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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실을 외면하는가 지구촌 곳곳에서 2월15일 반전시위가 벌어졌습니다. 뉴욕에서부터 베를린, 텔아비브, 서울, 도쿄에 이르기까지 1천만명 이상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1960년대를 눈뜨고 산 사람들에게는 파장이 같은 역사의 되풀이입니다. 반전시위는 60년대 말 세계 곳곳에서 물결쳤고 69년 절정을 이뤘습니다. 세계 주요 도시에는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 이름의 머리글자를 딴 슬로건- 어이 LBJ, 오늘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죽였나- 이 나부꼈습니다. 러셀·사르트르 같은 문인 학자들뿐 아니라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 가수 믹 재거, 그리고 급기야는 참전군인들까지 가세했습니다. 시위물결은 결국 존슨 대통령이 다음 선거에 출마를 포기하고, 북베트남 정권과의 대화를 한사코 거부해온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합니다. 반전시위는 또 절대권력은 없다는 영감을 확산시켜 세계적으로 정치·사회·성과 관계되는 모든 금기에 도전하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당시 세계가 반전의 띠를 이은 것은 베트남전의 추악한 진실 때문입니다. 미국은 마을을 부수고 주민들을 철조망 안에 가두고 제초제·고엽제·폭탄을 폭우처럼 쏟아부었습니다. 자유를 위한 전쟁으로 포장했지만, 100여년에 걸친 베트남의 자주독립을 가로막고 부패한 정권을 도와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침략전쟁임이 곧 드러났습니다. 베트남 전쟁은 우리에게 잊힌, 기억하기 싫은 전쟁입니다. 진실은 커튼에 가려져 있습니다. 베트남인들에게 그것은 처음부터 미국의 침략전쟁이었습니다. 미국이 온갖 조작·불법을 감행한 범죄적 전쟁이었습니다. 여기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해도, 미국의 이해에 따라 미국 마음대로 발을 담그고 발을 뺀 전쟁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 것입니다. 미국이 75년 사이공의 미국 대사관에서 마지막으로 떠나면서 매달리는 베트남 사람들을 떼어내는 장면에 혈맹은 없고 냉엄한 현실만 있습니다. 전쟁의 성격보다 분명한 것은, 미국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군대를 파견하고 개입하고 철수한다는 사실입니다. 냉엄한 국제사회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법칙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한미군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신줏단지로 모시는 세력들입니다. 최근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주한미군 재배치를 입에 올리자 이들은 “주한미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는 영어식 과장법으로 논의 자체를 봉쇄합니다. 지금 미국은 이라크를 때리고, 여차하면 북한도 때릴 태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미국 편에 서고 미국이 하자는 대로 따라하라는 것은 정신착란입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을 배웠다면 착란이 이렇게 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세계가 반전시위를 벌일 때 우리는 다른 길을 갔고, 그 뒤로 베트남전에 대해서는 입과 귀를 막고 살아왔습니다. 미국에서도 참전 직후부터 전쟁 비판과 불법행위에 대한 조사가 벌어진 것에 비하면 우리만 최근까지 섬에 고립돼온 것입니다. 그 결과 자동차 대국에 인터넷 강국이지만, 미국 그리고 전쟁과 평화를 보는 눈은 침침하리만치 퇴화했습니다. 아픈 과거지만 베트남전을 끄집어내고 진실을 고통스럽게 밝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육군사관학교는 최근 <한겨레21> 독자대표로 베트남 평화공원 준공식에 갔다온 강사 안정애씨의 강의를 군사작전하듯 중단시켰습니다. 그는 사실을 왜곡하지도 과장하지도 않았는데, 달리 말해 베트남전의 진실을 말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전했는데, 그것이 화살로 되돌아왔습니다. 군의 간성이라는 육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 실망스럽기 이전에 허탈합니다. 미국 육군은 모든 장교 후보생에게 미군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미 라이 학살’ 사건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한겨레21>은 안씨와 함께 육사 교장에게 어떤 근거로 그러한 조처를 취했는지 밝혀줄 것을 요청합니다. 지금 한반도를 평화로 이끌기 위해서도 베트남전의 진실은 외면할 수 없습니다. 피흘린 베트남전에서 배울 것이 아직 너무 많습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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