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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북파공작원은 군인 자격 없다? 국가차원 명예회복과 보상의 핵심 걸림돌… 국방부는 생사확인 등 언제까지 외면할 텐가
북파공작원 232명 명단 첫 공개
68년이후 첩보부대인 AIU(52년부터 67년까지 북파공작원 양성·파견부대였던 육군 첩보부대 HID의 후신)에 입대한 북파공작원들의 모임인 ‘설악산동지회’ 회원들은 최근 잇따라 모임을 갖고 명예회복과 보상요구 운동에 적극 나서기로 결의했다. 설악산동지회 대표 이동안(50)씨는 “68년부터 78년까지 북파요원으로 활동한 선·후배들이 최근 모여 우리의 뜻을 결집하기로 했다”면서 “일단 생존자 파악 작업을 벌인 뒤 단계적으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70년대 북파요원들의 모임인 설악산동지회는 그 존재만으로도 현재 형성되고 있는 북파공작원 국면에서 적잖은 파문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72년 남북공동성명이후 북파공작은 더 이상 없었다’는 군 당국의 공식 주장을 정면으로 뒤엎는 ‘실체’가 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아직 조심스럽긴 하지만, 78년까지 활동한 사람을 포함해 현재 30여명 이상이 모였다”며 “대북사업을 하면서 우리 동료들이 많이 희생됐는데, 이번 국정감사에서 당시 북한을 상대로 한 무장침투·파괴공작의 실상을 낱낱이 증언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자수해 북에 생존해 있는 동료들의 신원까지 이들이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 부분이 공개될 경우 남북관계에 뜨거운 감자로 등장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김성호(민주당) 의원은 지난 3일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HID소속 대원중 1953∼56년까지 활동했던 HID 1∼3기 교육생 366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김 의원은 이들 중 적어도 232명이 53년 7월 휴전협정 체결 뒤에도 북파공작원으로 활동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의 북파공작원 명단 공개는 그동안 비공식적으로 알려졌던 북파공작원의 실체를 입증한 것은 물론 정보사령부가 북파공작원의 명단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국방부에는 북파공작원 유가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실종자 생사확인 요구가 부쩍 늘고 있다. 국방부 민원과 담당자는 “예전에는 거의 없다시피했는데 며칠 전부터 하루 2∼3건씩 공작원으로 북파됐던 가족의 생사를 확인해달라는 민원이 계속 접수되고 있다”며 “북파공작원은 비(非)군인이라서 우리가 가진 자료는 없고 정보사쪽에서 알아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50년대 북파공작원 출신 인사들의 모임인 ‘육군첩보부대 전우회’ 대표 박부서(68)씨는 “우리는 전깃불도 없이 캄캄한 사지에서 국가를 위해 활동했지만 국가로부터 버림받고 사회로부터 소외받아왔다”며 “이제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정부가 서둘러 명예회복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실 북파공작원들의 생존확인 및 명예회복 요구는 93년부터 간간이 있어왔다. 당시 광주민주화운동 보상 요구가 터져나오자 ‘잊혀진 존재’로 살아왔던 이들도 자신들의 얼굴을 세상에 알리는데 나선 것이다. 박부서씨는 현충일이면 국립묘지에 ‘한국전쟁 때 HID 부대원이었던 사람을 찾습니다’는 전단을 붙이는 등 생존 북파공작원들을 조직화하는데 앞장섰다. 박씨 등 HID 소속 북파공작원 20명은 지난해 2월 국가유공자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유공자법)에서 특수부대원(북파공작원)을 제외시킨 것이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50∼60년대 북파공작원 중 현재까지 살아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만큼 북파공작원 문제는 더 늦출 수 없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생존 북파공작원 중 한명인 여인모(71·경기도 성남시)씨는 58년 초 강원도 고성지역에서 특수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수류탄 파편이 왼쪽 무릎에 박히는 바람에 생긴 지울수 없는 상처를 안은채 고통스런 세월을 보내고 있다. 여씨는 국가유공자 상이등급을 받기 위해 4차례나 보훈처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번번이 “파편부상 정도로는 보상금을 줄 수 없다”는 대답만 듣고 있다. 여씨는 “상이용사 등급을 받으려는 노력도 이젠 지쳤다”며 “군번도 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며 대한민국을 위해 몸을 바쳤는데 돌아온 대가가 이것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53년부터 58년까지 휴전 이후 5년 동안이나 비밀공작에 나섰던 그는 “죽을 날이 얼마남지 않았는데 국가유공자 증명서라도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한숨만 폭폭 내쉬었다. 젊은 시절이 떳떳한 군인으로 인정받는 날을 죽기전에 반드시 보겠다는 것이다.
북파 거부에 뭇매, 허리 크게 다쳐
‘국가에 속고 보상에 울면서’ 분단상황 속에 숨죽여 살아왔던 북파공작원들의 명예회복 요구에 대해 국방부가 ‘적절한 조처’로 검토하고 있는 것은 △국가유공자 대우 △군인신분회복 △충혼탑 건립 등이다. 우선 국가유공자 대우에 따른 보상은 부분적으로나마 이뤄지고 있다. 국가보훈처 이철조 심사정책과장은 “국방부가 최근 국가유공자로 등록돼 있는지 확인해달라며 옛 북파공작원 28명의 명단을 보내왔다”며 “대조해본 결과 부상당한 공작원 본인 11명과 부모 1명 등 모두 12명이 보훈처 심의를 거쳐 유공자로 등록돼 보상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국가유공자법상의 전상군경(戰傷軍警)으로 처리돼 보상을 받고 있는 것이다. 국가유공자로서의 보상은 먼저 국방부쪽에서 군인·군무원 또는 경찰 신분으로 작전중 부상을 입었다는 증명을 보내와야 하고 보훈처 신체검사에서 상이등급(1∼7급)을 받아야 가능하다. 보훈처는 그러나 북파공작원 중 몇명이나 국가유공자로 등록돼 유가족이나 본인이 보상을 받고 있는지는 아직 확인할 수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현행 국가유공자법 74조 3항은 ‘59년 12월31일 이전에 전시근로동원법에 의해 동원된 자, 청년단원, 향토방위대원, 소방관, 의용소방관, 학도병, 기타 애국단체원의 전투 또는 이에 준한 행위로 사망 또는 상이를 입은 자’는 보상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50년대 실종 북파공작원들의 경우 신분이 민간인이었다 하더라도 국방부가 군무원으로 인정만 하면 보상이나 명예회복이 가능하다. 또 70년대 이후 북파요원들은 국방부가 군인신분을 소급적용해 풀어왔다. 반면 60년대에 북파됐다 실종된 2150명은 이 ‘59년 12월31일’이란 기간명시 단서조항 때문에 보훈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60년대 북파요원들은 공백상태인 셈이다.
국방부, 뒤늦게 생사확인 통보
북파공작원들의 명예회복요구가 줄을 잇자 국방부는 이 기간명시 대목을 삭제해줄 것을 국가보훈처에 몇 차례 요청해왔다. 그러나 보훈처쪽은 난색만을 표하고 있을 뿐이다. 보훈처 심사정책과 관계자는 “국방부에서도 자체적으로 북파공작원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마당인데 보훈처가 나서서 국회의원들한테 이 규정을 삭제해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냐”며 국방부쪽의 조처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방부 김승렬 인사복지국장은 이와 관련해 “이 규정을 고치기 어렵다면 그대로 두되 단서조항을 추가로 넣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파공작활동과 관련된 일을 한 적이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마땅한 표현을 넣으면 된다는 것이다. 정작 논란이 되는 구석은 북파공작원 문제가 크게 불거지자 국방부가 뒤늦게 생사확인 통보에 나섰다는 점이다. 박부서씨는 “사망·실종된 북파 공작원 유가족들의 생사확인 민원이 계속 제기되자 국방부가 2∼3년 전부터서야 40여년 전의 전사자 통보를 해주고 있다”며 “하지만 당시 작전에 참여했던 사람 2명을 데려와 보증인으로 세워야 국가유공자로 대우해줄 수 있다는데 도대체 지금 그런 사람을 어디서 찾아올 수 있겠느냐”고 어처구니없어했다.
‘내부적으로 조용히’ 해결하려는 국방부
공백상태인 60년대 북파요원들의 보상문제가 가장 큰 어려움이지만 국가유공자 대우와 보상문제는 국방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명예회복조처 가운데 또다른 하나인 군인신분회복 문제는 결코 쉽지 않은 대목이다. 국가유공자는 작전중 사망 또는 부상을 입었을 경우에만 인정받을 수 있다. 실종자 또는 상이등급 판정을 받을 정도의 부상을 입지 않은 사람은 유공자로 될 수 없다. 그래서 북파 생존자들은 군인신분이라도 회복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방부 관계자는 “군인사법상 군인은 현역으로 복무하고 있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과거에’ 공작활동을 수행했던 사람을 넣어줄 수는 없다”며 “군인신분을 부여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꼭 군인신분이 아니라도(군무원을 지칭)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을 수는 있는 게 아니냐.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을 포함해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군인 인정문제는 사실상 불가능한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생존 북파공작원들은 “군사교육훈련을 받고 의식주를 군대 안에서 해결하고 군대 통제 아래 들어가면 그날로 군인이 아니냐”며 “비록 군번을 못 받았지만 우리가 군인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냐”고 주장하고 있다. 더이상 분단비극의 희생자로 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북파공작원 충혼탑은 첩보부대를 운영했던 국군정보사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3억5천만원이 투입될 충혼탑은 경기도 성남지역에 세워질 예정이다. 그동안 군은 북파공작원 가운데 상당수가 민간인 신분이라는 점 때문에 전체 사망·실종 공작원들의 위패를 만들어 서울 우이동 망월사에 모신 뒤 합동위령제를 지내오고 있다. 현재 국방부는 북파공작원 문제를 ‘내부적으로 조용하게’ 해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분단의 그늘에 묻혀온 이들의 존재가 그랬듯 해결도 비공식적으로 이뤄지는 게 ‘국익에’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공식 보상에 나서는 것 자체가 북파공작원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고 이는 다시 무장공작원의 밀파를 금지한 정전협정을 위반한 사실을 시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국방부의 이런 눈치보기는 북파 문제가 72년 남북공동성명 이전의 ‘흘러간 과거’가 아니라, 설악산동지회에서 보듯, 그 뒤에도 지속된 데서 비롯된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54년 해군북파부대였던 UDU(Underwater Demolition Unit) 1기로 들어가 20여년간 근무하면서 수십 차례 북쪽을 다녀온 것으로 알려진 박아무개(75)씨 부자는 85년부터 해마다 국립묘지를 찾고 있다. 특수임무수행중 숨진 동료들을 추모하기 위해서다. 박씨 아들은 “추모행사때 ‘70년대 서해상 00에서 전사’ 등이라고 씌여진 묘비명도 더러 보게 된다”며 “아버지가 70년대에도 북쪽에 갔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군 당국 밖’의 정치적 결단
국방부 관계자는 “어느 나라든 첩보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북파공작활동을 언제까지 했느냐고 묻는다면 하고 있다, 안 하고 있다를 얘기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뭐가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 남파공작원 출신이었던 비전향장기수들이 북쪽으로 송환된 터이고, 이는 북한이 사실상 남파공작을 시인한 것인 만큼 우리 당국도 북파공작원의 실체를 인정하고 생사확인 등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게 제기되고 있다. 최근의 남북화해 분위기 속에서 국방부는 시간을 기다리며 여전히 줄타기만 하고 있는 형국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보상과 명예회복은 이제 ‘한다, 안 한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지가 문제”라며 “그러나 군 당국 밖의 협조가 관건이다. 즉 북파공작원 문제는 정치적, 외교적 문제다”라고 곤혹스러워했다. 어찌보면 쉬울 수 있지만 또 가장 어려울수 도 있는, 군 당국 ‘밖’의 정치적 결단이 북파공작원 문제의 열쇠라는 말이다.
조계완 기자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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