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hani.co.kr/h21

기사섹션 : 만리재에서 등록 2002.05.22(수) 제410호

[만리재에서] 월드컵과 탈북자

지구촌의 축제 월드컵이 곧 개막되고 세계가 주목합니다. 월드컵은 우리가 세계와 소통하는 한마당이기도 합니다.

그 축제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건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예고된 각본대로 진행된다면 이런 보도가 서울발 외신으로 타전될 것입니다.

“중국 내 탈북자 1천여명이 상하이·다롄 등에서 소형 보트를 타고 공해상으로 대거 망명했다. 이들은 목숨을 건 탈출극 끝에 중국과 남북한 사이의 공해상에 대기하고 있던 난민선으로 옮겨 타는 데 성공했으며, 한국으로 들어올 예정이다.”

지난 3월 탈북자 25명의 스페인 대사관 진입에 관여한 독일 의사 폴러첸은 월드컵 기간 중에 이처럼 난민선을 이용한 대규모 망명을 시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월드컵을 방해할 생각은 없으며, 다만 월드컵 기간 중 전 세계 언론이 한국을 주목할 것이기 때문에 그때를 이용해 탈북자 문제를 국제이슈화할 작정이라고 합니다.

탈북자 문제가 이슈화하면 월드컵에 차질이 생기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그는 “서울에서 월드컵 축제가 벌어질 때 불과 7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북한 땅에서 수많은 어린이가 굶어 죽어가고, 의약품이 없어서 죽는다는 것을 생각해보라”고 반문합니다.

이 기획의 성사 여부와 관계없이 탈북자 문제는 임계점에 다다랐습니다. 오죽하면 탈출도 탈출이지만, 민간에서 ‘국제이슈화하기 위한 난민선 기획’까지 내놓았겠습니까.

올 들어 중국주재 스페인·독일·일본·미국·캐나다 대사관에 탈북자들의 진입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선양주재 일본 총영사관에 뛰어들어간 길수네 친척이 중국 공안과 처절한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너무 사실적이어서 비현실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중국 외교가에서는 탈북자들이 자기 나라를 망명지로 택할까봐 전전긍긍하는 님비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일본이 어떻네 미국이 저떻네 하지만 누워서 침뱉기입니다.

중국주재 한국 대사관은 탈북자들을 귀찮아한다고 합니다. 중국 경찰의 눈을 피해 한국 공관에 진입한 탈북자들이 많지만 실망만 하고 돌아나온다고 합니다.

물론 정부 처지도 어렵습니다. 남북한과 중국 간에 복잡한 외교문제가 걸려 있고, 뭘 좀 하려고 하면 ‘퍼주기’ 논란에 휩싸입니다. 그래서 이른바 ‘조용한 외교’를 해왔습니다. 북한은 아예 이 문제에 눈을 감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글부글 끓는 문제를 계속 소극적으로만 대처할 수는 없습니다. 보편적 인권과 국내외 법에 의거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할 때입니다. 탈북자 문제는 인권과 통일에 대한 지렛대입니다.

상암구장에서 펼쳐질 월드컵 개막식은 평화, 상생, 화합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몇만명에 이르는 중국 내 탈북자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살아서 구천을 떠도는 처지라고 합니다. 부자가 가난한 친척 멀리하듯 하면서 평화, 상생, 화합을 노래할 수는 없습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21029000/2002/05/021029000200205220410018.html



The Internet Hankyoreh copyright(c) webmaster@new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