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도 그뒤 ] 2003년09월06일 제475호 

권노갑 비리에 침묵하는 이유

[473호 표지이야기, 그 뒤]

2년 전인가 권노갑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각종 비리 의혹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그저 그렇고 그런 기사였다. 하지만 의외로 항의가 거셌다. 한 동교동계 중진 의원은 전화를 걸어와 “김 기자 몇살이야? 도대체 뭘 알아? 우리가 목숨 걸고 민주화투쟁할 때 김 기자 코흘리개였지.” 어느 성격 급한 측근은 다짜고짜 욕설부터 퍼붓기 시작하더니 “가만 놔두지 않겠다”며 당장이라도 달려올 듯한 기세였다. 그와 비슷한 전화들 때문에 ‘소심한’ 기자는 눈을 내리깐 채 가슴 졸이며 며칠을 보내야 했다.

다시 권노갑 기사를 쓰게 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침묵뿐이다. “반갑지 않은 얘기구만”이라며 취재에 입을 다무는 것은 물론, 기사가 나온 뒤에도 전화 한통 걸려오지 않는다. 전화기가 민망할 정도다. 권 전 고문을 그토록 두둔하던 입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동지’뿐만 아니라 권노갑 퇴진에 앞장섰던 ‘적’들도 조용하기는 마찬가지다.

2년 전 ‘권 전 고문이 구체적으로 무슨 비리를 저질렀냐’는 물음에 한 정풍파 의원은 “아니 그걸 모르면 기자도 아니지”라며 주섬주섬 서류봉투를 꺼내 보이고는 “이 속에 다 들어 있어. 때가 되면 깔 거야”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뭐 그런 걸 가지고…. 무덤까지 가져가야지”라고 말한다.

모두들 침묵하는 이유는 권 전 고문의 폭로가 두려워서일까? 아니면 인간적 연민 때문인가?

그보다는 이제 그럴 ‘가치’가 없어졌다는 것이 더 냉정한 이유일 것이다. 두둔할 이유도, 미워할 이유도 없어진 것이다. 그저 검찰의 날선 칼을 힘겹게 막아내야 하는 70대 노인의 축 처진 어깨만 있을 뿐이다.

대지를 뜨겁게 달구었던 태양이 식어가고 있다. 사람인들 오죽하랴.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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