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독자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이번호 ‘만리재에서’는 필자 사정으로 쉽니다.” 간단한 알림의 글을 싣고 ‘휴업’하려 했으나 역대 어느 편집장도 ‘만리재에서’를 거른 적이 없어,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는 짧은 글을 쓰기로 했다. 이런 느닷없는 무례한 태도는, 며칠 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과정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본 뒤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심한 죄책감과 무기력증에 빠져든 데서 비롯됐다. 머릿속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아노미 현상을 겪고 있고 떨리는 손 때문에 펜을 들 수 없을 지경이니 너그럽게 용서하기 바란다.

각종 원고를 마감한 뒤 밤늦게 집필을 시도했으나, 민주주의와 역사의 발전을 가로막은 야3당에 대한 분노가 다시 끓어올라 머릿속이 혼미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국민들 대부분이 이번 탄핵의 진상과 음모를 속속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탄핵 반대 여론이 이미 형성돼 촛불집회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도 ‘휴업’ 결정에 한몫했다.

2004년 3월12일은 훗날 우리 역사에 ‘국치일’(國恥日)로 기록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번주에는 ‘만리재에서’ 대신에 1905년 을사조약 체결의 굴욕적인 내용을 폭로한 위암 장지연 선생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다시 읽어보기를 독자들께 권하고 싶다. ‘을사 5적’이 16대 국회의원 193명으로 되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