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디찬 훗카이도 유바리 탄광촌에 남겨진 조선인들의 한맺힌 그리움
침략전쟁의 ‘타는 돌’을 캐내던 1만1천명 육신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나네
▣ 홋카이도=황자혜 jahyeh@hanmail.net
홋카이도의 중심, 소라치 지방의 남쪽에 위치한 유바리시. 메론의 특산지로, 대규모 스키장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이곳 한쪽에 조선인 강제 징용의 역사가 얼어붙은 차디찬 유배지, 유바리 탄광이 자리잡고 있다.
1912년께만 해도 광대하기 그지없었던 홋카이도 땅 전역에 걸쳐 조선인은 단 41명뿐이다. 그러나 1945년 일제가 패전할 당시엔 강제 연행으로 끌려온 이들이 무려 11만 명에 달했다. 항만, 비행장, 댐 건설 외에도 많은 이들이 탄광의 군수 노역에 동원됐다. 그리고 유바리시의 1만1천여 명 조선인들은 해방이 된 뒤에도 끝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탄광 노동자로 징용돼 검붉은 피땀을 흘려야 했던 그때 그 사람들.
차라리 세상을 뜨끈하게 데우는 일이었다면 몸을 사르겠건만, 20대의 펄펄 끓는 청춘들은 일제 침략전쟁의 길을 닦는 데 쏟아부어진 ‘타는 돌’을 캐내며 육신도 영혼도 다 태워야만 했다. 눈 덮인 이국 땅의 찬 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검은 삭신으로, 이름 없는 혼으로 떠돌며, 검붉은 그리움과 한을 고스란히 게워내고 있다.
‘흑다이아’라 불리던 유바리 탄광의 석탄은 700m 땅속에 위치한 공포와 우려되는 가스 폭발 사고, 정부의 에너지 합리화 정책으로 쇼와의 깃발을 털고 저만치 사라졌다. 하지만 ‘탄광역사마을’이란 이름으로 남겨진 옛 유바리 탄광촌 한쪽에는 아직도 돌아가지 못한 조선의 신령들이 선뜩한 돌이 되어 강제 징용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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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눈으로 길이 막혔다. 관리자의 허락 없이 들어갈 수 없다고 해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유바리 탄광역사마을 어귀의 공동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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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 밖으로 나와야만 비로소 안전할 것만 같은 갱구에 붙여진 녹색 ‘안전’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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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드’라 불리는 원추형 기기가 회전하면서 석탄벽을 무너뜨려 파낸다. 석탄이 붕괴될 때마다 이는 검은 먼지를 온전히 들이마셔야 했던 지하 갱내의 노동. 가슴을 진탕 후벼파는 듯한 역한 호흡의 현장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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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선택>의 불빛일까. 갱내 막바지에서 갱구를 바라본다. 일순 서대문형무소가 떠오른다. 몇 계단만 오르면 지상이다. 그렇다. 지하 700m의 탄광 갱내는 강제 징용과 강제 노동의 형무소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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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바리 탄광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을 위령하는 조선인들을 ‘신령의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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