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무관심한 사람들

얼떨결에 친구의 말을 믿고 탔지만, 전철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반대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우리 지금 반대로 가고 있는 것 아니야?” “뭐라구? 아니야 맞아!” 친구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하지만 전철이 섰을 때, 역이름과 전철 출입문 위의 지도에서 위치를 확인하고 나는 고집부리는 친구를 거의 끌어내다시피 하면서 전철에서 내렸다. “넌 서울에서 몇십년씩 살면서 전철 방향도 제대로 모르니. 그리고 웬 고집은….” 나의 이런 항의에 친구는 대답했다. “전철? 버스? 나 그런 거 안 타본 지 한 십년 되는 것 같아.” 나는 기막혔다. “정말 지난 십년 동안 한번도 타본 적이 없단 말야?” “학교하고 집 사이는 출퇴근 승용차로 하지, 주말에 골프장 가거나 가족 데리고 어디 갈 때도 차로 이동하지…. 오늘은 상갓집에서 술 마시게 될 것 같으니까 차를 안 가지고 온 거지 뭐.” 그는 당연한 듯 덤덤하게 대답했다.

전철을 타본지 10년 된 교수

얼마 전 친구와 같이 문상을 다녀오면서 있었던 일이다. 내 친구는 서울 소재 한 대학 교수다. 그것도 현실을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하는 인문사회학부 교수다. 그에게 서민의 삶을 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서민의 삶을 알아두는 것은 여러 면에서 유익할 텐데도 말이다. 내가 독일에 있을 때 알았던 한 물리학 교수는 한달에 몇번 정도는 일부러 공중교통수단을 이용해 시내를 돌아다닌다거나, 시장터에 가본다거나, 공장지대 등을 돌아다녀 본다고 했다. 자기 전공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어서가 아니라, 교육자로서 학자로서 세상의 현실을 잘 안다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지금 어려운 시기에 있다. 무엇보다도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심각하다. 그것은 곧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진다. 경제 이론에서는 하위 20%를 서민층으로 정의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과 거리가 있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20 대 80’의 사회로 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상적 인식에서 서민층의 폭은 꽤 넓다. 이른바 중산층이 무너진 오늘의 현실에서는 과거의 중산층을 포함 그 이하의 인구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 서민일 것이다. 그래서 서민의 삶은 상당수 ‘우리의 삶’이고 서민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다.

물론 서민 문제에 갑작스런 해결은 없다. 더구나 복합적인 현대사회에서 경제정책의 효과는 언제나 만점일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할 수 있는 일은 있으며, 그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것은 ‘서민을 잊지 않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를 잊지 않는 일인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그것이 결여되어 있다. 서민을 잊고 있을 때, 서민 문제는 큰 사회문제로 부각된다. 다시 말해, 서민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을 때, 그것에 대한 즉각적 해결은 못하더라도, 항상 ‘함께’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또한 진정한 의미에서 사회적 연대성이다. 서민 문제는 우선적으로 경제적인 것이지만, 또한 사람의 감성, 심리, 정(情), 사회·문화적 전통 등 폭넓은 영역에 속한 것이다.

서민이 곧 백성인 현실에서 정부는 너무도 당연히 서민을 의식하고 서민을 우선한 정책을 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서민이라는 범주 밖에 있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사람들이 서민을 생각해야 한다. “전철 탈 일 있나?” 식으로, 전철이나 버스 탈 필요없는 것을 자기 과시나 너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이에 속한다. “내 돈 가지고 내가 쓰는 데 누가 뭐래?” 하고 자기정당화에 익숙한 사람들도 이에 속하며, “나만 튀고 뜨면 되지” 하는 사고방식으로 사는 사람들도 이에 속한다.

서민에 대한 망각은 ‘사회의 암’

나는 오늘의 현실에서 무엇보다도 ‘무관심의 공포’를 느낀다. 서민들에게는 사회 속 ‘무관심한 사람들’의 존재가 이 겨울 차가운 밤바람보다도 더 매섭다. 더구나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들이 무관심한 사회는 고통 그 자체다. 서민에 대한 망각은 ‘사회의 암’과 같은 것이다. 더욱이 첨단의 디지털 문명 시대에는 이런 망각의 경향이 강해진다. 이는 각 신문이 다투어 ‘IT섹션’은 두어도, ‘재래시장 섹션’ 같은 것을 둘 생각은 못하는 걸 보아도 알 수 있다.

이제 ‘서민은 있다’라는 사회적 인식과 줄기찬 관심이, 곧 진정한 연대성이 필요한 때다. 정치인들은 선거를 의식해서 시장터에 가고 빈민촌에 들른다. 하지만 나는 오늘의 현실에서 비교적 경제적 안정을 갖춘 이 나라의 지성인들에게 호소하고 싶다(친구야, 이건 자네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네. 미안하네, 이해해 주게나). 어느 주말 하루라도, 아니 반나절이라도, 아니 그 반나절의 절반이라도 서민들의 삶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찾아가 보라고. 전철과 버스를 타보고, 재래시장에 가보고, 아파트촌의 공원이 아니라 달동네의 골목이라도 거닐어 보라고. 그래서 정말 ‘관심 갖는 사람들’이 되자고.

김용석/전 로마그레고리안대 교수·철학 uchronia@netsg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