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도 그뒤 ] 2003년12월17일 제489호 

‘믿음’에 내리는 파산선고

[제487호 표지이야기, 그 뒤]

“쪽팔려도 참기로 했습니다.” 표지이야기가 나간 뒤 ‘부동산 투기와 싸우는 5인의 저승사자’ 중 한명이 보인 반응이었다. “집값이 조금 떨어지니까 자랑하려는 게 아니냐”는 주변의 시선을 받을 수 있어서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집값 안정은 되돌아갈 수 없는 개혁 과제이기 때문에 참기로 했다는 얘기다. 그는 또 “(이번 기사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절대 후퇴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퇴로를 차단해버렸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집값을 상승세로 되돌리는 정책은 결코 쓰지 않을 것임을 다시 한번 다짐한 셈이다.

그가 ‘우리’라고 했지만 이 말이 5인방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졸지에 시커멓고 칙칙한 옷차림의, 부동산값 잡으러 온 저승사자가 되고 만 5인방은 한번도 다같이 모인 적이 없다. <한겨레21>에 의해 선정되고 만들어졌을 뿐이다. 5명이 한데 어울려다니면서 일을 꾸미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5명의 합작품이랄 수 있는 10·29 부동산 안정대책 이후 시장의 ‘잘못된 믿음’은 하나둘 깨지고 있다. 5명의 철학과 구상이 한데 뭉쳐 시장의 ‘자기실현적 집값상승 기대심리’를 이기고 있는 것이다. 요즘 파산선고를 받고 있는 믿음 중 몇 가지만 꼽아보자.

하나, “부동산 거래에서는 급한 사람이 진다”. 기다리고 버티는 쪽이 이긴다는 얘긴데, 10·29 대책 이후 다주택자는 버틸수록 더 힘겨운 지경으로 내몰리게 됐다. 둘, “정부 대책이 발표된 다음에 바로 집을 사라”. 무기력한 대책에 대한 시장의 내성이 생겨서 대책이 오히려 집값을 띄운다는 속설인데, 지금은 한달 넘게 집값이 떨어지고 있고 추가 하락 기대로 매수세도 끊겼다. 셋, “정부 정책이 언젠가는 바뀔 것이다”. 건설 경기가 죽으면 다시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믿음인데, 참여정부는 경제가 침체돼도 국민들이 참고 버티면 버텼지 주택부양책은 절대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넷, “부동산으로 돈 벌려면 일단 저질러놓고 봐야 한다”. 세금 걱정 말고, 어디서 어떻게 자금을 융통하든 우선 아파트 ‘소유권’을 확보해둬야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런 성공신화는 옛말이 되고 막대한 세금부담 때문에 집 가진 게 고통스러운 시절이 오고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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