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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에서 ‘변심’을 다시 생각하다 461호 표지이야기, 그 뒤
<한겨레21> 461호 표지 ‘대통령의 변심’을 마무리짓지도 못한 채 이라크로 향했다. 바그다드 시내를 들어설 때 두 눈에 확 들어온 것은 ‘전쟁의 비참함’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미국의 위대함’이었다. ‘아! 어쩌면 저렇게 정확하게 때릴 수 있을까.’ 무슨 정보부인가는 옆 건물 유리창 한장 건드리지 않고 혼자서만 폭삭 주저앉아 있었다. 몇년 전 첨단공법으로 발파해체된 서울의 남산 외인아파트처럼 깨끗하게. 인공위성과 위치파악시스템(GPS) 등으로 외과수술에서 환부를 정확히 도려내는 것처럼 목표물만 골라서 공격한다는 ‘정밀폭격’의 위력이 전율로 다가왔다. 비록 몇 차례 미사일 오폭으로 체면을 구기기도 했지만, 까짓것 미국으로서야 별 대수겠는가. 누군가 말했다. “무기의 역사는 되도록 먼 곳에서 되도록 정확하게 맞추는 데 초점이 맞춰져왔다”고. 그런 점에서 지금 앵글로색슨족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에 와 있는 셈이다. 돌칼로 종족을 죽이던 원시인의 심성은 그대로 유지한 채. 그렇다면 ‘노무현의 변심’은 무죄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생존을 위해서라면 한신처럼 부랑아의 가랑이 사이라도 기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개운하지는 않다. 역사책을 들춰보면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종 외부에 전쟁을 건 사례가 종종 눈에 띈다. 만날 당하기만 하던 우리 역사에서 고려 공민왕이나 조선 효종이 모처럼 세운 ‘북벌계획’도 결국 내부 갈등을 밖으로 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그렇다면 그 반대도 성립할 것이다. 외부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 내부적으로 더 단결해야 할 필요성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노 대통령이 ‘정치범 수용소’ 운운해 북한을 자극하고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고 짜증낸 것은 사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진 것이라고는 두 주먹밖에 없는 ‘한민족’이 정밀폭격으로 무장한 앵글로색슨족에 맞설 수 있는 길은 탄탄히 맞잡은 두 손밖에 없지 않겠는가.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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