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경태/ 한겨레21 편집장 k21@hani.co.kr
씨바!
죄송합니다. 독자들을 향해 던진 욕이 아닙니다. 그가 툭하면 습관처럼 내뱉는 말입니다. “없어? 없단 말이야? 씨바~.” 인상이 찡그려지기보다는 웃음이 터지는 정겨운 욕설입니다. 어느 날 그가 그런 말투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음모론 혹시 없수?” 회사 앞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중이었습니다. 다짜고짜 그렇게 물으니 생뚱맞았습니다. “뭐시기?” “<한겨레21> 기자 중엔 음모론 믿는 기자 없냐구, 씨바~.” 글쎄, 있다고 해야 하나, 없다고 해야 하나. 잠시 생각에 잠기다 썰렁하게 답했습니다. “없는데?”
음모론의 종류는 가지가지입니다. 여기서는 황우석 교수를 둘러싼 이야기를 말합니다. 누군가 나쁜 놈들이 공모해 황 교수를 돌이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뜨렸다는 의심이자 가설입니다. 이런 주장들이 인터넷에서는 환영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명을 내걸고 뛰어든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가 거의 유일합니다. 딴지 김어준 총수입니다.
저는 ‘소년탐정 김어준’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큼지막한 돋보기를 들고 범죄 현장을 누비는 코믹 버전으로 그를 떠올려봅니다. 그는 정말로 탐정처럼 뛰어다닌다고 합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서울 한강다리를 왕복하며 ‘관계자’를 만나고, 곳곳의 동조세력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헤맨답니다. 또 밤이면 밤마다 국제전화로 해외 수사망을 가동한다는 소식입니다. 증거자료가 빗나갈 때마다 꼭 이렇게 몸서리치며 비명을 지를 것만 같습니다. “안 맞잖아? 씨바~.” 김어준 총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 투지는 대단합니다. 논리의 내공도 간단치 않습니다. <딴지일보> 메인화면 머리기사를 보면 그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음모론에 집착하는 그의 ‘고독한 의심’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 기대해봅니다.
씨바!
한 번 더 죄송합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꼭 그렇게 욕했을 것만 같습니다. 강경파 이슬람 조직으로 알려진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제1당으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상식을 뛰어넘는 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칼리드 마셜, 마무드 알자하르 등 하마스의 지도자들은 이스라엘군이 몇 번이나 암살을 기도했다가 실패한 무시무시한 ‘괴수’들입니다. 그들이 거짓말처럼 정권을 잡은 겁니다.
아, 이것조차 음모일지 모릅니다. 9·11 세계무역센터 공격은 부시 정권의 음모였다는 설이 무게 있게 떠돌았던 것처럼, 하마스의 집권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음모였다는 논리가 충분히 가능합니다. 중동에서 ‘세게’ 전쟁을 일으킬 구실을 찾기 위해 선거결과를 조작했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런데 특집으로 실린 외국어대 홍미정 연구교수의 르포기사를 보니, 그 음모론엔 현실성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하마스가 너무 많았습니다.
설 연휴로 한 주를 쉬고 나니 일하기가 너무 싫습니다. 이건 도대체 누구의 음모란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