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재에서] 논쟁의 완전연소를

한국논쟁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당시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글들은 지금 들춰봐도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각자가 구사하는 ‘말펀치’에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그럴듯한 논리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판정관을 자임해보기도 합니다. 그런 논쟁들 중에는 지금에 와서 보면 누가 봐도 승패가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 있는가 하면, 현 시점에서 논의를 계속해도 의미가 있겠다 싶은 주제도 있습니다.

한국의 논쟁사를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가시돋친 감정적 언사가 별로 빠지지 않습니다. “본시 이런 글을 쓰기를 좋아하지 않지만”이라고 대개 서두는 점잔을 빼며 시작하지만, 일단 본론에 들어가면 신랄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자유부인> 논쟁도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됐습니다. 잘 알다시피 이 소설은 권태를 느낀 대학교수 부인의 자유분방한 행태를 그린 내용인데, 당시 서울대 법대 황산덕 교수가 “참다 못하여 붓을 들”고 나섰습니다. 비판의 주된 논리는 “대학교수를 사회적으로 모욕하는 무의미한 소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요즘도 걸핏하면 나오는 ‘명예훼손론’인 셈이지요. “대학교수를 사실도 아닌 허구를 써가면서 무의미하게 망신을 준다는 것은 결코 예술이라는 말만을 가지고는 변명이 아니 될 것”이라는 일갈에, 작가인 정비석은 “적어도 남의 작품을 비난하자면 그 작품을 한번쯤은 충실히 읽어보고 붓을 드는 것이 작자에 대한 예의”라고 맞받아칩니다.

예나 지금이나 ‘문화권력’은 ‘젊은 것들’의 비난을 묵살하고 ‘논쟁의 링’에 쉽게 오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나의 소론(所論)을 자의적으로 왜곡시켜놓고 거기다 엉뚱한 자기류의 주장을 붙여서 시비를 걸어온다면 이야말로 전신에 먹칠을 한 거지 아이가 흰옷을 입은 ‘의관’(衣冠)과 더불어 멱살을 잡고 싸워보자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김동리는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공연히 입씨름을 벌여봤자 득이 될 게 전혀 없으니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식의 사고는 지금도 낯설지 않습니다. 그러나 김동리는 당시의 신예평론가로,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문화 게릴라’였던 이어령 등과 본격적인 논쟁을 벌입니다. “논쟁의 ‘좌표’(座標)는 성립되지 않으나 모래알만한 근거와 이치는 없지 않다”는 게 응수의 변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논쟁의 당사자들이 서로 얼굴을 붉히면서 격렬한 논쟁을 벌여도 인간적으로는 의가 상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요즘보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넉넉했기 때문일까요. 논쟁 전에는 일면식도 없었던 황산덕 교수와 작가 정비석이 나중에는 “반가이 술잔을 나누고 마음에 조그마한 파동도 일지 않고 허심탄회한 기분으로 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는 가끔 ‘말이 통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주먹이나 우격다짐이 아니라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교환하고 논리로써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을 이르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진정 말이 통하는 사회에 살고 있을까요? 물론 예전보다 방송토론 프로그램을 위시해 토론이 활성화된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뭔가 허전하기는 여전합니다.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에 대한 토론은 차분한 논리전개보다는 감정의 배설이 앞서기 십상입니다. 막 본격적인 논쟁이 시작될 듯해 잔뜩 기대를 모은 주제가 당사자의 회피로 본격적인 토론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불이 일단 한번 붙으면 공연히 연기만 내다가 꺼지는 것보다는 완전연소되는 게 좋습니다. 타다 만 나무토막처럼 볼썽사나운 것도 없습니다. ‘사랑의 희나리’도 애처롭지만 ‘논쟁의 희나리’도 안타깝습니다.

한겨레21편집장 김종구kj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