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의 이라크 남성 포로 피라미드 위에서 함박 웃음을 짓는 여군. 개줄에 남성 포로를 묶어 개 끌듯 끌고 다니는 천진난만한 앳된 얼굴의 여군. 고문으로 사망한 포로 머리맡에서 ‘V’자를 그리는 여군. ‘더러운 전쟁’으로 이미 결론지어진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 여군이 최근 포로학대 사진의 마치 주인공인 것처럼 여론에 도배되면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군 간부 여성 확대가 ‘평등권’ 되나
전쟁의 속성이란 전쟁의 명분이 아무리 도덕적이라 하더라도 그 도덕성은 부식되고 끝내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규칙이 되며, 곧 공정함 따위는 문제 삼지 않는 무차별적인 복수로 이어지는 적나라한 야만성이 아니던가. 하물며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유엔의 지지조차 받지 못한, 단지 석유자원 확보와 중동권에서의 패권 확대라는 미국의 국가이익만을 위한 ‘더러운 전쟁’이라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전쟁에서 포로학대의 주역처럼 등장하는 여군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돌봄과 보살핌과 살림의 여성적 가치를 주장해온 사람으로서 분노와 당혹감과 서글픔을 느낀다.
현재 미 여군은 전체 군인의 11%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특히 파나마 침공과 1991년 걸프전을 통해 미 군대가 여성 군인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여성이 미군에 불가결한 요소임이 입증된 바 있다. 이들은 과거 단순히 간호사나 후방업무만을 담당하던 데서 벗어나 점차 전투기 조종사, 병참담당관, 기계화 부대원 등으로 전문군인화하면서 살상이 벌어지는 전투에 직접 나설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는 여성의 권익보장과 능력개발 그리고 사회참여를 확대한다는 명분으로 2003년 현재 군 간부 정원의 2.1% 수준인 3335명을 유지하고 있으며, 2020년에는 간부 정원의 5% 수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여성의 군대 진출을 여성의 시민생활에서의 경력 추구 요구나 평등권 추구라는 여성의 중요 운동 성과 가운데 하나로 보아야 할 것인가? ‘안보’의 개념이 현재처럼 정치·군사적인 의미만을 띠는 것이라면 그 답은 ‘노’이다. 군대란 철저하게 전쟁을 위한 합법적 폭력기구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전쟁과 군사적 안보를 주요 주제로 하던 국제관계의 틀도 바뀌어야 한다. 대신 ‘인간안보’ ‘사회경제적 안보’ ‘포괄안보’의 개념을 수용해야 한다.
유사 이래 전쟁의 역사는 남성의 역사이다. 기존 역사·철학·정치학에서 성역할 의미에 대한 검토는 전무했으며, 결과적으로 인류사는 여성배제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이 기록되기 시작한 그리스에서 여성의 역할은 남성 전사를 낳고 기르는 것에 국한됐다. 역사상 여성 전사가 기록돼 있기는 하지만, 이는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로 그들은 부수적인 역할을 수행했을 뿐, 전쟁을 일으키고 조직하는 당사자는 남성이었다. 따라서 전쟁에서 여성은 늘 피해자였으며, 전쟁권력의 메카니즘은 남성에 의해 만들어지고 주도됐고, 그것을 수행하는 하수인으로서 역할 일부를 여성 군인이 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최근 이라크 포로학대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가해자로서의 미군 여성과, 하루 17차례나 강간당하고 남편이 보는 앞에서 강간당한 여성이 자살을 하는 피해자로서의 이라크 여성은 모두 전쟁의 희생자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진정한 가해자, 즉 전범은 제네바협약을 무시한 채 “닥치는 대로 잡아 마음대로 해라”라는 포로 강압 수사 비밀작전을 승인한 전쟁광 럼즈펠드를 위시한 네오콘 그룹이다.
“여성으로서 나는 조국이 없다"
역사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20세기 초에 여성 평화운동이 ‘현실주의’를 표방하는 국제관계론의 시작과 함께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평화운동 경험은 전쟁과 군사적 안보를 주요 축으로 하는 남성 주류의 국제관계론에서 철저히 무시됐고, 이어 21세기 초인 현재도 ‘더러운’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여성이 평화운동의 주체로서 자리매김을 확고히 할 때이다. 전세계 여성들이여, 권고하노니 여차하면 군대는 전쟁의 당사자가 되어야 하고, 다른 나라의 나와 똑같은 여성의 생명과 존엄성을 짓밟는 인간이 되어야 하나니, 지금과 같은 안보논리가 전제되는 군입대에는 신중함을 기할지어다.
세계의 평화를 위해 “전세계 여성들이여 단결하라”. 그리고 전쟁의 단서를 제공하는 민족주의를 비판한 버지니아 울프의 얘기에 귀기울일지어다. “여성으로서 나는 조국이 없다. 여성으로서 나는 조국을 원하지 않는다. 여성으로서 나의 조국은 세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