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보도그뒤 등록 2001.09.26(수) 제378호

[보도그뒤] “특별조사단을 해체하라”

기존수사 결과만 합리화시킨 군 의문사 조사… 군의문사 유족들의 가슴엔 못만 박혔다

구호소리보다 먼저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9월22일 오후 3시 ‘군의문사 진상규명과 군폭력 근절을 위한 가족협의회’(이하 군가협)와 ‘천주교인권위원회 군의문사/군폭력 대책위원회’(이하 천주교 인권위)가 공동주최한 ‘군의문사 진상규명과 군폭력 희생자에 대한 국가책임 촉구를 위한 결의대회’ 준비가 한창인 명동성당 들머리. 집회 대오 앞자리에 앉은 검은 옷의 어머니들은 군복입은 아들 사진을 껴안은 채 흐느끼고 있었다. 군 의문사로 아들을 잃은 한 때문만은 아니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시작한 국방부 앞 농성장마저 철거당하고, 거리로 내몰린 서러움이 더해진 탓이다. 집회장 옆 명동성당 진입로에 깔린 스티로폼과 그 위에 놓인 두툼한 겨울 점퍼는 천막 하나 없이 밤이슬을 맞으며 싸우고 있는 이들의 ‘오늘’을 말해주고 있었다.

자살에서 타살로 밝혀진 것 한건도 없어

9월17일 군가협 회원 30여명은 ‘국방부 민원제기 사망사고 특별조사단 해체’(이하 특조단)와 ‘군대 내 사망자, 부상자에 대한 국가책임론’을 제기하며 국방부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9월 말로 예정된 특조단 해체를 앞둔 시점이었다. 군가협 유가족들은 “국방부 특조단이 유족들의 가슴에 쌓인 한을 풀어주기는커녕 국방부에 면죄부만 준 채 끝날 가능성이 높다”며 농성 이유를 설명했다. 군관계자로만 구성된 특조단은 민원 166건을 접수해 125건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마지막 조사결과 발표를 앞둔 현재까지, 자살에서 타살로 사망원인이 바뀐 경우는 한건도 없다. 천주교 인권위는 “특조단은 재조사 기본원칙에 나오는 ‘유가족 요구시 자문위원, 언론인 등 참가하에 조사설명회 또는 공개토론회 실시’라는 사항조차 철저히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8월 중순부터 특조단 활동의 한계를 지적하며 국방부 장관 면담을 요청해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7일 오후 3시에 설치된 농성천막은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철거당했다. 이날 저녁 6시가 넘자 경찰은 “일몰 이후 시위, 천막농성은 불법”이라며 철거를 강행했고, 몸싸움이 벌어졌다. 몸싸움 과정에서 고 이상훈 훈련병의 아버지인 이정호씨가 웃옷이 벗겨진 채 연행되었고, 연로한 유족 한명은 실신해 병원으로 실려가기도 했다. 경찰은 농성천막은 물론 마이크, 발전기, 영정까지 압수해갔다. 유족들은 “자식을 잃은 것도 억울한데 천막을 부수고, 영정까지 빼앗아갈 수 있느냐?”며 목청을 높였다. 유족들은 경찰서로 찾아가 영정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농성천막을 빼앗겼지만, 농성은 끝나지 않았다. 17일 밤부터 국방부 앞에서 밤샘 노상농성이 시작된 것이다. 18일과 19일에는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 1인 시위를 하고, 저녁이면 몸싸움 끝에 경찰차에 실려 서울 외곽에 버려지고, 다시 늦은 밤 국방부 앞으로 돌아와 노상농성을 하는 일과가 되풀이되었다.

농성 나흘째인 20일에는 1인 시위마저 저지당했다. 이날 오전 11시, 군가협과 천주교 인권위는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특조단은 의문사의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설립당시의 공언과는 달리 조사과정과 결과발표에서 유족들의 가슴에 또 한번의 고통을 주면서 기존 수사결과를 합리화시키는 데 급급했다”며 다시 한번 특조단 해체를 주장했다. 이어 이들은 군폭력 예방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마련과 군대 내 사망사고에 대해 국가가 책임질 것을 요구했다. 천주교 인권위 안원영 간사는 “의혹을 제기하는 가족들에게 죽은 이유를 정확히 알려주는 것도, 설령 자살이라고 하더라도 징집한 책임을 지고 보상을 하는 것도 국가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최근 자살이라도 사망원인이 군부대에 있다면 국가 유공자로 인정된다는 법원 판례가 잇따르고 있지만, 보훈처는 여전히 자살자에 대해서는 유공자 등록이 불가하다는 원론적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형편이다.

군내 정신질환자 대책마련도 촉구

되풀이되는 연행과 농성해산에 지친 군가협 유족들은 20일 기자회견을 마친 뒤, 명동성당으로 장소를 옮겨 노상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유족들은 “엿새째 밤이슬을 맞으며 농성을 하다보니 이젠 지쳤다”면서도 “지금도 내 아들처럼 군폭력으로 고통받고 있을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길 바닥에서 쓰러지더라도 농성을 멈출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22일 집회에서 군가협과 천주교 인권위는 의문사 진상규명뿐 아니라, 군내 정신질환자 처리에 대한 대책마련도 촉구했다. 이들에 따르면, 군내에서 해마다 5천명의 정신질환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대부분 ‘조기 부대복귀’ 방침에 따라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로 군부대로 돌려보내진다고 한다. 천주교 인권위원회 안원영 간사는 “그곳에서 미쳐나왔는데 그곳으로 돌려보내는 꼴”이라며 “돌아가서 살면 다행이고, 죽으면 자살이 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 내내 흐느낌을 멈추지 못하던 고 서상일 이병의 어머니 김근자씨는 “초동수사나 재수사는 하나도 틀리지 않고 똑같이 나온다”며 “허울뿐인 재조사는 아들을 두번 죽이는 꼴”이라며 끝내 울분을 터뜨렸다. 서울역으로 거리행진을 떠나는 그의 어깨가 여전히 들썩이고 있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21025000/2001/09/021025000200109260378020.html



The Internet Hankyoreh copyright(c) webmaster@new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