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독자마당 > 캠페인 목록 > 내용   2006년06월23일 제615호
[평택 캠페인] “ 청와대 앞의 흙빛 신부님 ”

김지태 이장 구속에 충격 받고 효자동으로 자리 옮겨 단식하는 문정현 신부… 월드컵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식어버린 상황에서 가혹하고 힘든 싸움 예고

▣ 청와대 정문 앞=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정말 힘겨운 싸움이네.”

신부는 혼자말처럼 조용히 말했다. 그는 청와대 정문 앞 분수대에서 50m 떨어진 효자동 사랑방 정자에 앉아 말 없이 청와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단식은 6월15일로 열흘째에 접어든다. 신부는 김지태 대추리 이장의 구속이 확정된 6월6일 평택경찰서 앞에서 단식을 시작해 6월8일부터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4년 여름, 이곳에서 “천성산 도롱뇽들의 아우성을 잊지 말자”는 지율 스님의 단식이 있었다. 저만치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 전면 재협상을 위한 문정현 신부 단식기도’라고 쓰인 하얀 펼침막이 6월 산들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대추리 주민들, 화단에 모 심다

신부의 얼굴은 어느새 흙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협심증을 앓아온 탓에 하루에 3번씩 심장약을 먹는다. 빈속에 약을 먹으면 복통이 심해지고, 약을 먹지 않으면 심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 폐허로 변한 대추초등학교. 월드컵 열기에 파묻힌 대한민국에서 문정현 신부와 평택 주민들은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사진/ 류우종 기자)

문 신부와 오랜 시간 활동을 같이해온 오두희 ‘평화바람’ 활동가는 “어제는 물을 잘못 먹었는지 새벽에 머리에 쇼크가 왔다”고 말했다. 그 때문인지 문 신부의 누이 문현옥 수녀가 머리맡에 앉아 쉼 없이 얼굴과 가슴에 지압을 하고 있다. “그런데 몸이 아프다는 얘기를 잘 안 해요. ‘괜챦냐’고 물으면 나를 보지 말고 평택 문제를 보라고 하시네요.” 문 신부는 찾아오는 방문객들의 대거리를 하다 지쳐 6월14일부터 머리맡에 ‘묵언’이라는 두 글짜를 써놓았다.

구중서 평화바람 활동가는 “청와대에서 하루에 한 번씩 전화가 오기는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오로지 문 신부의 건강뿐이다. “평택 얘기는 묻지도 않아요.” 2년 진 지율 스님의 단식 때도 그랬던 것 같다. 그 답답함을 지율은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사람들은 모두 내 손가락만 쳐다본다”는 말로 표현했다. 청와대에 몰려든 중국 관광객들이 신부 주위에 몰려들어 영문도 모른 채 호기심 어린 눈빛을 건네고 있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김지태 이장의 구속이 신부에게 큰 충격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지태 이장과 문 신부는 정부와 주민들 사이의 대화가 다시 시작된 마당에 대화의 주체인 주민 대표를 구속시킬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5월4일부터 이틀 동안 이뤄진 국방부의 대추초등학교 철거로 주민들은 망연자실해 있었다. 날마다 주변 친인척들로부터 “그 싸움 이기겠냐”는 전화를 받았고, 철조망에 가로막힌 땅을 쳐다보며 가슴을 내리찧어야 했다. 그렇지만 김지태 이장의 구속 이후 주민들은 다시 단단히 뭉친 듯했다. 6월10일 대추리 주민들이 찾아와 신부의 잠자리 옆 화단에 모를 심었고, 국방부의 철조망이 가리지 못한 논 50구간을 찾아 다시 영농을 시작할 계획이다. 주민들이 화단에 심은 모 사이에는 “내 논에 들어가 농사짓고 싶다”고 쓰인 작은 팻말이 꽂혀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신부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서울 종로구 신교동에 사는 장순희(65)씨는 손주 지훈(7)·지민(2)이를 데리고 신부를 찾았다. 그는 “방송에서 신부님이 이곳에서 고생한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평소 신경을 많이 못 써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지훈이는 기세 좋게 신부의 품으로 파고들었지만 지민이는 신부의 얼굴을 마주 보지 못하고 금방 울상으로 변했다. “태어나서 얼굴에 수염 난 사람을 처음 봐서 그래요.” 장순희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지훈이는 “신부님 아프지 말라”고 말했고, 지민이는 더듬거리는 말로 “안녕히 계세요”라고 말했다. 돌아서는 오누이에게 신부가 “와줘서 고맙다”며 작은 화분 하나를 건넸다. 장씨는 “밤에 덮을 담요가 있냐”며 “저녁 때 다시 들러 집에 있는 담요를 좀 가져다주겠다”고 말했다.

평화 활동가들 릴레이 단식 결의

활동가들은 신부를 찾는 방문객들에게 김지태 이장을 위한 탄원서 한 장을 내밀었다. 그곳에 기자는 “저는 <한겨레21> 길윤형 기자라고 합니다. 김지태 위원장이 어쩔 수 없이 정부를 상대로 한 불복종 운동에 나설 수밖에 없는 사정을 존경하는 재판부께서 헤아리셔서 그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을 수 있도록 선처해주시기 바랍니다”고 적었다. 평화바람은 조만간 평택 문제를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리기 위해 수도권을 중심으로 평화 유랑에 나설 계획이다.

신부는 날이 저물자 피곤한 몸을 침낭 위에 뉘었다. 청와대 정문 앞에는 관광 온 중국 사람들이 하나둘씩 어슬렁거렸고, 파룬궁 지지자, 정몽구 회장의 구속을 탄원하는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직원, 황우석 교수 지지자들이 저마다 이유를 놓고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정부는 7월부터 주민들이 버리고 떠난 집을 찾아 철거를 시작할 계획이다. 그들은 작업에 나설 철거용역 업체 입찰에 들어갔다. 아침부터 신부 곁으로 모여든 젊은 평화 활동가들은 “6월19일부터 신부를 돕는 릴레이 단식을 시작하기”로 결의했다. 토고 전 1승으로 평택은 이미 흘러간 이슈로 졸아들었지만, 그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람들의 관심이 식어버린 그 싸움은 이전보다 더 힘들고 가혹한 싸움이 될 것 같다.


[들이 운다] 이장 엄마 울어서 나도 울었구만

굶기를 밥 먹듯 하고 문전옥답 만들어놓으니 내놓으라 하네

▣ 김순득(74)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28

김지태 이장의 석방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 모인 주민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눈물을 흘렸다. 단식 중인 신부님을 만나기 위해 내디딘 삼보일배의 발걸음에도 눈물이 뚝뚝 떨어졌지만 주민들을 가로막은 방패는 열리지 않았다.


저놈들 때문에 어떡하면 좋아? 저렇게 가로막으니. 신경질 나고 부아 나서 어떡하면 좋아. 즈들한테 해코지 안 하는디 왜 막어? 즈들이 도둑놈 배짱이라 그러나. 우리는 깨끗한 사람들이여. 이장 엄마 울어서 나도 따라 울었구만. 속상해 죽겄어. 이렇게 숱하게 다녔어. 작년에도 오고 여기 청와대도 많이 오고, 대사관 앞에, 국방부 앞에 매번 왔지. 열 군데 백 군데도 갔다 하면 안 빠졌지. 벌써 햇수로 4년째네 벌써.

너무너무 화가 나서 말도 못하지. 화날 때는 말을 할 수가 없어. 여때까지 살아온 게 지긋지긋혀. 난 17살에 결혼해서 26살에 여기로 이사왔어. 영감도 94년에 죽고 나 혼자 살아.

썰물 들어올 때 갯고랑 막아갖구 농사지은 겨. 비가 와야 하는디 비가 자주 안 오면, 모 심고 닷새 있다 가보면 하얗게 머리카락마냥 말라죽어 있어. 못 지어먹고 못 지어먹고. 날마다 굶기를 밥 먹듯 하고. 지금 애들은 이런 얘기 해야 곧이 안 들어. 복사풀도 뜯어다 먹고 겨를 체에 쳐서 볶아먹고. 복사풀은 고소한 맛이 나는데 겨는 볶아먹으면 골이 아파서 살 수가 없어. 그렇게 갖은 고생을 하고 인자 문전옥답 맨들어놓으니. 비용도 없이 계약도 없이 무조건 내놓라 하니 그게 정부가 할 일이여. 뜯어죽여도 시원찮지.

우리 영감이 리어카 갖고 지게 갖고 한삽 한삽 파서 갯고랑을 막은 거여. 몇 년을 고생하고도 농사 못 지어먹었어. 그렇게 고생을 해서 좋은 땅을 만들어놨는데. 이 미친 개새끼들이 아휴. 남들은, 돈 있는 사람은 직접 사기도 했는디 우리는 그러지도 못했지. 너무 짜증이 나니께 말도 못 한다구. 알통 땅 만들어놓으니 왜 그러냐구. 나같이 죽은 날이 가까운 사람은 뭐 먹고 살아. 부아 나서, 너무너무 화가 나서 말할 수가 없어. 지긋지긋하게 고생했어.

학교 때려부술 적에도 울고 짜구 별짓 다 했지. 쌀 걷어서 산 건디. 산이고 엉망진창인데 부락민이 쌀 걷어서 땅 산 거여. 우리는 그때 빚어서 닷 말 낸 거여. 닷 말도 내고 서 말도 내고 부역 내서 직접 다 진 거지. 저놈들은 어디 하나 구경이라도 한 놈들이간디. 알지도 못한 것들이 싸가지 없게. 속이 상한 게 울고 불고 해도 전경들 서 갖고. 말 한마디 못하게 개지랄이잖아. 학교 지을 적에 구경도 못한 놈들이 와서 허락도 없이 다 때려부수냐고.

인터뷰·사진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진재연



[평택 평화의 땅 1평 지키기] 대통령이여, 대답하라

91,802,582원

6월16일 현재 모금액 9180만2582원

대추리 주민들은 6월16일 청와대 앞 효자동 사랑방 공원에서 단식 중인 문정현 신부를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청와대 앞까지 3보1배로 행진해 대통령 앞으로 보내는 탄원서를 제출할 예정이었지만, 경찰의 차가운 방패에 가로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주민들은 답답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여름의 대추리 들판에는 한여름의 뙤약볕이 사정없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3보1배를 할 수도 없고 논으로 들어가 풀도 뽑을 수 없는 농민들은 전세버스를 타고 다시 대추리로 돌아왔습니다. 청와대는 끝내 말이 없었습니다.

계좌이체 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주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한겨레21>

문의 평택 범대위(031-657-8111), 홈페이지 www.antigizi.or.kr,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59-2 마을회관 2층(우편번호 451-802)

조기호(10만원) 권력 들판에꽃피리(5만원) 최정아(2만원) 인천계양고3(4만원) 이소연 박상언(2만원) 함춘희(3만원) 평화결사후원(59만원) 이기영(2만원) 대학생연합회(1백만원) 조만호(20만원) 박강성주(2만원) 김태경(3만원) 봉문수 김성만(10만원) 허태혁(50만1500원) 이장희(6만5천원) 이승훈(2만원) 이미예 나현성 마당극단좋다(10만원) 김효경(3만원) 최원형(5만원) 이준섭(3만원) 양세아(4만원) 진상현(3만원) 정은미(2만원) 정진경(3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