리계획을 확정하기까지 조세채권을 확정해 신고해야지만 우선순위 채권자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정부·여당 내 한쪽에서는 ‘대우차 정상화’를 부르짖으면서, 또다른 한쪽에서는 대우차의 빚을 더 키워 기업가치를 더욱 떨어뜨리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채언 전남대 교수는 “대우차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무책임과 무능은 도대체 국내 산업기반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게 한다”며 “지금이라도 정부가 전면에 나서 대우차 종업원들을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구조조정의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이라도 원칙을 세우자
지금 국내 산업현장에서는 실업에 대한 불안감이 심각하다. 얼마 전 갤럽 국제조사기구에 가입한 전세계 여론조사기관들이 68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1년 실업전망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조사대상자의 89%(1520명)가 ‘실업이 증가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세계 평균 44%보다 두배 이상 높은 것이다. 정부는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계의 반발이 대외신인도 회복의 걸림돌이며 외자유치를 방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까지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 외국자본에게 신뢰를 주는 상황이 온다고 해서 국내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이에 따른 고용여건 개선이 보장될까? 이 질문에 대해 정부가 뚜렷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민들에게는 구조조정의 목표 자체가 정리해고와 외자유치인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해법이 없는 구조조정은 멈추는 게 낫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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