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도 그뒤 ] 2003년10월02일 제478호 

‘국익’을 위하여

[476호 표지이야기, 그 뒤]

1980년대까지 한국이 미국에서 무기를 대외군사판매(FMS) 차관 형식으로 사올 때 이야기다.

아무리 한국과 미국이 동맹국이라고 해도, 돈이 오가는 상거래이다보니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게 당연했다. 첨단무기를 팔라는 한국과, 자국에서 쓸모가 떨어진 무기를 한국에 ‘떨이’ 처리하려는 미국이 맞설 경우가 생기곤 했다. 때문에 해마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첨단무기를 사오려고 미 국방부나 국무부를 대상으로 로비를 ‘세게’ 했다. 당시 한국 관리들은 미 정부 당국자 사무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미 당국자한테 ‘FMS 차관 때 최선을 다하겠다’는 대답을 받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미 정부 당국자의 이런 ‘립 서비스’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미국의 의사결정 구조는 의회와 행정부로 이원화돼 있었고, 의회에서 제동을 걸어버리면 아무 일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당시 한국은 행정부 독주시대였고, 대통령 한명에게 모든 결정권이 집중돼 있었다. 한-미 협상 과정에서 우리 실무자들이 온갖 논리를 동원해 버티고 있는데, 느닷없이 청와대에서 ‘수용하라’는 지시가 떨어져 맥없이 물러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당시 군인 출신 한국 대통령과 미국이 직접 거래를 한 것이다. 미국은 한국의 요청을 다원화된 의사결정 구조에 힘입어 모른 채하면서, 의사결정권을 독점한 한국 대통령에게 자신들의 요구를 쉽게 관철시켰다.

이라크 전투병 파병을 놓고 처음부터 대통령이 빨리 의견을 밝혀야 한다는 일부 의견이 있다. 하지만 이들 주장처럼 파병 관련 의사결정과정이 대통령에게 쏠리게되면 FMS 차관 사례에서 보듯 미국에 유리해질 뿐이다. 시민들은 ‘파병은 미친 짓이다’든 ‘파병은 국익이다’든 각자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쳐야 한다. 시민사회가 더욱 다양한 의견을 내놓는 게 우리 국익에 보탬이 될 것이다. ‘국론통일’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우리의 협상력만 떨어뜨린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




↑Back to th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