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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시를 탈출하는 휴가 차량 행렬은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준다. 연간 5주간의 유급휴가를 연중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있고, 휴가계획을 짠 뒤 끊임없이 새로운 일정과 프로그램으로 업그레이드하면서 한해를 보낸다는 유럽인들 얘기를 들으면 부럽기 짝이 없다. 유급휴가 3일에 연·월차 2일, 주말을 합쳐 일주일을 쉴 수 있으면 감지덕지해야 하는 우리의 휴가문화가 왠지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비록 업그레이드 없이 얼떨결에 떠나는 여름휴가지만 우리 모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의 주인공이기에 그 설렘과 기대감을 어찌 유럽에 비할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의 죽음을 그렇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옹졸하고 비겁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의 빈소 왼쪽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화가, 오른쪽에 노무현 대통령의 조화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은 그것을 상징하고 있다. 햇볕정책을 ‘퍼주기’라고 몰아붙이며 대북송금 특검을 관철시켰던 한나라당의 홍사덕 총무는 “특검수사가 제대로 안 돼 한 기업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특검과 청문회, 국정조사로 그 경위를 밝힐 것”이라며 다시 팔을 걷어붙인다. 특검을 받아들였던 노 대통령은 “정 회장이 남북 경협사업과 남북관계 발전에 크게 공헌해왔다. 경협이 고인의 뜻대로 흔들림 없이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때늦은 격려를 보내고 있다. 그의 도움을 받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말을 잇지 못한 것도 그를 ‘지켜주지’ 못한 만시지탄의 회한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대화를 통해 고통을 함께할 누군가가 주위에 없다는 것이 자살의 한 원인”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그들에게 일침을 놓는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었을까. 1998년 6월18일 아버지 정주영 회장은 소떼를 몰고 북녁의 고향을 찾았고, 그는 이제 한줌 유분(遺粉)이 되어 자신이 열정을 쏟았던 금강산에 뿌려지게 됐다. 유서를 쓰고 긴 ‘휴가’를 떠나면서 어쩌면 그는 남북통일이라는 설렘과 기대에 차 있었는지 모른다.
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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