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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도굴과 '토지의 신'
그러나 진실이 발표된 것과 꼭 일치하지는 않는 법입니다. 살인범은 몰라도 문제의 고려 고분벽화는 아니었습니다. 이 고분에 이미 10년 전에 도굴꾼들이 먼저 다녀가면서 벽화의 존재가 알려졌습니다. 3년 전에는 문중에서 문화재 신청을 했으나 그냥 넘어갔고, 고분은 계속 도굴꾼들의 손에 내맡겨졌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 문화재 보호·관리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습니다(표지이야기 16쪽). 에두아르트 푹스는 <풍속의 역사>에서 역사서술 참고자료로서 회화가 가지는 의의는 문헌자료에 필적하거나 오히려 훨씬 뛰어나다고 말합니다. 사실 각 시대의 모든 회화는 들여다보는 사람에게 무수한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킵니다. 선 하나, 색채 하나하나에 조상의 삶과 예지, 숨결이 녹아 있습니다. 이번에 ‘발견’된 벽화도 고려후기 풍속사와 복식사 연구에 획기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고 학계에서는 기대감을 표시합니다. 하지만 이미 도굴로 벽화는 적지 않게 훼손됐고 부장품도 이미 대부분 증발된 상태라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사실 도굴은 우리나라만의 고질병은 아닙니다. 중국에는 ‘낙양(洛陽)삽’이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낙양 일대의 도굴꾼들이 사용하던 삽인데, 노련한 도굴꾼들은 묘를 파헤칠 필요도 없이 이 삽을 꽂기만 하면 전해져 오는 소리나 손의 감각만으로 지하의 모든 비밀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에서는 고고학 붐이 일어나면서 1920년대 후반부터 낙양삽이 기술적인 발전을 거듭해 고고학 발굴의 전용도구가 됐다는 점입니다. 중국에 낙양삽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꼬질대’가 있습니다. 일종의 탐침봉입니다. 우리나라의 도굴꾼들 역시 이 꼬질대 하나만 있으면 만사형통입니다. 다만 중국과 달리 도굴기술과 고고학 발굴 기법이 결합했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습니다. 따지고보면 문화재 보호에서 도굴만이 문제이겠습니까. 세월의 봉인을 뜯고 햇빛 속으로 걸어나온 유물들이 땅 속에서보다 더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엄연한 현실입니다. 1960년대 초 중국의 주은래 총리는 섬서성을 시찰하러 갔다가 섬서성 정부로부터 당대(唐代) 건릉 등을 발굴하겠다는 계획을 보고받고 이렇게 거절했다고 합니다. “현재 중국은 출토된 유물을 훼손하지 않고 과학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지 못했다. 그러니 조상이 물려주신 유산은 몇년 동안 더 토지의 신께 보호를 부탁드리자.” 우리도 아직은 땅 속의 유물 보존을 ‘토지의 신’께 부탁드려야 할 형편 아닐까요? 하기야 토지의 신에게 부탁하자니 도굴꾼들이 무섭고, 밖으로 내오면 허술한 관리가 기다리고 있으니 정말 진퇴양난입니다. 문화유산 보호에 대한 일대각성과 획기적인 정책전환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김종구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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