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패자는 대법원, 그리고 미 국민

미 대선 당선자 확정과정에서 민주주의 무시한 정치권, 그 정치권에 놀아난 대법원 판결

갑작스런, 그렇지만 여진조차 없는 조용한 끝이었다. 지난 12월12일 밤 10시 한파가 몰아친 워싱턴DC 연방대법원 건물 앞에서 방송사 기자들이 20여분 넘게 이제 막 전달된 판결문을 ‘해독’하느라 곱은 손으로 수십쪽을 넘겨가며 씨름하는 동안 수천만의 미국인들은 결과를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가장 먼저 이 판결문의 내용을 알아본 사람은 예순이 넘은 의 정치담당 기자 밥 시퍼였다. 그는 소수파의 반대의견부터 읽어나가면서 이 판결의 의미를 알아챘다. 그는 스티븐스 대법관의 소수의견의 마지막 구절 “승자는 불분명하지만 패자가 누구인지는 분명하다. 패자는 공정한 중립적인 중재자로서의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이다”라는 구절을 4번이나 되풀이해서 읽었다.

이렇게 해서 O.J. 심슨 사건과 클린턴 탄핵 이후 최대의 관심을 끌었던 정치드라마(한 풍자작가는 ‘섹스와 살인이 들어가지 않은 것 중에서는 최고의 히트작’이라고 평했다)는 한겨울밤 눈보라 속에서 뭐가 뭔지 모르게 끝났다. 다음날 <뉴욕타임스>의 대법원 담당기자인 린다 그린하우스(그녀는 대법원 관련 기사로 지난 98년 풀리처상을 받았다)는 판결문이 이토록 난해했던 것은 어려운 법률용어나 관련 내용이 복잡해서가 아니라 다수의견이 자신의 결론을 가급적 숨기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법학자들은 이 판결문에 아연실색했지만, 그 효력은 절대적이었다. 법은 비록 정치적 판결, 불합리한 판결이라는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다해냈다. 국가가 정말 위기로 치닫는 것을, 헌법적 위기가 도래하는 것을 막아낸 것이다.

‘해독’조차 어려운 판결문

사실 대법원이 부시의 승리를 확정시켜준 것은 지난 12일 야밤의 난해한 판결문이 아니라, 이미 9일치의 ‘스테이’(STAY, 플로리다 주대법원 판결에 대한 일시 효력정지)를 통해서였다. 본안 판결과 마찬가지로 5 대 4로 갈린 이 결정은 이미 시간에 쫓기고 있던 고어 진영에는 치명타였다. 스테이 결정을 옹호한 스칼리아 대법관의 판결이유서 요지는 “원고(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정통성에 손상을 입힐 뿐만 아니라 헌법적 위기를 불러일으켜 국가안보에 위해하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처음부터 고어 후보의 ‘정통성’에 대한 문제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던 것이다. 즉 고어 후보가 재검표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이미 승자를 결정해놓고 재판을 열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판결이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2일의 판결은 자신들의 지난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어떻게든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앞뒤가 안 맞는 문구들이었을 뿐이다.

뉴욕대학교 법대의 새뮤얼 이사카로프 교수는 대법원의 이같은 판결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첫째로 대법원은 정치적인 사건에 처음부터 관여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이번 대선에 연방대법원이 개입할 것이라고 본 학자나 법률가는 거의 없었다. 지난 11월 캐서린 화이트 플로리다주 국무장관의 개표마감일에 대한 논란에 대해 부시 진영이 대법원에 항고했을 때만 해도 기각되리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비록 플로리다주 대법원에 질의형식으로 환송하기는 했지만 대법원이 이 사건을 심리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지난 50, 60년대 연방대법원이 시민권운동에서 정치적 관여를 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당시는 “의회가 분열돼 있지도 않았고 대법원도 전원일치 판결을 내릴 수 있던” 때로 지금과는 정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기준을 갖지 않은 수개표는 위헌이라는 이 판결은 ‘투표권을 확대해석한 의미’가 있지만 그렇다면 왜 애초 어떤 곳은 광학투표기, 어떤 곳은 펀치식 투표기 등으로 서로 차별화된 투표기를 썼던 것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문제는 대법원의 다수파도 몹시 고심했던 듯하다. 그래서 이 판결은 다소 기괴하게도 ‘이 판결은 이번 사태에만 국한된다’는 제한을 두고 있다. 또 만약 시간이 문제시된다면 왜 처음부터 스태이 결정은 내렸냐는 것이다. 이는 달리기 선수에게 발목을 묶어놓고 못 뛰게 한 다음에 경기시간 끝났으니까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제기되는 의문은 다수판결에 가담한 렌퀴스트, 스칼리아, 토머스 대법관은 물론 케네디 대법관과 오코너 대법관은, 연방은 각주의 권한을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과는 달리 이번에는 연방법원의 개입을 찬성했다. 소수파의견을 낸 긴즈버그 대법관은 이 점을 문제 삼으면서 관례처럼 돼 있는 소수파의 서명방식 “나는 경의를 표하며 반대한다”(I respectfully dissent)에서 ‘경의를 표하며’(respectifully )를 생략한 채 서명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결국 다수파 견해에 대한 비판의 요지는 이 판결이 ‘법리’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 ‘당파적 이해’에 따른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의혹은 단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정치적 판결도 아닌 사적 판결?

큰 파문을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몇몇 대법관은 이번 재판을 맡을 자격이 없다는 주장이 있었다. 즉 대법관 개인의 이해관계와 대선관련 재판이 얽혀 있다는 주장이었다. 유일한 흑인대법관이자 줄곧 부시 후보의 손을 들어준 클레런스 토머스 대법관의 경우 부인이 보수파의 싱크탱크인 해리티지 재단에서 부시 후보가 차기 대통령이 되었을 때 대의회관계 업무를 맡을 사람들을 채용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밝혀져 제척사유(법관이 자신이 맡게 된 재판과 사적인 이해관계에 있을 때는 재판에서 물러나도록 한 원칙)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미국 법상으로도 재판이 그 법관의 배우자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제척사유에 해당한다. 토머스 대법관의 부인은 신문과의 회견에서 “우리는 베갯머리에서 재판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며 자신이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의 공정성에 의문을 던지는 또 한 가지 요인이 된 것은 분명하다.

이번 선거재판의 일등공신인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은 그의 아들 셋이 모두 부시 후보를 변론했던 변호사들의 사무실 소속임이 밝혀져 역시 ‘제척사유’라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그의 큰아들이 소속된 회사인 올슨 변호사(대법원에서 부시 후보를 변론했다)가 심리 도중 어려운 질문에 봉착하거나 다소라도 상대편 주장을 인정할 듯할 기미를 보이면 스칼리아 대법관이 먼저 나서서 이를 반대하는 유도 질문을 해서 “법관인지 부시 후보 변호인인지 모르겠다”는 비아냥을 받았다.

거기다가 스칼리아 대법관의 경우 부시가 대통령이 되면 차기 대법원장으로 유력한 인물이라는 점도 문제였다. 샌드라 오코너 대법관은 남편이 공화당 인사들과 친분이 깊다는 점, 그리고 렌퀴스트 대법관은 닉슨 전 대통령의 골수 추종자로 자신이 은퇴하고 난 뒤에도 대법원이 보수주의적 전통이 계속 유지하기를 희망하며 건강이 안 좋은데도 불구하고 클린턴 대통령 정권하에서 극구 은퇴를 거부해왔다는 점 등등이 모두 구설수에 올랐다. 그래서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앤서니 루이스는 아예 “정치철학은 물론, 이데올로기적 성향에 따른 ‘정치적 판결’도 아닌 ‘사적’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대중시위는 두려워…

(사진/당선이 확정되자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부시(위)와 패배를 인정하고 있는 고어)

미국에서 법원의 신화는 객관성, 정치적 중립성 그리고 절대적 권위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제기된 수많은 소송 과정에서 보여주듯이 이들의 판정을 예측하는 근거는 이들이 어느 당에 의해 임명되었는가, 이들이 어느 당과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색채를 같이하고 있는가였고 그 예측들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따라서 정당들은 자신들이 원하지 않은 결과가 나올 때마다 스스로 만들어준 법원의 권위를 스스로 훼손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더불어 법원 스스로도 그같은 예측에 들어맞는 판정을 내렸다.

플로리다주 대법원이 다수의견으로 ‘전 선거구에 대한 미개표 투표의 재검표’를 명령했을 때, 공화당 의원들은 이들 법관들을 ‘당파적 놈들’이라고 비난했다. 더 나아가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대법관 일부가 스스로 이 재판의 공정성을 문제삼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결국 최대의 피해자는 법원이라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법과 정치의 은폐된, 안락한 별거가 불가능해지고 이제는 한 밥그릇 안에서 서로를 겨냥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점에서.

그러나 법원보다도 더 큰 피해자는 이 정치드라마의 전말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국민들일지도 모른다. 이번 미국 대선의 개표과정에는 온갖 정치적, 법률적 논란이 등장했지만 한국의 경험에 비춰본다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두 가지 사안은 거의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하나는 재선거 여부에 대한 논의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오히려 미국인들이 자랑으로 삼는 ‘비폭력’, 즉 대중이 사법적 또는 정치적 타결에 기대를 갖고 직접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후자부터 먼저 살펴본다면 폭력사태까지는 아니더라도 플로리다주뿐만 아니라 미국 각지에서 선거결과에 대해 각종 시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시위의 양상이나 구호는 지극히 제한되고 통제된 것이었다. 이들 시위는 큰 갈래로 본다면 부시의 승리를 인정하라는 주장과 개표를 끝까지 지켜보아야 한다는, 단지 민주나 공화 양당 후보의 어느 한쪽을 지지하는 각당의 지령을 받아 수행하는 동원된 집회였다. 유일한 예외는 개표 첫날 플로리다 마이애미시에서 벌어진 유대인들과 흑인 합동의 (유례가 전혀 없는 일이다) ‘버터플라이 투표용지’에 대한 항의시위가 있었을 뿐이다. 자신들의 자발적인 주권행사가 왜곡되었다는 항의는 그러나 그 이상으로 연장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민주당이나 공화당 모두 시위가 ‘정치적 규모’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흑인들의 참정권 제한에 항의하기 위해 대중적 동원력이 있는 민주당의 제시 잭슨 목사가 플로리다 현지로 내려가 ‘민주주의의 기본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를 조직하려고 했을 때, 민주당 지도부는 이를 극구 만류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처음부터 사태가 법률적 쟁송 이상으로 발전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이들은 잭슨 목사의 선동이 60년대의 시민권쟁취 운동을 환기시킬까봐 두려워했을 뿐만 아니라, 선거결과를 둘러싸고 ‘대중투쟁’이 벌어질 것을 경계했다. 무엇보다도 민주당 지도부가 우려한 것은 대중집회가 공화당의 카운터 어택(반대공격)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었다. 민주당보다 이념적으로 훨씬 단결력이 강하고 정치적으로 활성화돼 있는 공화당과의 대중적 충돌이야말로 민주당 지도부의 소심과 현실 안주, 그리고 근거없는 낙관적 기대(재판을 통해서 투표결과를 뒤집을 수 있다, 설사 이번 대선에서 패한다 치더라도 2년 뒤의 의회선거에서는 부시의 정통성을 문제삼아 승리하여 의회를 장악할 수 있다 등등)에 가장 큰 적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은 처음부터 한쪽 무기를 내던지고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부시가 보여준 ‘안정’은 기득권 수호

제시 잭슨 목사의 실패한 집회를 끝으로 민주당 내의 급진적인 분파는 급속하게 대열로부터 멀어졌다. 따라서 민주당의 개표 이후 기본 전술은 법률소송과 고어 및 몇몇 측근들의 개인적 언론 활동에만 국한되었다. 의회의 민주당 지도부는 형식적으로만 고어를 지지하는 척했으며, 사태가 장기화하고 백인 주류사회의 여론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오히려 고어에게 사퇴압력을 넣는 데 앞장섰다. 대통령직이라는 개인적 야망이 걸려 있던 고어와 그 수혜를 함께 입을 최측근만이 외로운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고어는 법정에서 “모든 투표는 헤아려져야 한다”며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의 수호자로서 자신을 부각시키는 전략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법정 민주주의’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법원은 각기 민주당 지지와 공화당 지지라는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에서 정치재판을 이끌어나간, 그러나 법치라는 명분 때문에 고어가 부정할 수 없었던 몇몇 개인의 법원이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수호자’ 고어가 법정 외부의 어떠한 대중적 힘과도 결합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집회를 적절하게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형성에 도움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이끌어나간 것은 부시 후보의 공화당 진영이었다. 이들은 재검표를 반대하는 소규모 집회를 전국적으로 조직했을 뿐만 아니라 워싱턴시에 이른바 언론대책반을 두고 각지의 언론 인터뷰 주선 및 여론환기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뿐만 아니라 부시는 개표 당일의 잠정적 우세를 바탕으로 이미 ‘대통령 당선자’ 행세를 하며 자신의 ‘가부장’적 스타일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비록 대중은 민주, 공화 양당으로 갈려져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사람들은 그에게서 ‘안정’을 보았다. 다시 말해 미국사회가 선택한 것은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에 따른 정책변화(특히 의료보험, 사회보장, 소수자 차별문제 등은 부시의 구상대로 될 경우 어마어마한 변화를 불러일으킨다)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안정과 영광이었다. 그 정치적 안정과 영광의 핵심은 다수의 지배도 아니고 정책의 연속성도 아닌 사회적 기득권의 유지에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민주적 원칙의 포기는 단지 민주, 공화 두 정당이 투표를 위해 대중을 최대한 동원하고 이후의 정치적 과정에서는 최대한 대중을 배제하는 2중 전략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인들 스스로 이같은 의식이 대단히 희박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선거 4주 뒤, 아직도 선거결과가 안개 속을 헤매고 있을 때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미국인의 25%만이 플로리다주의 개표가 공정하게 정확하게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하지만, 60%는 고어가 더이상 법정 다툼을 하지 말고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한 것이다. 산술적으로 말해 최소한 35%는 개표는 부정확하지만 고어는 물러서야 한다고 본다는 것이다. 부정확한 결과에 승복하라는 것이 바로 미국의 여론이다. 대법원의 판결 이후에는 33%는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대답했지만 동시에 80%가 부시를 정통성이 있는 대통령이라고 응답했다. 적어도 13%는 판결은 문제가 있지만 대통령으로서의 정통성은 있다고 본 것이다.

재선거의 실종, 민주주의의 실종

그러나 만일 결과가 부정확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면 ‘재선거’는 왜 논의되지 않는가? 개표 직후 대중의 열기가 가장 고조된 시점에서 조차 미국인의 1/4 미만만이 재선거를 지지했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아예 여론조사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놀랍게도 미국은 재선거의 전통이 전무한 나라다. 재선거가 필요없을 만큼 투개표 관리가 잘 이뤄져서가 아니라, 단지 재선거를 회피하기 위한 모든 제도적, 사회적 노력들이 충만한 사회이다. 최악의 대선으로 기록된 1876년의 선거에서 민주, 공화 양당의 후보가 각기 자신들이 과반수 이상의 선거인단을 확보했노라고 다투었을 때에도 그 해결책으로 재선거가 논의된 적은 없었다. 단지 양당 동수로 협상위원회를 만들고 결국은 의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했다.

이미 헌법에 선거 결과에 문제가 있을 때에는 재선거가 아니라 의회에서의 해결방식을 명시해놓고 있다. 국민들은 일단 투표한 뒤에는 온갖 제도와 법률의 이름으로 배제된다. 결과가 모호할 때, 최종적인 결론은 정치인들의 손에서 협상과 담합으로 또는 법원을 정치적 지렛대로 이용한 다각적인 경쟁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지 국민에게 다시 물어서 확인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끝난 뒤 인터넷상의 토론방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유행처럼 쓰였다. ‘Indented Democracy.’(가장 적당한 번역은 아마도 ‘무늬만 민주주의’인 것 같다)

뉴욕=이공순 통신원 ksl21@hani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