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민변서 손해배상 청구 소송진행…매매춘은 '필요악'이아닌 '절대악'

9월28일 오후 3시. 화재현장은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급경사진 계단을 오르자 미로 같은 좁은 통로가 나타났다. 바닥에는 물기가 흥건했고 전깃줄이며 합판, 스티로폼 등이 불에 탄 집기 사이에 흩어져 있었다. 숨진 이들이 살았던 쪽방은 간신히 몸을 누일 만한 공간이었다. 반쯤 불에 탄 알약 몇개와 사진, 인형, 시집 등속이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현장조사도 제대로 안 한 경찰

숨진 이들은 1천만원 이상의 빚더미에 허우적대며 이곳에서 매일 밤 성매매를 강요받았다. 하루에 적게는 4명, 많게는 13명의 손님을 받아 한달 6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지만, 빚은 줄지 않았고 몸은 점점 망가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은 불법 무허가 건물에 번진 불길에 소리 한번 질러보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군산시 대명동 ‘쉬파리’ 골목 화재사건은 매춘여성들이 처한 인권유린의 실상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동시에 매매춘을 예방하고 단속해야 할 경찰과 관계공무원의 책임범위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사건이 발생한 뒤 군산 여성의 전화를 비롯해 군산지역 각 시민사회종교단체 등은 ‘군산시 윤락가 화재사건 대책위원회’를 꾸려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책 마련을 요구했다. 군산시는 사건 직후에는 완강하게 책임을 부인했지만 결국 장례비용 전액을 대고 유족들에게 각각 800만원씩의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장례는 9월30일 오전 10시 대명동 사고현장 주변에서 노제로 치러졌다. 군산 여성의 전화 정미례 사무국장은 “이번 사건은 매매춘 현장에서 상습적으로 이뤄지는 인신매매, 감금, 갈취 등의 구조적 폭력과 매매춘을 단속하고 예방해야 할 공무원과 경찰의 직무유기가 맞물려 빚어낸 참극”이라고 말했다.

화재가 난 건물은 한눈에도 매매춘업소로 보인다. 좁은 골목에 속칭 ‘미스방’으로 불리는 커튼을 드리운 유리 출입문이 있고, 골목 벽에는 청소년 보호구역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그러나 시에서는 무허가 건물이라는 이유로 안전점검을 하지 않았고 허가받지 않은 영업소라는 이유로 경찰의 단속도 미치지 않았다. 대책위원회쪽에서는 “경찰은 최소한 이중 쇠창살, 밖으로 향한 잠금장치 등은 제거했어야 한다. 관행을 앞세워 이를 묵인한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주장한다.

불이 난 2층 업소를 임대한 전아무개(63)씨와 그의 아들 박아무개(29)씨, 숨진 여성 중 한명을 이곳에 팔아넘긴 인근 유흥가 ‘감뚝’의 포주 한명 등은 인신매매, 불법감금, 윤락강요와 갈취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은 전씨의 딸 박아무개씨와 감뚝의 또다른 포주 김아무개씨 등을 수배한 상태다. 그러나 경찰은 지금 군산 시민사회단체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업주 몇명을 처벌하는 걸로 수사를 마무리지으려 한다는 지적이다.

유족과 대책위 관계자들은 그 근거로 사건현장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점을 꼽았다. 심지어 인신매매와 감금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임씨의 일기장도 사건이 일어난 지 사흘 뒤 딸의 흔적을 찾기 위해 잿더미를 뒤지던 유족들의 손에 의해 발견됐다는 것이다. 경찰이 2층 업소의 실세인 사위 이아무개씨를 수배하지 않은 점도 의혹을 일으키고 있다. 이씨는 오래 전부터 이 지역에서 매매춘 영업을 해왔고, 불과 지난해에도 윤락강요 등으로 처벌받았던 ‘알려진’ 포주이므로 당연히 1차 수사대상이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단속과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관할파출소 직원과 시 공무원에 대한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도 축소수사 의혹을 부채질하는 중이다.

대구에서도 어처구니없는 일

군산의 시민사회단체와 여성계는 매매춘의 연결고리를 밝혀내고 불법개조, 불법영업을 묵인한 관련공무원들을 사법적으로 처벌할 것을 강도높게 요구하고 있다. 매매춘 자체를 뿌리뽑을 수 있는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은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이 목소리에 가세했다. 민변은 9월26일 긴급회의를 연 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매매춘 근절을 위한 공익소송을 제기하기로 결의하고 법률검토와 증거수집에 들어갔다.<상자기사 참조>

‘쉬파리’ 골목 화재사건에 대한 수사가 한창일 때 대구에서는 또다른 어이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이 매춘여성에 대한 업주쪽의 차용증 작성 강요를 눈앞에서 묵인한 것이다. 9월26일 밤 대구시 달성동에 있는 오래된 매매춘 지역 ‘자갈마당’의 한 업소 주인 김아무개(58)씨가 감금 위협을 느낀 업소 ‘아가씨’들의 신고로 대구경찰청 기동수사대에 긴급체포됐다. 그런데 신변보호 요청을 한 여성들이 관할파출소에 머문 동안 ‘삐끼 이모’라 불리는 업주쪽 사람이 나타나 “사장도 잡혀간 마당에 그냥 보내줄 수 없다”며 차용증을 쓸 것을 강요했다. 아가씨마다 1천만원 웃도는 빚을 지고 있는데 늦어도 10월 중순까지 갚으라는 요구였다. 업소의 또다른 ‘삼촌’도 따라와 으름장을 놓았다. 업소를 탈출한 여성들은 “그러자 파출소 직원들이 종이까지 주며 ‘어서 쓰고 가라. 자꾸 시끄러워진다’고 종용했다”고 말한다. 현재 관할파출소쪽은 차용증을 쓰는 것은 보았지만 강요한 일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불법행위로 인한 채무관계는 원천무효다. 매매춘 자체가 불법인 만큼 몸값을 지불한 것이든, 업소에 머무는 동안 빚을 진 것이든 모두 무효일 수 있다. 경찰이 이런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는지 몰라서 방관한 건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불법행위를 단속해야 할 경찰의 입장에서 두 경우 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이다.

매춘여성들이 매매춘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빚’이다. 또 이렇게 생긴 빚은 매매춘과 관련해 업주가 구속되고 실형을 받은 뒤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매춘여성들은 업소를 바꾸는 동안 몸값 명목으로 발생한 채무관계에 대해서 무지하고, 이들에게는 법이나 공권력보다는 항상 주먹이 앞섰기 때문이다.

대구 자갈마당의 업주는 그뒤로 불구속 입건됐다. 9월29일 밤 다른 지역으로 몸을 피한 대구의 아가씨들은 대구 여성의 전화 조윤숙 상담원과의 통화에서 “사장님도 나오고, 빚도 갚지 못했는데 이젠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울먹였다.

구사일생 그 다음은 차디찬 시선

9월28일 오후 4시 군산경찰서 형사계. 화재 당시 유일하게 살아남은 김형미(가명·29)씨를 만났다. 건물 3층에 있던 그는 근처에서 전기공사를 하던 한 인부가 사다리차로 쇠창살을 부수고 구해준 덕분에 살아남았다. 사건 직후 도망쳤던 3층 업주 박아무개씨가 제발로 걸어와 조사를 받을 때 김씨도 동석한 채 대질신문을 받았다. 업주 박씨가 윤락강요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는 동안 김씨는 내내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조사를 잠시 쉬는 사이 김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제주도 출신인 김씨는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집을 나온 뒤에는 “여기저기 떠돌았다”고 한다. 군산으로 온 것은 98년 10월. 화재가 난 3층은 그가 2년 가까이 일했던 ‘영업장’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했다. 그는 “여기 올 때는 빚이 420만원 있었다. 빚을 갚은 뒤로는 몸이 아파서 일을 많이 못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단속을 피하기는 어렵지 않았다”고 짧게 덧붙였다. 그는 2층에 있던 여성 5명이 모두 숨진 사실에도 무덤덤했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메마른 표정은 모든 감정이 증발한 것처럼 보였다.

경찰은 대질조사를 마친 뒤 포주 박씨를 윤락강요와 갈취 혐의로 입건하고, 김씨 역시 윤락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지만 김씨를 기다리는 건 주위의 차디찬 시선과 범법자라는 낙인뿐이다.

군산 대명동 화재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매매춘이 ‘사회적 필요악’이 아니라 매춘여성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앗을 수 있는 ‘절대악’이라는 사실이다. 이 단순한 교훈을 꽃다운 여성들의 목숨과 바꿔서 얻는다는 건 2000년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군산=김소희 기자soh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