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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만리재에서 등록 2003.01.02(목) 제441호

[만리재에서] 당 태종과 부시

북핵 문제가 새해를 차분히 맞게 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내 마음대로 하겠다며 여차하면 핵무기도 만들겠다는 태세입니다. 협상 압박용이란 해석이 유력하지만, 사활을 건 도박이고 도발입니다.

북한의 핵 카드는 한반도와 주변에 명백한 위협입니다. 남한은 물론 국제사회가 북한의 군사적 모험주의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도발은 북한이 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도발의 배후에는 미국이 있습니다.

부시 정권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전쟁불사, 선제공격 위협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클린턴 정권도 북한을 철저히 외면하다가 미사일을 쏘아올리거나 하면 마지못해 협상 테이블에 나서는 식이었습니다.

눈과 귀를 닫고 코앞에서 선제공격을 입에 올리는 초강대국. 그러나 일탈의 순간에는 쳐다봐준 미국에 대해 사실 북한이 이런 카드를 쓰지 않으리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핵 위협은 북한입니다. 그러나 전쟁의 더 큰 위협은 미국입니다. 국방장관이 공공연히 전쟁을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실제로 핵 위기가 있었던 지난 94년 북한에 대한 공격 일보직전까지 갔었습니다. 지금의 부시 정권은 무력적인 수단을 거침없이 앞세웁니다. 덕분에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이라크를 강건너 불보듯 보다가 순간 잔등이 오싹해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고구려를 몹시 싫어한 당 태종은 644년 낙양에서 공포한 ‘토고구려조’(討高句麗詔)에서 전쟁의 이유를 다섯 가지로 들었습니다.

첫째, 당은 대국인데 고구려는 소국이다. 둘째, 고구려는 당이 설정한 국제질서를 거역하고 있다. 셋째, 당은 국정이 안정되어 있는데 고구려에서는 연개소문이 내란을 일으켜 당의 책봉을 받은 건무왕을 시해하고 제멋대로 보장왕을 세웠다. 넷째, 당의 국민은 평온한데 고구려의 백성은 고생이 많다. 다섯째, 당의 백성은 행복한데 고구려의 백성은 원한을 품고 있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공격을 위한 변명입니다.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이 취하는 태도가 1천여년 전 무지막지한 당나라와 다른 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27일 “한국인이 두려워하는 것은 북한의 핵무기가 아니라 부시 정권의 대북 강경정책”이라고 썼습니다. 옳은 지적입니다. 동시에 이것은 한-미 관계가 중대한 고비에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론 미국 내에도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여론이 있고, 한반도 주변국들도 평화로운 해결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평화 만들기는 상당부분 우리 어깨에 달려 있습니다. 자주와 평화로 월드컵 때처럼 한마음이 되면 한반도의 위기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제는 평화입니다. 평화를 만들 때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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