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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부실한 부실기업 청소 ‘대마불사’ 보여준 2차 부실기업 퇴출… 껍데기뿐인 회사 집어넣고 현대건설 처리에 쩔쩔매
그만큼 충격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퇴출에서 고용유발 효과가 큰 건설업체들이 집중포화를 맞아 실업대란이 우려된다. 당장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수가 정부추산치만으로도 2만명이 넘는다. 협력업체의 연쇄도산으로 불똥이 확산되면 실업자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동원경제연구소는 이번 기업퇴출의 파장에 대한 보고서에서, 올 들어 3.6∼3.7%선에 머물렀던 실업률이 연말께는 1%포인트 상승해 현재 80만명 수준인 실업자수가 연말에는 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연구소는 또 채권단이 시한부 생명연장을 선언한 현대건설과 쌍용양회까지 퇴출수순을 밟게 될 경우에는 그 영향은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돼 실업률이 더욱 높아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냉랭
부실기업 퇴출은 시장의 불신요인을 제거해 금융시스템을 복원하는 데 목적이 있다. 시장에 옥석이 뒤섞여 적정 투자대상이 어딘지를 도무지 구분하지 못할 지경이 되니까 전체 금융시스템이 마비되는 것이다. 또 정상적인 금융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해 부실기업들을 자연스럽게 정화시키지 못하면, 그 기업들이 덤핑 공세 등으로 시장을 더욱 교란시켜 멀쩡한 기업까지 위기에 내몰리는 악순환이 빚어진다. 이런 악순환 고리는 일단 정부가 나서 충격요법을 써더라도 단절시켜야 한다.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부실과 우량’을 구분해줘야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 그러나 1차 기업퇴출에서는 실패했다. 어정쩡하게 퇴출을 시켰기 때문에 2년 반 만에 또 홍역을 치르는 것이다. 정부는 1차 기업퇴출을 단행한 뒤 “인위적으로 한꺼번에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는 시장자율기능에 의해 부실기업을 정리해나갈 것이다”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그뒤에도 시장자율기능은 전혀 작동하지 않아 대우사태와 2차 기업퇴출을 맞은 것이다. 큰 부실을 남겨두고 잔챙이들만 정리해놓고서 큰소리친 결과이다.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크다. 금융가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3차 기업퇴출을 점치기까지 한다.
금융기관 잠재부실 파악도 어려워
심지어 98년에 이어 또 퇴출대상에 들어간 기업도 있다. 양영제지와 대한중석이다. 거평그룹 계열이었던 대한중석의 경우 98년 8월에 주력 사업부문과 자산을 이스라엘 이스카사에 1억1300만달러를 받고 매각해 지금 사무실에는 10여명의 직원들이 남아 막바지 청산작업을 하고 있다. 양영제지도 지난 98년 6월에 청산판정을 받고 같은 해 10월 경매가 시작돼 지난 4월12일 완료됐다. 골판지업체인 이 회사의 설비는 같은 업종의 제지회사가 사들였고 경락대금은 채권자들에게 모두 배분했다. 또 기아자동차 자회사였던 기아인터트레이드와 한라그룹 계열의 한라자원도 이번에 청산대상에 들어가 있으나, 이미 97년에 모기업의 부도로 함께 쓰러져 현재 청산절차를 밟고 있는 기업들이다. 한라자원 관계자는 “철강류, 시멘트 등 무역업을 해와 아직까지 정산하지 못한 거래가 몇건 남아 있어 현재 직원 4명을 두고 마무리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청산대상이라는 소리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채권단이 ‘껍데기 회사들’을 청산대상에 집어넣어 ‘쪽수 채우기’에 급급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위원회는 “기업정리를 항상 새로운 기업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하지만, 궁색한 변명으로만 들린다. 이러다보니까, 이번 기업퇴출의 또다른 목표인 금융기관의 잠재부실 파악도 어렵게 됐다. 정부가 추진하는 2차 기업·금융구조조정은 기업부문의 부실을 노출시켜 금융기관에 모은 다음 금융기관에 한꺼번에 추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털어주는 방식이다. 기본 전제는 잠재부실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투명하게 드러내지 않으면, 아까운 국민혈세가 숨겨진 부실기업과 부실 금융기관으로 흘러들어가 공적자금을 또 조성해야 할 위험이 있다.
재벌 지배구조를 활용해 문제를 푼다?
이마저도 허수가 많다. 11조4천억원에는 이미 르노에 매각돼 빚정리 방안을 마무리한 삼성자동차(신용공여액 3조5천억원)를 비롯해 껍데기만 남아 있는 회사에 대한 옛날 채권까지 다 포함되어 있다. 채권단이 이미 일부는 건지고 일부는 손실로 처리해 잠재부실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현대건설이나 쌍용양회 등 덩치 큰 부실기업에 대해서는 정부와 채권단 모두 명확한 처리방안을 세우지 못한 데 있다. 정부는 수천개 하청기업의 연쇄도산 등 사회적 파장이 너무 크다는 부담 때문에, 채권단은 원칙대로 처리해 손실을 확정할 경우에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뚝 떨어져 자신도 퇴출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부 대형 시중은행들은 아직까지 이 두 기업 여신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정상기업과 마찬가지인 2% 정도만 쌓아놓고 있다. 떼일 확률을 2%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놓고서 “BIS 비율이 8%가 넘는 우량은행”이라고 주장하면 삼척동자도 웃을 일이다. 삼척동자가 웃을 일이 또 있다. 정부와 채권단이 기대하고 있는 현대건설의 정상화 가능성이다. 진념 재경부 장관이나 이근영 금감위원장은 2차 기업퇴출 발표 뒤 현대건설 처리 문제가 핵심쟁점으로 떠오르자 “스스로 부도를 막지 못하면 바로 법정관리에 들어간다”며 하나마나한 얘기를 ‘정부의 확고한 원칙’이라고 못박으면서도 “그룹 차원의 자구노력을 추진하면 법정관리는 막을 수 있다”며 일말의 기대를 고수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세 차례나 현대건설 정상화 계획을 내놓았고 그때마다 정부와 채권단은 “시장에 신뢰를 줄 만한 조처”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현대건설의 자구계획은 실행 가능성이 희박했을뿐더러 현대 스스로 약속을 어겼다. 가령 5월 말에 2차 자구계획을 낼 때 현대는 “외국 전문기관의 검증을 거쳐 7월부터 재무구조 현황을 국내외에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해놓고서 감감무소식이고, 유동성 확보를 위해 지분과 경영권을 외국회사에 넘기겠다고 약속한 현대엘레베이터는 요즘 느닷없이 정몽헌 회장 계열의 지주회사로 부상하고 있다. 현대건설에 대한 경영권 상실을 대비하는 듯, 건설이 보유하고 있던 현대상선 지분(23.7%)의 절반가량을 현대엘레베이터로 넘겨 정몽헌 회장 계열의 그룹 지배구조가 건설중심에서 현대종합상사-현대엘레베이터-현대상선으로 이어지는 삼각지배 체제로 바뀌고 있다. 현대건설의 퇴출을 피하기 위해 정부와 채권단이 내놓는 방안 가운데 더욱 가관은 ‘정씨일가 가족기업들의 지원’이다. 진념 재경부 장관은 “현대가족들이 결심하면 그룹의 모태이면서 정주영 명예회장의 자존심인 현대건설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하며 몽구·몽준 형제들뿐 아니라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회장, 정상영 KCC그룹 회장 등 방계 그룹기업의 총수들까지 직접 만나서 설득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피해자는 언제나 국민과 종업원들
정부가 핵심과제인 재벌의 지배·소유구조 개혁은 게을리하면서 퇴출위주의 구조조정에만 치중하다보면, 결국 총수의 황제경영이 빚은 과잉·과오투자의 부작용을 국민들과 힘없는 종업원들만 덮어쓰게 된다. 자체적으로는 우량기업인데도 동아건설에 대한 7천억원의 지급보증 때문에 이번에 법정관리에 들어간 대한통운이나, 이건희 회장의 ‘자동차 공화국’ 꿈을 실현하기 위한 교두보로 설립된 삼성상용차의 청산결정 과정을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특히 삼성상용차의 경우, 서울보증보험이 지급보증한 회사채 3700억원과 산업은행의 대출금 1050억원 등 7천여억원의 금융권 여신이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으며, 그룹에 입사해 ‘회장님의 숙원사업’을 떠받치기 위해 묵묵히 일해온 상용차 직원 1300여명은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게 됐다. 인천대 이찬근 교수(무역학)는 “구조조정에 따르는 고통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으니까 이해당사자들간의 마찰이 계속 생기고 그 결과 구조조정 자체가 차질을 빚고 있다”며 “원칙없고 중장기적 비전이 없는 퇴출위주의 구조조정방식 자체를 퇴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순빈 기자sbpark@hani.co.kr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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