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도 그뒤 ] 2003년06월25일 제465호 

‘위기론’의 이데올로기

463호 표지이야기, 그 뒤

경제위기론은 1980년대 말 이후 불황기에 어김없이 등장했다. 경제위기론을 유포시켜온 재벌기업은 “경제위기는 고임금에 따른 기업 활력의 저하 탓”이라고 주장했다.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낳은 책임이 노동자의 고임금에 있다는 것이다. 자연히 그 처방은 임금동결 및 재벌에 대한 각종 규제 완화로 나타났다. 이러한 여론몰이는 어려운 경제 여건과 맞물려 급속히 퍼져나갔다. 경제위기론이 불거질 때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도 똑같았다. 개혁 과제의 추진을 뒤로 미루고, 기업 활력을 부추기기 위해 재계가 불안해하던 제도개혁을 느슨하게 했다. 그 결과 터진 것이 바로 ‘외환위기’다.

<한겨레21>의 표지이야기 ‘IMF보다 더하십니까?’는 ‘2003년판 경제위기론’이 이데올로기적 담론의 성격을 띤 채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물론 어려운 경제는 객관적인 ‘현실’이다. 하지만 그 원인 진단과 처방은 현실 못지않게 중요하다. 노무현 정부가 역대 정부에서 그랬듯 재계의 이데올로기에 포위돼 구조개혁을 늦추고 재벌과 다시 손잡는다면 진짜 경제위기가 닥칠 수 있다. 경제위기론이 현상에 대한 원인 분석을 왜곡하고 그 처방에 특정한 정치적 의도를 개입시키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2003년의 경제위기론은 고임금을 경제파탄의 주범으로 몰아세운 과거의 위기론과 그 양상이 비슷하다. 불황의 원인을 노동조합의 요구 분출과 재벌기업 규제 때문이라고 요란하게 제기하고, 규제를 푸는 것만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주장한다.

대기업 위주의 성장과 재벌지배의 산업구조 등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집약돼 경제불황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은 쑥 들어가고 말았다. 한 사회의 생산 주체로서, 자본주의를 이끌어가는 한 축으로서 기업가가 해야 할 몫은 무엇일까? 재벌기업들은 “오죽하면 우리가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겠냐”며 정부의 재벌정책을 질타하고 나섰다. 기업 투자 마인드가 위축돼 경제가 결딴나면 현 정부도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협박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에 고유한 생산의 무정부성으로 인해 기업은 언제나 ‘위험’을 감수하며 투자해야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경제의 숙명이다. 재벌정책과 노동자에게 책임을 돌릴 게 아니라 불황기일수록 투자, 이른바 기업가의 ‘창조적 파괴’와 혁신, 기술개발을 더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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