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백두대간을 지켜온 사람들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철저하게 배척된 백두대간을 살려낸 당사자는 재야지리학자인 고 이우형씨였다. 지난 2001년 4월29일 타계한 이씨는 1986년 한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일제가 왜곡한 우리 산줄기의 실체를 밝히면서 백두대간 문제를 처음으로 공론화했다. 그 뒤 그는 외롭게 백두대간에 대한 지리적 연구를 수행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산경표>다. 이 고서는 백두대간의 산줄기 체계를 정립한 조선 후기의 저작물로 저자 미상이다. 이를 이씨가 세상에 알리면서 백두대간의 실체가 100년 가까이 묻혀 있다가 민족의 가슴에 서서히 퍼져간 것이다. 백두대간이라는 실체를 파악하는 데는 <사람과 산>이라는 산악전문 잡지사가 큰 기여를 했다. 이 잡지는 90년 9월부터 1년 가까이 백두대간의 산줄기를 직접 종주하며 산경표와 대동여지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대표적인 여성 산악인인 남난희씨가 종주대장을 맡아 670km에 이르는 산줄기를 직접 답사했다. 그때만 해도 백두대간에 등산로가 거의 없었다. 91년 가을 고 이우형씨와 <사람과 산>이 전국 대도시를 순회하며 백두대간 강연회를 열면서 산악인들을 중심으로 백두대간의 실체가 퍼져나갔다. 이런 흐름 속에 백두대간이 사회적 관심과 현안으로 부각된 것은, 백두대간 문제를 환경적인 차원에서 제기한 녹색연합의 ‘백두대간 환경대탐사’와 ‘백두대간 보고서’를 통해서였다. 96년부터 백두대간을 한국적인 생태환경 운동의 대상이자 방법으로 인식한 녹색연합은 수차례에 걸쳐 직접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탐사하면서 훼손과 파괴로 신음하는 상황을 알렸다. 이후 정부는 백두대간의 보전에 관심을 가지면서 국토보전 정책의 과제로 대응하면서 백두대간보전법안으로 이어졌다. 통일시대에 부합하는 상징성 때문인지 북한도 백두대간 문제에 적극적이었다. 남쪽보다 먼저 백두대간의 체계를 되살린 북한은 92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조선지리대계>를 펴내면서 백두대간 줄기를 규명했고, 이후 각급 학교 교과서에도 백두대간의 실체를 실었다. 조선사회과학원에서도 백두대간을 뼈대로 하는 ‘조선의 산줄기’라는 보고서를 발간·보급했고, 이 내용은 96년 총련계 신문인 <조선신보>를 통해 소개된 데 이어 당시 남쪽 언론도 이를 받아 소개한 바 있다.
서재철 |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kioyh@greenkorea.org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