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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논단 등록 2003.01.08(수) 제442호

[논단] 공익의 허울

공정거래위의 해명 가운데 가장 가소로운 부분은 “공익을 추구하는 언론의 특성”을 고려했다고 주장한 대목이다. 그들은 사익추구집단과 공익추구세력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 눈이 먼 것임에 틀림없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5개 언론사에 물린 182억원의 과징금을 지난해 말 전격 취소했다. 자신의 존재와 소임을 스스로 부정한 공정거래위 행위를 어리석다고 해야 할까, 한심하다고 해야 할까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공익개념이 얼마나 실종돼 있고 훼손돼 있는지를 다시금 확인시켜준 것으로, 노무현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분 개혁바람에 찬물을 끼얹고도 남았다.

신문의 탈만 쓰면 다 공익 추구하나

이번 조처에 대한 공정거래위의 해명인즉,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최근 3년간 언론사들의 당기순이익 상황을 주로 고려한 결과라는 것이다. 해명이 가소로운 것은 3개 방송사와 조선일보가 3년 동안 1천억원 이상의 흑자를 냈다는 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총 15개 언론사에 대한 182억원의 과징금 가운데 조선일보 23억, 동아일보 62억, 중앙일보 14억원으로 조중동에 대한 금액만 99억원으로 과반을 차지한다. 공정거래위가 법과 원칙을 스스로 어기며 저지른 불공정행위에 정치적 속셈이 담겨 있지 않은가 하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언론에 대해 김대중 정부가 갖는 한계가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되고 있음을 보는 듯해 착잡함을 넘어 측은한 생각까지 든다. 마치 고문당한 자가 고문자에게 품는 애증을 보는 듯하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 소속 단 한 사람도 반대의견을 내지 않았다는 점에 이르러선 절망감마저 든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의 해명 아닌 해명 가운데 가장 가소로운 부분은 “공익을 추구하는 언론의 특성”을 고려했다고 주장한 대목이다. 공영방송과 상업방송을 구분하지 못하듯 그들은 사익추구집단과 공익추구세력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 눈이 먼 것임에 틀림없다.

과연 모든 언론이 공익을 추구하는가 사회 구성원들 대부분이 ‘공화국’(republic)의 라틴어 어원이 갖는 뜻이 ‘공적인 것’임을, 즉 ‘공익’과 ‘공공성’이 공화국의 실제적 함의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다만 5년에 한 번 대통령을 뽑는 행위로 공화국의 시민임을 확인하듯, 언론의 탈만 쓰면 모두 공익을 추구하리라는 가상의 믿음을 갖고 있다. 형식주의의 함정에 빠져 실제를 바로 보지 못하는 이 잘못은, 언론이라면 응당 권력과 자본을 견제하면서 올바른 여론을 형성해 사회에 공익을 가져오는 소명을 갖고 있다고 믿는 데서 온 것이다. 그러나 방송 매체들이 공익추구보다 시청률 경쟁을 통해 광고장사에 더 열을 올리듯, 조중동 또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구독공세를 통해 광고장사에 더 많은 관심이 있음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공정거래위의 과징금 처분을 받은 까닭이 그들이 공익에는 관심 없이 공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사익을 추구한 데 있지 않았는가.

사익추구집단인 조중동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익을 추구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줄 수 있는 까닭은 먼저 그들의 겉모습이 신문이라는 점에 있다. 자본과 권력을 견제해야 하는 게 신문이라는 인식 때문에 그들의 진짜 모습이 언론권력이며 자본이라는 점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를 알면 전체를 알 수 있는 법, 조선과 동아는 군부독재권력 시절 길거리로 내몰린 기자들에 대해 일말의 반성조차 보인 적이 없다. 공익의 탈을 썼을 뿐 실제로는 사익, 즉 권력과 자본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게 조중동 자전거일보의 진면목이다.

공정거래위는 불공정한 행위 중단하라

본디 지혜로운 사람들보다 광신자들이 더 열성을 보이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사익추구집단은 공익추구세력보다 열성을 보인다. 정몽준씨가 대통령 선거일을 1시간여 앞두고 노무현씨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자, 곧바로 사설을 바꿔 쓴 조선일보의 열성을 공익추구세력은 따라가기 어렵다. 박정희 정권 이래 역대 독재정권의 채찍과 당근 정책에 따라 독재정권의 하위수단이 된다는 조건 아래 진행된 조중동의 자본화는 이제 신문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할 만큼 공고해졌고, 형식적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정치권력이 약해지면서 그들의 언론권력은 상대적으로 커졌다. 그것이 그들의 오만과 탈법을 부른 상황적 근거다. 그들에게 공익은 그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대선을 통해 그들의 영향력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내일도 또 내일도 언론권력과 자본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언론족벌·족벌언론이라는 그들의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의 이번 조처는 불법이며 반시대적이다. 특히 “공익을 추구하는 언론의 특성” 운운은 궤변이다. 스스로 사익추구집단이라는 것을 선언하고 싶지 않으면 공정거래위는 언론사에 대한 과징금 취소 결정을 당장 취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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