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동기식 의무화의 애매한 동기

정통부가 IMT-2000 기술표준 선정에 무리수 둔 배경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까

정부가 차세대이동통신(IMT-2000) 기술표준으로 동기식을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방식은 올 연말 서비스사업자를 선정할 때 한국통신, SK텔레콤, LG 등 3개 컨소시엄이 모두 비동기식 사업계획서를 낼 경우 1개 업체는 반드시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부터 1년6개월 동안 20여 차례의 공청회와 공개토론회, 당정협의를 거쳐 지난 7월 확정해 발표한 정부방침을 뒤집은 것이다. 기존 정부방침은 IMT-2000 기술표준은 전적으로 서비스업계의 자율에 맡긴다는 것. 안병엽 정보통신부 장관은 “모든 예비사업자들이 유럽·일본 방식인 비동기식(W-CDMA)을 하겠다고 나오는 바람에 국내산업의 균형적인 발전과 불확실한 기술장래에 대비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개입하게 됐다”며 자율정책 철회 배경을 설명했다.

발표문에 ‘기술표준협의회’ 뺀 속내

정부가 “오락가락한다”는 비난까지 들어가며 방침을 바꿔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는 몇 차례의 논의를 통해 동기-비동기 방식이 균형있게 발전해야 한다는 국가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판단했다는 토를 달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다. 기술표준에 대한 정부의 의심스런 행적을 따라가다보면 우리나라 차세대이동통신 정책의 현주소가 압축적으로 나타난다.

우선 안병엽 장관의 발표가 있던 지난 10월10일로 돌아가보자. 이날 오후 5시로 예정된 장관의 발표를 앞두고 일간지 마감시간을 배려해 공보실에서 미리 돌린 발표문엔 ‘기술표준협의회의 합의결과를 존중해 (정책을 변경했다)’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가 최종 발표문에서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기술표준협의회는 정부가 기술표준에 관한 제조업체와 서비스업체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업계획서 제출 마감시한을 한달 연기해가면서 만든 임시협의기구이다. 학계, 연구소 관계자와 동기식을 주장하는 장비제조업체(삼성전자와 현대전자)와 비동기식을 주장하는 3개 서비스업체(SK텔레콤, 한국통신, LG) 임원들이 참여했다.

네 차례의 비공개회의와 한 차례의 공청회를 거쳤지만 결국 완전합의에 실패하고 어정쩡한 합의문 하나만을 발표했다. 발표문에서 관심을 끈 부분은 ‘이용주파수 대역에 관계없이 동기-비동기의 병행적 발전이 필요하다’는 조항이었다. 협의회 위원장인 곽수일 서울대 교수는 “어떤 주파수 대역에서도 동기-비동기 두 방식이 병행 발전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2㎓대역의 차세대이동통신 주파수 대역에서도 동기-비동기가 골고루 발전해야 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업자가 비동기식으로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서비스업체들의 의견은 완전히 달랐다. 동기식은 기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10월부터 일부 사업자들이 기존 셀룰러나 PCS주파수 대역(800㎒, 1.7㎓)에서 상용서비스를 시작한 IS-95C 기술을 고도화하면 바로 동기식 서비스이므로 모든 사업자가 비동기식을 선택해도 기술의 병행 발전은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합의를 했다는 것이다. 일부업체는 “합의를 하는 과정에서 나눈 대화의 녹취록을 정통부에 제시해 진실을 밝히겠다”며 “모든 주파수 대역에서 동기-비동기가 발전해야 한다면 지금의 셀룰러, PCS주파수 대역에는 왜 비동기식 서비스가 없느냐”고 반문했다.

정통부의 무서운 입김은 살아 있다

정부는 독단적으로 결정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기술표준협의회의 합의결과에 따라’라는 문구를 넣었다가 논란이 생길 소지가 있자 삭제한 것이다. 기술표준협의회의 합의결과에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정부가 갑자기 정책까지 바꾼 것에 대한 설득력 있는 명분이 없어지는 것이다.

안 장관도 기술표준협의회가 구성될 당시 협의회가 어떤 결과를 가져와도 가감없이 따르겠다는 뜻을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기술표준협의회 합의문 가운데 유일하게 정부개입의 명분으로 삼을 수 있는 대목은 ‘서비스산업과 제조업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동기식에) 정부가 적절한 유인수단(인센티브)을 강구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곽 위원장은 이 부분에 대해 “유인수단은 말 그대로 인센티브에 국한되며 정부가 특정표준을 강요한다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업체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말과는 다르다”며 “정부가 제시하는 인센티브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전적으로 업체의 판단”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이 부분을 근거로 동기식을 의무화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정통부는 처음부터 동기식을 버릴 생각은 없었습니다. 사업자들 가운데 한곳쯤은 반드시 동기식을 하리라 믿었으니까요. 동기식 기술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상용화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기술의 연장선에 있고 그 기술을 가장 잘 아는 업체들이 우리나라 서비스업체들입니다. 그런 업체들에 뒷통수를 얻어맞은 겁니다.”(정통부 고위당국자)

그의 말대로라면 정통부의 정책에서 ‘업계자율’은 애초부터 없었던 셈이다. 통신서비스업계에서 정통부의 말 한마디는 엄청난 위력을 지닌다. 업체들은 소비자 약관 문구 하나 바꿔도 정통부의 도장을 일일이 받아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정통부의 심기를 잘못 건드리면 밭 부쳐먹고 살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정설로 돼 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정통부로서는 모든 업체들이 비동기식을 주장한다고 해서 동기식 업체 하나를 만들어내는 것쯤은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업체들의 반발은 예전하고는 달랐다. “정통부요? 무섭지요. 지난달 정부가 사업계획서 마감시한 보름을 앞두고 갑자기 기술표준협의회라는 기구를 만들면서 마감을 연기했을 때는 앞이 캄캄했습니다. 으르고 달래는 정통부의 크고 작은 입김을 피해 몇달을 꿋꿋이 벼텨왔는데 다시 한달 동안 시집살이를 해야 하니 말이죠. 그래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기술표준은 단지 장사를 잘하고 못하고 하는 마케팅 약관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업의 미래가 달린 일이었기 때문이지요.”(통신서비스업체 관계자)

또 하나의 사건을 살펴보자.

지난 10월2일 기술표준협의회는 LG전자가 2002년 5월까지 비동기식 상용장비 개발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실을 검증하기 위해 경기도 안양의 LG전자중앙연구소를 실사했다. 삼성전자 등 동기식 장비 제조업체들은 국내에는 비동기 기술이 없어 비동기식을 하면 안방을 모두 외국업체들에 내줄 것으로 경고하고 있던 때였다.

실사팀은 현장검증을 마친 뒤 2002년 5월까지 충분히 상용화가 가능하다는 내용의 실사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정부가 10일 발표한 기술협의회 최종보고서에는 10여개 부품과 기술에 대해 ‘상용화 가능’ 판정을 받았던 내용이 모두 ‘판정 보류’라는 단어로 탈바꿈했다. 기술보안을 이유로 실사에 참가하지 못하고 서류심사로 대체한 삼성전자 등 일부업체와 교수들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 보류결정을 내렸다는 게 정통부의 설명이었다.

왜 그렇게 동기식에 집착했나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통부 개입의 흔적은 나타난다. 한 기술협의회 위원은 “실사팀 인적구성이나 내용에 문제가 많으니 나중에 객관성 논란을 빚을 수 있다는 내용의 전화를 정통부로부터 받고 판단을 보류했다”고 말해 정통부의 개입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그러면 정통부는 왜 그렇게 동기식에 집착했던 것일까? 전문가들은 CDMA 기술개발의 주역임을 자처하는 정통부 내부의 분위기가 큰 몫을 차지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CDMA 기술에 대한 정통부의 애착은 남다릅니다. ‘정통부 무용론’이나 ‘부처 통폐합’ 문제가 나올 때마다 정통부를 지켜준 것이 CDMA였지요. 이 기술을 세계에서 최초로 상용화했다는 점과 수출 효자론은 그런대로 약효가 쓸 만했습니다. 차세대이동통신에서 이 기술에 뿌리를 둔 동기식 사업자가 없으면 정통부는 과거를 부정해야 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부담이 컸을 겁니다.”(전 정통부 고위관료)

정통부는 그동안 단말기 수출물량 통계를 발표할 때도 비동기식의 뿌리인 유럽방식(GSM) 단말기 수출물량을 모두 CDMA에 포함시켜 발표해왔다. 하지만 GSM 단말기는 이미 지난해부터 CDMA 단말기 수출물량을 앞서기 시작했다. 올 들어 8월까지도 GSM 단말기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6.5% 증가한 21억8천만달러를 기록해 59.2% 증가에 그친 CDMA 단말기 18억9천만달러를 멀찌감치 앞섰다. 그만큼 세계 통신시장이 비동기식 지배체제로 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비동기식을 주장하는 서비스업체들은 이 점을 들어 “세계 대형업체들 틈바구니에서 시스템장비를 수출하기는 어차피 어렵고 우리나라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단말기 정도인데 국내 서비스가 전혀 없어도 수출은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느냐”고 주장하고 있다. 또 “국내에서 GSM 서비스도 제공되었다면 더 큰 세계시장 점유율 달성이 가능했을 것”이란 설명도 덧붙이고 있다.

옛 경제기획원 출신인 안 장관과 체신부 출신 관료들의 미묘한 갈등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안 장관은 시장주의자임을 자처한다. 시장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그의 오랜 관료생활에서 얻은 철학이다. 그의 이런 철학은 기술표준을 업계자율 선택에 맡긴다는 애초 차세대이동통신 정책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지난 7월12일 정부의 차세대이동통신 정책을 발표하면서 안 장관은 “정말 기술표준에 개입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10년, 20년 뒤 업체들의 미래가 달린 일에 정부가 어떻게 감놔라 대추놔라 할 수 있느냐”는 말로 대신했다. 그 이후에도 안 장관은 “정부의 정책에는 전혀 변함이 없으며 정부가 대주주인 한통에 대해서도 선택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안 장관은 또 사석에서 “서비스업체들이 안방장사에만 머물지 않고 이제라도 세계기술의 주류인 비동기식을 하겠다고 나오는 것도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냐. 장비 제조업체들도 정부에 요구만 하지 말고 그런 변화를 전향적으로 따라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안 장관의 이런 방침에 일부 체신부 출신 관료들은 크게 반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체신부 출신 고위관료는 “안 장관은 시장은 알지 몰라도 통신시장은 잘 몰랐다. 아수라장 같은 통신판은 그렇게 세련된 자율정책으론 안 된다. 장관의 우유부단함이 지금의 혼선을 낳게 했다”고 안 장관을 비난했다. 안 장관이 기술표준 문제에 관해서 일부 실무국장들과 잦은 충돌을 빚었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비동기식 추세’가 이어진다면…

그러나 정부가 정책을 급선회한 좀더 근본적인 배경에는 삼성전자 등 일부 장비업체들의 로비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증권가와 통신업계사이에서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청와대 압력설, 여권의 정권재창출팀 개입설 등 그럴싸한 줄거리를 가지고 나돌고 있는 이야기들은 진위여부와는 상관없이 정부에는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위험부담을 안고서 정부가 정책까지 바꿔가며 내놓은 결과가 어찌됐건 특정업체가 사활을 걸고 주장해온 결과와 일치하는 것만으로도 그렇다.

이와 함께, 스스로는 원하지 않는데 정부의 구도에 굴복해 울며겨자먹기로 동기식 서비스에 뛰어들었다가 4, 5세대 통신시장이 비동기식으로 바뀌어버리면 누가 ‘시장실패의 책임’을 지느냐도 명확히 해야 할 것 같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8 대 2의 비율을 보이고 있는 비동기-동기시장이 앞으로 비율격차를 더 넓힐 경우, 물건을 팔고나면 그만인 장비업체에는 큰 손해가 없지만 수조원을 들여 모든 시스템을 동기식 기술에 맞춰놓은 서비스업체는 그대로 망하기 때문이다.

함석진 기자/ 한겨레 디지털부sjham@hani.co.kr

IMT-2000 기술표준정책 변화 일지

▶6월26일: 212회 임시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안병엽 장관 답변

-시장원리에 따르기로 한 이상 모든 사업자가 비동기식을 선택하더라도 행정지도 등의 방식으로 동기식 사업자를 끼워넣으려는 노력은 없을 것이다.

▶7월12일: 2GHz 주파수대 이동통신(IMT-2000) 사업자 선정정책 발표문

-기술표준은 동기-비동기 양방식 모두 업체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표준으로 정하되, 업계가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9월6일: 정통부 황중연 전파방송관리국장 발언

-정부가 표준을 '복수 및 업계 자율'로 결정한 상황에서 주파수로 특정방식을 강제하는 일은 없다.

▶9월 14일: IMT-2000 사업계획서 신청기한 한달 연기 결정

-안병엽 장관 주재 정보통신업계 대표 회의에서 기술표준에 대한 제조업체와 서비스업체의 의견이 달라 사전에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결정.

▶9월25일: 안병엽 장관 기자간담회

-기술표준 문제는 기술표준협의회에서 의견을 모아 제출하면 이를 가감없이 수용할 방침이다. 사업자들이 모두가 비동기를 선택하거나 동기를 선택해도 합의만 된다면 따르겠다.

▶10월4일:IMT-2000 기술표준협의회 합의문 발표

-이용주파수 대역에 관계없이 동기-비동기 두 방식의 병행 발전이 필요함. 서비스산업과 제조업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정부는 적절한 유인수단(인센티브)을 강구할수 있음.

▶10월10일: 안병엽 장관 기술표준정책 변경 발표

-IMT-2000 주파수를 ▷동기 ▷비동기 ▷임의 대역의 3개 대역으로 나눠 사업자 신청을 받기로 함. 기술표준이 업계자율로 결정되지 않을 경우 대비책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혼선을 초래한 점에 대해서 관련업계와 국민에 대한 유감 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