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글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6월8일 이한열 열사의 20주기 추모제가 열리고 있던 연세대 중앙도서관 앞 민주광장. “한열이가 이런 교정에서 공부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일찍 망월동으로 가버렸군요.”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인사말을 듣던 한 여학생의 눈에 이슬방울이 맺히더니 이내 또르르 흘러내렸다.
6월항쟁 당시 네 살배기였던 유민지(24·동국대 사회학과4)씨. 대학에 들어와서야 6월항쟁을 알게 됐다는 유씨는 “노동운동가로 늘 쫓기고 감옥생활을 하다 12년 전 간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유씨의 아버지는 영등포산업선교회 교육간사, 영등포 기계공단노조 사무국장, 서노협 선봉대장을 지냈던 유구영씨로 민주노총 출범에 큰 몫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추모식은 쓸쓸했다. 많은 학생들이 도서관을 드나들었지만 대부분 이한열 열사의 영정 그림이 신기하다는 듯 힐끗 쳐다볼 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추모식에 참석한 이아무개(연세대 2006년 졸업)씨는 “연예인들이 나오는 학교 축제 행사는 매년 밤을 새워가며 줄을 서서 보면서도 정작 민주주의를 앞당겨준 이한열을 외면하는 요즘 대학가 세태가 씁쓸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