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5호 표지이야기, 그 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1990년 1월 나는 모스크바 붉은광장에 서 있었다. 옛 소련이 망하기 전이라 붉은광장 옆의 크렘린 궁전에는 낫과 망치가 그려진 붉은 깃발이 겨울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공산주의의 종주국 한복판에 있는 붉은광장의 ‘붉은’은 당연히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통역을 맡은 고려인이 그게 아니라고 했다. 러시아 말에서 ‘빨갛다’가 ‘아름답다’와 같은 뜻이기 때문에 붉은광장이란 공산주의와는 전혀 관계없이 ‘아름다운 광장’이란 뜻이란다.
‘편견이 무섭구나’란 자책을 하면서 근처의 레닌 묘로 발길을 돌렸다. 단발머리의 동양인인 10대 여성 2명이 앞을 지나갔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봤더니 일본의 여고 2학년들인데 시베리아 횡단 배낭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가 한반도 남쪽의 골방에서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가 개혁이냐 배신이냐’는 뜬구름 잡기식 논쟁을 벌이는 동안 일본 여고생들은 현장에서 실사구시를 하고 있었다. 그때처럼 ‘우물 안 개구리’란 말이 섬뜩하게 가슴에 와 닿은 적이 없었다.
나도 같은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일주 시대’ 취재를 하면서 즐거웠다. 세계일주를 떠났거나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궁금증에 가슴이 부푼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세계일주 동기를 묻자, 하고 싶은 것을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세계일주 시대’에 대해 독자들로부터 가슴에 품고 있는 꿈을 일깨워줬다는 칭찬도 들었지만, 우리나라도 좋은 곳이 많은데 굳이 세계일주에 집착하는 것은 사대주의적 발상이란 지적도 들었다. 맞는 말이다.
세계일주는 충동적 유행이 아니다. 직장에 매인 사람들은 어렵겠지만 비교적 시간 여유가 있는 20대 젊은이들은 휴전선에 막힌 섬 아닌 섬 한반도에서 벗어나 넓은 세계를 직접 보길 권하고 싶다. 알아보면 큰돈 들이지 않고 세계여행을 떠날 방법도 꽤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