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0년12월19일 제339호 

[이슈추적] ‘화합자’ 부시의 미래

부시가 ‘화합자’ ‘통합자’로서의 이미지를 자신의 텍사스주에서의 성공을 예로 들면서 내세우고 있다. 텍사스주가 주의회는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지만 자신이 주지사로 있으면서 민주, 공화 양당의 이해를 잘 조절해 무난하게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것이 선거 캠페인 기간은 물론 지금의 ‘국론분열’의 상황에 대처하는 부시의 자랑거리이다(그렇지만 그는 이번 대선에서는 텍사스주의 흑인들한테 플로리다주의 흑인들의 지지율 7%보다 더 낮은 5%의 지지밖에 받지 못했다. 지난 98년 주지사 재선 시절 받았던 10%보다 절반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부시는 대법원 판결 뒤 승리연설에서도 민주당 소속 하원의장이 주재하는 가운데 치르는 상징적인 제스처를 보였다. 그러나 ‘워싱턴은 텍사스가 아니다’라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텍사스주 주의회 하원의원 스스로의 입을 빌리더라도 ‘이곳의 민주당원은 다른 곳에서는 공화당원’이라고 할 만큼 텍사스주 민주당 자체가 보수주의적이다. 당연히 사이가 나쁠 리 없다. 그래서 주 내부문제에 관한 한 부시 주지사가 오히려 민주당쪽 편을 든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텍사스주의 민주당 하원의원 여럿이 부시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전국적인 선거운동을 다니기도 했다.

텍사스주의 정치상황을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민주당이나 공화당이 아니라 ‘기업가’들이 현안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달려 있다. 최근의 가장 중요한 텍사스주의 정치적 과업으로 꼽히는 지난 96년의 교육개혁은 양당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기업가들이 앞서서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시의 연방하원은 사정이 좀 다르다. 민주당도 색채가 여러 가지일 뿐만 아니라 공화당 의원들도 동북부나 북서부주 출신의 경우는 남부의 보수주의와는 다른 입장을 갖고 있다. 따라서 부시의 4년 임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부시 정권이 클린턴 정권보다 불리한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니다. 클린턴은 이른바 94년의 ‘리퍼블리컨 레볼루션’을 겪으면서 깅리치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와의 갈등으로 연방정부 폐쇄라는 유례없는 사태를 맞았고 탄핵파문으로 정치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두 번째 임기를 지냈다. 따라서 비록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에서 다소간 의석을 늘렸다고 해도 여전히 공화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 부시의 활동반경은 훨씬 늘어날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민주당이 말로는 4년 뒤의 복수를 외치고 있지만 부시 행정부에 클리턴 정권 시절 공화당이 했던 것처럼 사사건건 발목을 붙잡고 늘어질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민주당은 공화당만큼 당파적이지도 못하며, 오히려 국론통합을 대의명분으로 2년 뒤의 중간선거에서 의회를 장악하는 데 더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한국식 정치용어로 표현한다면 ‘견인’(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견인의 최종 도착점은 협조이다) 전략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부시의 발목을 잡는 것은 공화당이라고 할 수 있다. 공화당 주류의 이데올로기는 부시의 선거공약들보다도 훨씬 보수적이고 강경하다. 부시의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이들의 첫 번째 요구사항이 ‘클린턴 시절 내려진 모든 대통령 행정명령을 무효화할 것’이었다. 클린턴은 의회가 공화당에 의해 장악돼 있었기 때문에 군대 내의 동성애자 보호 및 여성의 권리, 의료보험 등 상당수의 ‘민감한’ 정책들을 법안의 형태가 아닌 대통령 명령을 통해서 관철시켜냈다. 따라서 이 조치들을 모두 무효화하고 선별적으로 수정해서 다시 내려보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부시의 성공여부는 민주당의 협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공화당의 협조에 달려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민 전체의 대통령임을 자임한 부시에게 공화당이 가장 큰 골칫거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견해는 부시를 너무 중립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텔레비전 목사이자 골수 극우파로 대선후보 지명전에도 나선 바 있던 팻 로버트슨은 자신이 부시 당선자에게 어떠한 압력도 가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며 “사람들이 뭐라든지간에 그는 그 자신으로서, 즉 보수주의의 중심으로서 행동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즉 주류 공화당 이데올로기스트들과 부시를 구별하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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