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도 그뒤 ] 2003년11월27일 제486호 

‘수사 피로증’을 걱정하며

[484호 표지이야기, 그 뒤]

기자들에게 욕심이 있다면, 자신이 쓴 기사가 세상을 바꾸는 데 미력하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484호 표지 ‘깨부숴라 검찰이여-마니풀리테와 그 적들’을 내보낸 뒤, 검찰수사가 물 흐르듯 진행되고 ‘그 적’들이 순응할 것이라고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상황이 더 꼬여가는 것 같아 맘이 편칠 않다.

한나라당은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 특검’을 고리로, 노무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국회 문을 닫고 대통령 거부운동을 펼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재계는 그룹 총수의 출국금지가 곧 대외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 내년 사업계획을 확정하지 못해 경제가 곧 망할 것처럼 부르댄다. 이런 ‘적들’의 전략은 여론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보수언론을 타고 사실처럼 유포되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곪아터지기 직전인 상처가 있는데, 일회용 반창고를 붙이고 “다 나았지?”라고 우기는 것보다는 째고 고름을 짠 뒤 새살이 돋게 만드는 것이 백번 낫지 않은가. 단기적으로 어려움이 있을지 몰라도, 새살이 돋게 만드는 잠깐 동안의 아픔을 피해갈 환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걱정스러운 것은 ‘피로증’이다. 개혁 피로증처럼 대선자금 수사 피로증이 번지면, 정치권의 보이지 않는 압력 속에서도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검찰이 오래 버티기는 힘들 것이다. 지난 표지기사 속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도,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사정운동 마니풀리테(깨끗한 손) 운동이 부족하나마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변함없는 국민의 믿음 때문이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좋은 유행가도 계속 들으면 지겨운 법이다.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매일같이 누가 몇억, 몇백억 받았다더라는 얘기가 몇달간 계속되면 곧 ‘고마해라’ 하지 않겠나.” 한나라당의 한 소장파 의원의 말에는, 그들이 꿋꿋하게 버티는 속내가 묻어 있다.

“대한민국은 이미 새로워지고 있습니다”라는 어느 광고문안이, 그저 광고 속 이야기로만 그치지 않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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