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도 그뒤 ] 2003년10월15일 제480호 

개인, 등장하다

[478호 표지이야기, 그 뒤]

기사를 쓴 뒤 가장 비참할 때는 아무 반응이 없을 때다. 다행히 478호 표지기사 ‘쿨에 죽고 쿨에 산다’를 쓰고 난 뒤 인터넷 게시판에는 많은 비판의 글들이 쏟아졌다. 가학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흐뭇했다.

스타일로서 쿨하다는 것은 분명히 우리 사회의 경제적 풍요와 사회문화적 여유에서 비롯된다. 취미생활이든 옷차림이든 스스로를 가꾸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돈과 시간이 뒷받침되는 것이며, 쿨한 스타일을 만들어주는 소비·문화 산업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쿨이 미덕이란 말은 다분히 중산층 이상의 부유한 사람들을 변호하는 계층 편향적 주장으로 들릴 수 있다. 아침 햇살 환히 들어오는 넓은 아파트 거실에서 런닝머신을 달리는 것이 쿨한 것이냐, 그렇다면 쿨하게 살 수 없는 형편의 사람들은 어쩌란 말이냐 등의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애초 기사를 쓸 때의 의도는 ‘차가운·멋진·훌륭한·가벼운’ 등의 형용사를 넘어서보자는 것이었다. 개인주의의 또 다른 서술어라고 할 수 있는 쿨이 구체적인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유난히 공동체가 강조되는 우리 풍토에서 이성관계·가족관계·조직생활 등에서 ‘개인’의 경계를 명확히 설정하고자 하는 태도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남의 눈치 보지 않는다” “맺고 끊는 걸 분명히 한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 좋은 대로 산다” 등의 문장으로 쿨을 서술하면 어떤가. 어차피 평생 책임져주지 않는 조직사회의 한 부품으로 자신을 연소시키지 않겠다는 의지, 부모나 기존 가치관에 휩쓸리지 않고 제 뜻대로 살아가겠다는 씩씩한 가치관으로 볼 수는 없을까.

그러므로 ‘쿨에 죽고 쿨에 살고’를 부르주아의 가치관을 유포시키는 괘씸한 글로 흘겨보기보다는, 사람들과의 이런저런 얽힌 관계로 끙끙거릴 때 “남은 나만큼 내게 관심없다”는 평범한 진리 정도로 ‘쿨’하게 받아들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자신의 기사를 변호하는 것은 정말 쿨하지 못한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 [478호 표지이야기] 나 지금 쿨~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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