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추악한 벤처의 예정된 종말

정·관계와의 ‘검은 공생’ 등 탈법으로 연명… 감시·견제도 없이 문어발식 행각

‘벤처, 너마저!’ ‘금융감독원이 어떻게 이럴 수가!’

동방금고의 불법대출 및 로비의혹사건에 대한 여론의 반응을 간추리면 이 두 가지이다. 한 사이비 벤처기업인이 사채업자와 짜고 인수한 금융기관을 사금고처럼 운용하며 재벌식 문어발 사업확장을 해오다 파산을 했으며, 이런 불법행위를 묵인 또는 방조해주는 대가로 금감원을 비롯해 정·관계와 언론 등에 광범위하게 로비를 펼쳤다는 게 이번 사건의 개요이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나돌던 벤처와 정·관계간 ‘검은 공생’의 먹이사슬이 드러난 것이다. 특히 이번 사건에는 비리구조의 한가운데에 기업·금융개혁의 야전사령부 구실을 해온 금감원의 간부가 가담해 충격을 더해 주고 있다. 중병환자를 수술하는 의사의 손에 온갖 병균이 잔뜩 묻어 있는 꼴이나 마찬가지이다.

독 묻은 금감원이 벤처의 병을 키웠다

사건의 주역인 정현준(33) 한국디지탈라인 사장은 정부의 벤처육성 정책과 벤처붐을 이용해 무늬만 벤처 흉내를 내면서 온갖 불법금융행위를 저질렀다. 그는 95년 초 대학을 졸업한 뒤 M&A(기업인수합병) 회사에 발을 디뎌 여러 가지 금융수법을 익힌 뒤 96년 말에 친구에게 빌린 돈 3천만원으로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망벤처기업의 M&A를 주선해주는 정도의 활동만 하다가 코스닥 활황이 시작된 98년 하반기부터는 직접 벤처사냥에 나섰다. 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98년 10월 사채업자 이경자(56·동방금고 부회장)씨와 인연을 맺고 나서부터이다. 이씨와 손을 잡자마자 동방금고를 인수해 든든한 자금동원력까지 갖췄다. 금고에 고객이 맡긴 돈을 이씨의 차명계좌를 통해 마구 빼내 20여개 벤처기업뿐만 아니라 금융업, 언론, 심지어 연예인매니저먼트와 영화사업에까지 발을 뻗쳤다. 사업확장 자금은 주로 동방, 대신 두 금고의 고객예금에서 조달했다. 금감원 조사결과 드러난 불법대출금 637억원은 이경자씨의 차명계좌 등을 이용해 돈세탁을 거친 다음 정씨의 기업사냥 재원으로 쓰인 동시에 일부는 정·관계 실세들에 대한 로비자금으로도 흘러간 것으로 추정된다.

정씨는 금고돈 빼내기와 더불어 사설투자펀드를 이용한 주가조작까지 저질렀다. 지난 7월 동방금고 임직원들의 자금 22억5천만원 등 모두 70억원짜리 사설펀드를 만들어 역시 자기가 인수한 평창정보통신 주식에 투자했다. 이 펀드에 바로 금감원의 장래찬 전 비은행검사국장이 다른 사람 이름으로 1억원을 넣었다. 그러나 처음에 주당 1만1천원에 매입한 평창정보통신 주가가 3천원대로 떨어지자 금고돈을 이용해 정 국장 몫의 주식을 다시 1만1천원에 되사줬다. 장 국장은 정현준 사장이 한국디지털라인 투자목적으로 만든 또다른 사설펀드에도 3억5900만원을 넣어 역시 디지털라인의 주가가 떨어지자 투자원금을 그대로 돌려받았다.

정형준 사장은 로비의 화신이었나

이런 금감원 간부의 ‘검은 커넥션’은 동방, 대신금고에 대한 부실감독으로 이어진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대신금고에 대한 정기검사에서 자기자본 35억원을 초과한 43억원의 출자자 대출을 적발하고서도 경고조처에 해당하는 ‘경영지도 명령’만 내렸다. 당시 김영팔 대표와 이수원 전무(현 대표)에 대해서는 처음에 면직조처 했다가 나중에는 재심을 거쳐 이 전무에게는 2개월 정직으로 징계수위를 낮췄다. 또 일선 검사요원들이 “계열사인 동방금고와 거래내역을 캐면 출자자 대출규모가 더 나올 수 있다”며 연계검사를 건의했는데도 윗선에서 묵살했다.

정형준 사장은 다른 부도덕한 벤처기업인의 금감원 로비에 다리를 놔주기도 했다. 코스닥등록기업인 유일반도체의 장성환(39) 사장이 지난해 6월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헐값으로 배정받은 것과 관련해 금감원 조사를 받게 되자, 장 사장으로부터 10억원 상당의 BW를 넘겨받아 현금화한 뒤 다시 이경자씨를 통해 금감원 임직원들에게 뿌린 것으로 검찰 수사결과 들어났다. 지난해 6월 발행된 BW는 당시 10만원이 넘던 유일반도체 주식을 2만원(행사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 발행총액 30억원어치의 대부분이 대주주인 장성환 사장에게 배정됐다. 금감원은 지난해 8월 유일반도체의 BW 헐값발행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으나 법적 제재근거가 없다며 올해 2월 경고조처만 했다.

동방금고 사건은 국내 벤처산업의 입지가 얼마나 취약한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진정한 벤처정신이나 기술력 없이 헛된 ‘대박꿈’을 좇는 사이비 벤처인들이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게 벤처산업의 현주소이다. 이런 사이비 벤처인들의 뒤에는 정현준-이경자씨의 관계에서 드러났듯이 사채업자들이 있다.

벤처산업은 우선 진입이 쉽다. 적당히 사업구조만 만들면 벤처행새를 할 수 있다. 일반법인의 법정 최소자본금이 5천만원인 것과는 달리 2천만원만 있으면 회사등록을 할 수 있다. 창투사 등 벤처캐피털을 통해 정책금융을 받으면 6년 동안 법인세도 50%나 감면받는다. 금융을 조금 아는 약삭빠른 사람들은 기존 벤처회사에서 일하는 기술인력들을 적당히 빼와서 비슷한 아이템으로 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기술력과 수익모델이 취약한 벤처인들은 처음에는 ‘연줄맺기’에 더 신경을 쓴다. 돈줄을 트이게 할 수 있고 여러 가지 사업권을 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면 예외없이 표적이 된다. 벤처 역시 일단 사업기반을 닦기 위해서는 ‘든든한 배경’이 가장 확실한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인터넷 운용소프트웨어 제조업을 한 벤처기업인의 경험담을 들어보자.

“정치인들을 상대로 일찍부터 홈페이지를 많이 만들어줬다. 지난해 중순 코스닥시장이 뜨는 데 자극받아 회사를 하나 차렸는데 처음에 벤처 지원자금을 받지 못해 한두달 고생했다. 그런데 앞면이 있는 국회의원에게 부탁을 했더니 바로 통하더라.”

각종 불법·비리사건에 걸렸을 경우를 대비해 방패막이로 정치인, 공무원, 기자들까지 끌어들이기도 한다. 서울지역 한 일선경찰서의 수사계장 ㅂ씨(35)는 “갑자기 고등학교 동창 벤처인들의 모임이 있다기에 나가봤더니만 검찰, 금감원, 청와대, 기자 등 우리 사회에서 힘 좀 쓰는 분야의 동창들까지 다 모였더라. 정보교류하자는 취지이고 선후배들 모임이라서 그냥 나가고 있지만 요즘에는 찝찝하다”고 말했다.

정보교류 차원에서 비리사슬 만든다?

(사진/정현준 커넥션에 동원된 핵심 2개사인 서울 동방상호신용금고(위쪽)와 한국디지탈라인)

이렇게 학연, 지연을 총동원해 영향력 있는 인물들과 관계가 두터워지면 이른바 ‘전략적 주주구성 단계’에 들어간다. 주식을 무상 또는 헐값으로 줘 주주로 모시는 것이다.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리기 곤란한 정·관계 인사들은 사설펀드로 끌어들인다. 그냥 사설펀드에 투자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원금 보장을 약속한다. 특히 코스닥시장이나 코스닥 등록 이전의 장외시장에서 주가조작을 하려는 벤처기업들은 사설펀드가 기본도구이다. 코스닥시장이 식기 이전에는 인터넷의 각종 증권사이트를 이용해 사설펀드의 가입자를 모은 다음 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여기에 정·관계 실세들까지 끌어들이면 작전은 백전백승이다.

그러나 벤처인들의 연줄찾기가 반드시 비리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 동방금고 사건 하나로 벤처기업 대부분이 정·관계와 유착되어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벤처기업협회와 정보통신중소기업협회,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등 벤처 3단체는 지난 10월30일 공동성명을 내고 “정현준씨는 벤처기업가가가 아니라 단지 사이비 금융전문가”라며 이번 사건으로 벤처기업 자체가 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여론화되는 것을 경계했다. 일부 벤처를 표방하는 사람들의 잘못을 벤처기업 전체의 잘못으로 일반화하지 말아 달라는 호소이다. 김영우 한국기술투자상무는 “기술력 없이 자금만 끌어대 한몫 보려는 사이버 벤처기업들은 극소수”라며 “이런 때일수록 진정한 벤처정신이 필요하고 벤처기업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하는데 잘못하다가는 벤처기업 다 망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그렇더라도 사이비 벤처인들이 저질러놓은 불법·비리행위가 재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겨우 A4용지 2∼3쪽짜리 사업계획서만으로 벤처캐피털과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끌어들여 20배 이상의 자본이득을 얻은 벤처기업들이 많다. 이 종자돈으로 본래 목표로 했던 사업에서는 죽을 쑤면서 이리저리 돈놀이만 하는 기업들이 한둘이 아니다. 주식시장의 침체로 추가자금조달이 어려운데다 본격적인 매출발생 가능성도 희박해 곧 줄줄이 부도를 낼 형편이다. 코스닥시장이 다시 살아나 벤처와 금융간 선순환이 필요한데, 이번 동방 사건 때문에 주식시장에서 벤처에 대한 눈길은 더욱 싸늘해졌다. 결국 한 차례 큰 홍역을 치른 다음에라야 옥석이 제대로 가려져 벤처와 금융이 다시 결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증권의 김경중 코스닥분석1팀장은 “벤처란 선진국에서도 장밋빛 환상에 젖어 잘 나가다도 어느 날 갑자기 폭삭 망하기도 한다”며 “금융기관과 벤처캐피털이 벤처의 기술과 시장성에 대한 평가능력을 제대로 갖춰야지만 벤처산업이 안정적인 괘도에 접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제는 일반투자자들도 사이비 벤처인들의 놀음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며 우선 무엇보다 경영자의 자세와 자질을 철저히 살피고, 불분명한 자금줄을 끼고 주식놀음을 해서 여러 사업에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는 기업은 아예 관심을 두지 말라고 권유했다.

금융감독 기능만으로 검은돈 막기 힘들어

시장의 정화능력을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도 시급하다. 벤처를 이용한 금융사기를 금융감독기능만으로 근절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금감원의 자정결의가 실현되더라도 그렇다. 동방금고는 3년7개월 동안이나 한번도 검사를 받지 않았다. 금감원은 금고에 대해 6개월에 한번씩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보고받아 이 서면보고를 토대로 비율이 4% 미만인 경우에만 검사를 한다. 그런데 동방금고가 보고한 자기자본비율은 무려 18.6%이다. 또 대신금고는 지난해 말 불법대출로 경고를 받고서도 몇달 만에 또다시 같은 내용의 불법을 저질렀다. 이런 허위보고와 불법행위를 사전에 차단하려면 금감원 검사인력이 지금보다 최소 10배는 늘어나야 한다. 이미 시장이 감독당국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복잡하고 방대해진 것이다.

지평법률사무소의 양영태 변호사는 “이번 동방금고의 비리를 노조에서 맨 처음 제기한 사실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며 “시장에서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들끼리 서로 감시·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말로만 자정과 개혁을 외칠 게 아니라 집단소송제와 집중투표제의 도입 등 제도적으로 개혁의 발판을 마련해줘야 벤처를 둘러싼 검은돈을 차단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박순빈 기자sbpark@hani.co.kr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김창석 기자kimc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