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독자마당 > 논단 목록 > 내용   2003년12월31일 제491호
레드 콤플렉스여 만세!/ 안정애


△ 안정애/ 평화여성회 국방과제팀장

강의를 하다가 가끔 옛날 일을 예로 들 때가 있다. “이건 자유당 때 얘기인데….” 와, 웃음소리, 대부분 80년대 이후에 태어난 학생들이 자유당이 뭔지 알 게 뭔가. 아마 “호랑이 담배 먹던 옛날 옛적에…”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아직도 자유당(그리고 군사정권) 시절을 살고 계신다.

얼마 전, 민주노동당 지부에서 ‘한국사 교실’의 한 강연(항일운동과 주한미군을 주제로)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우리 어머니의 즉각적인 반응, “얘야, 그거 혹시 잘못하면 잡혀가는 거 아니냐? 사복형사라도 나와 앉아있으면 다칠지도 모른다. 웬만하면 하지 마라.” ‘노동자=시위자=빨갱이’란 잘못된 도식을, 레드 콤플렉스의 망령을 마치 종교처럼 가슴에 품고 평생을 살아오신 분.

이국 땅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

나 역시 그 사슬에서 자유스럽지 못했던 기억이 새삼스레 주마등처럼 스친다.

20년 전,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어느 날, 항일투쟁을 주제로 세미나를 막 시작하려는 찰나, “너희들은 포위됐다. 움직이지 마라”는 난데없는 확성기 소리. 곧 이어 사복형사 몇명이 들이닥쳐 우리 모두는 ‘닭장차’ 안으로 곱게(?) 모셔져 한 경찰서 대공계에 인도되었다. 누군가 속삭였다. “이 사람들이 자기 업무만 제대로 해도 이 땅에 빨갱이는 한명도 없을 거야, 킥킥….” 순간, 시위 전력이 있던 선배 한명의 얼굴이 심하게 굳어졌다. 떨리는 손으로 경찰서 안 복도까지 우산을 쓴 채 걸어들어가던 백지장 같은 선배의 낯빛은 대공계 책임자의 공갈에 그만 핏빛으로 변하는 듯했다. “너희 같은 빨갱이들은 삽 한 자루면 돼. 야산에 가서 구덩이 파게 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처치할 수 있단 말이다.” 요새도 가끔씩 삽 한 자루를 들고 가도가도 끝이 없는 울창한 숲을 정신없이 헤매는 꿈을 꾼다. 그리고 세미나를 하면서도 아직 긴장한다. 항일투쟁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빨갱이가 될 수 있으므로.

그리고 13년 전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의 한국학연구소에 방문학자로 있을 때였다. 한달에 한번꼴로 열리는 한국 관련 세미나에서 난생 처음으로 북한 사람을 보았다. 정통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는 북한의 주유엔 주재관이었다. 굳은 얼굴로 수인사에서부터 내내 영어만 쓰던 그에게 미국인 연구소장이 서툰 한국말로 충고했다. “아, 거 조선 사람끼리 조선말 쓰라우요….” 부드러워진 분위기에서 듣게 된 북한말, “내레 그 문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시오….” 이북 출신인 아버지의 평안도 사투리에 그토록 익숙해져 있었건만 아, 어째 이리도 생소하고 소름이 끼칠까. 내 안에 잠재해 있던 레드 콤플렉스가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북한 사람을 만나고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반국가단체 사람과의 회합·통신으로 걸려 ‘그림을 그리는(조직표를 만드는) 자들’에 의해 언제 간첩의 수괴로 둔갑할지 모른다는 공포심. 이 일이 있은 이후 미국 땅에서의 나의 하루하루는 혹시 어디선가 나를 주시하고 있을지 모를 눈을 의식하느라 늘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다시는 남의 나라 땅에서 북한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리라고. 하지만 몇달 뒤, ‘북-미 기독학자 세미나’에서 불가피하게 만나게 된 한 무리의 북한 사람들. 누구처럼 “이러다가 혹시 귀국하자마자 어딘가로 끌려가 세탁당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들을 의도적으로 피해다녔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리고 이탈리아 로마, 서구 제국주의의 원형지인 포로 로마노에서 김일성 배지가 선명한 하얀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은 북한 여성을 정면에서 맞닥뜨린 순간, 난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해 여름, 독일을 통해 많은 남한 학생들이 북한의 청년축전에 참석한다는 보도에 우리 식구들은 혹시 내가 그들과 함께 북한엘 가지 않았을까 노심초사하며 밤잠을 설쳤단다.

그 서슬 퍼런 단두대, 그리고 송두율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베트남을 아무 생각 없이 오가면서 난 아직 그 흔하디 흔한 금강산 여행도 못하고 있다. 그리고 강연을 못하게 나의 앞을 막아서는 우리 어머니에게 지금이 어느 세상이냐고 악다구니를 쓰면서 내 가슴 한쪽은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단독정부 수립 직후 정권안보 차원에서 반공 이데올로기의 외피를 쓰고 등장한 국가보안법. 그리고 이어지는 군사정권 아래서 민주화 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통일운동이든, 한줌도 안 되는 위정자들의 비위를 거스리기만 하면 올무에 걸려 꼼짝할 수 없었던 악법이 지금도 새파랗게 살아 그 서슬 퍼런 단두대에 송두율 교수가 저렇게 매달려 있지 않은가. 훗날 우리의 후배들은 또 한바탕 비웃음을 흘리리라. “이건 ‘국민의 정부’, 그리고 ‘참여정부’ 때도 있었던 얘긴데….”

만만세를 외쳐야 할까보다. 레드 콤플렉스여, 국가보안법이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