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대법관 [467호 표지이야기, 그 뒤]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대법관. 467호 표지 ‘대법관을 못 믿겠다’를 취재하면서 “2003년 7월 대한민국 대법원에 가장 필요한 대법관의 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뒤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었다. 대법원의 여러 문제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소수의견이 극히 드물다는 사실이었다. 다수결의 원리를 기본으로 사회의 다수를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행정부와 입법부의 위상에 비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 인권의식에 대한 민감성을 갖춰야 할 사법부가 획일주의에 물들었다면 존재 자체를 의심받기에 충분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실 법조계에서는 몇년 전부터 대법원 판결의 보수적 흐름에 대한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거나 “5·6공 시절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비판에서부터 ‘아예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비관적 전망도 자주 터져나왔다. ‘남성-50대-서울대 법대-판사 출신’으로 요약되는 단일화한 인맥에다, 끊임없이 ‘예스맨’을 양산하는 법원의 인사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상태에서 수십년 동안 축적돼온 폐해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갔던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 안에 현직 대법관 대부분이 바뀌고 여기에 더해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마저 교체될 예정이다. “이회창 대법관이 그립다”는 비아냥을 듣지 않으려면 사회적 다양성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고, 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깊은 인물이 반드시 포함돼야 할 것이다. 인터넷 <한겨레21> 독자 의견 게시판에 ‘정치적 기관으로서의 법원’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려주신 Marshall(dhk1120)님은 대법원의 정치적 성격에 관한 점을 제대로 지적했다. 즉, 대법원이 다양한 정책이나 이념 형성에서 중요한 구실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의 경우 정치세력들의 정책적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대법원의 중요성이 덜 부각되는 특징이 있다는 점도 곁들였다. 다른 독자들에게도 좋은 참고가 됐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