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독자마당 > 만리재에서 목록 > 내용   2007년12월20일 제690호
욕망이라는 이름의 펀드

▣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연말이라 어김없이 고민이 닥쳤습니다. 지난 1년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올해의 인물’을 누구로 정할 것인가 하는 고민입니다. 그냥 지나쳐도 무방한 일일 텐데 굳이 ‘올해의 인물’을 정하려는 데는, 그로부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교훈을 얻어내 이듬해를 더 낫게 만들려는 바람이 깔려 있을 겁니다.

되돌아보니 참 많은 이름들이 떠올려집니다. 그 가운데서 우선 김용철 변호사를 기억해야 할 듯합니다. 김 변호사는 ‘마지막 성역’으로 비유되는 삼성 공화국의 심장에 화살이 되어 박혔습니다. 그는 이건희 회장의 가족 경영체제가 저지른 부도덕한 행위와 삼성을 정점으로 형성된 한국 사회의 ‘불의(不義)의 카르텔’을 내부 고발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자신을 “탐욕스럽기도 하고 기회주의자이기도 하다”고 표현했지만, 우리의 미래는 분명 그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김 변호사와는 정반대의 처지로 우리 사회의 온갖 치부를 드러낸 신정아씨도 ‘반면교사’로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진짜이든 가짜이든 고학력이면 통하는 학력 만능주의, 사적 이해에 너무나 쉽게 휘둘러지는 권력, 언론의 하이에나식 선정주의 등은 신씨를 통해 확인한 이 땅의 어두운 모습들입니다. 여전히 정치적·사법적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는 ‘BBK 사건’의 주인공 김경준씨나 한국 스포츠의 두 젊은 영웅 박태환·김연아도 올해의 인물 후보가 될 만합니다. 12월19일 선출된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 역시 올 한 해를 장식한 주연일 테지요.

그럼에도 <한겨레21>은 ‘펀드’를 꼽았습니다. 펀드라니? 당장 이런 의문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인물이 아니잖아. 게다가 2007년만 펀드의 해인가? 2006년이나 2005년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이런 설명을 드리고 싶습니다. 올 한 해, 펀드만큼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과 행동방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것은 없었다고. 그 이전과 달리,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 이상의 다양한 정치·사회·문화적 함의를 획득했다고. 물을 가열하면 점차 뜨거워지다 100도를 넘어야 끓기 시작하는 ‘양질전화’처럼 말입니다.

양질전화한 2007년의 펀드가 상징하는 것은 ‘돈을 향한 욕망의 노골화’일 겁니다. 이젠 누구든 더 많은 부(富)를 추구하는 행위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경제적 성공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칭송합니다. 그 물신화가 지나쳐 설령 성공의 과정에서 어느 정도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결과가 좋으니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10년 동안 한층 심화한 이기주의와 경쟁주의 등이 낳은 우리 사회의 자화상입니다. 그리고 그런 욕망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 사례가 17대 대선을 주도한 ‘이명박 펀드’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