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만리재에서 | 등록 2001.10.16(화) 제380호 |
[만리재에서] 전태일이 있다면… “각하께선 저희들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1일 14시간의 작업시간을 10∼12시간으로 단축하시고 일요일마다 쉬기를 희망합니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평화시장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이 1969년 대통령에게 보낸 진정서입니다. 이듬해인 70년 11월13일 그는 ‘근로기준법 화형식’과 함께 몸을 불태웁니다. 그로부터 30여년, 우리 사회에는 주40시간노동제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90년 주44시간노동제가 도입되고 10년 만인 지난해 노사정간에 원칙적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변화이며, 그의 분신이 밑거름이 됐습니다. 하지만 실제 노동시간은 그렇게 줄지 않았고 새로운 노동시간 단축 논의도 길을 두고 뫼로 가듯 더딥니다. 재계는 여전히 “경제가 좀더 회복되고 성장한 뒤에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소극적입니다. 쟁점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정부 단독입법을 추진하겠다고 하자 야당이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노동시간의 역사는 임금보다도 시간의 조정이 더욱 어렵고 자본가들의 반발이 거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겨레21>은 주5일근무제에 힘을 보태기 위해 이를 생활화하고 있는 일본과 유럽국가들을 취재했습니다. 직장인의 하루는 노동을 위한 시간, 생리적 생활시간, 문화적 생활시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주 단위로 보면 일주일에 하루 쉴 경우 그 휴일은 즐기는 날이 아니라 잠자는 날, 곧 생리적 생활시간이 되어버립니다. 주40시간노동제(주5일근무제) 요구의 토대는 여기에 있습니다. 일주일에 쉬는 날과 노는 날이 하루씩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국제노동기구는 일찌기 62년 인간다운 삶을 위해 주5일근무제를 시행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노동시간이 연간 2500여 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가장 많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연간 2000시간 이상 일하는 나라는 한국과 체코뿐이라고 합니다. 경제도 결국 사람을 위한 일입니다. 주5일근무제가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면, 경제논리 이전에 인간다운 삶의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수확대와 일자리나누기에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이르면 내년부터 주5일근무제가 이뤄져 우리 생활이 바뀔지, 관문은 국회입니다. 주5일근무보다 훨씬 진전된, 주3일 또는 주1일 근무로 노동시간 단축에 앞장서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입법과 상임위 활동으로 바쁜 의원들도 있지만- 예의 “열심히 일(만)하지 않으면 경제가 결딴난다”며 제동을 건다면 국회와 국민의 거리는 더 멀어질 것입니다. 전태일은 뭐라고 할까요? “오늘날 주40시간노동제는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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