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자식 사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결같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즘 남극의 새끼 펭귄들은 10kg 안팎의 몸무게로 털갈이를 하며 부모의 품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3월 바다를 가로질러 남극 해변으로 이동한 펭귄떼 수백만 마리의 대역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인 셈이다. 펭귄 암컷들은 5월 무렵 산란을 한 뒤 먹이를 찾아 사냥을 떠난다. 이때 수컷들은 두 다리와 엉덩이 사이에 알을 품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데 체중의 25%에 맞먹는 에너지를 소모한다. 8월쯤 되면 부모 펭귄들은 체중이 40%나 줄어든다. 몇km나 떨어진 곳까지 헤엄쳐 새끼들의 먹이를 챙기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렇듯 부모는 자식을 위해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어머니는 딸자식을 보호하려고 ‘청부살해’라는 극단적 방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목숨 걸고 자식 보호… 물자라의 부성애

동물들의 자식 사랑에 대한 극적인 사례는 염낭거미에서 찾을 수 있다. 염낭거미는 벼과식물의 잎을 접거나 말아서 밀폐된 산란실을 만든다. 알을 낳은 염낭거미는 알이 부화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당연히 먹을거리를 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이때 염낭거미는 자식 보호와 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자신의 몸을 새끼에게 기꺼이 바친다. 부화한 새끼 거미들이 자신을 뜯어먹은 뒤 밀폐된 산란실을 빠져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목숨을 걸고 자식을 보호하는 것은 잎벌레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새끼를 보호하는 대가로 자식이 없는 것들보다 3배나 빨리 생을 마감한다. 유럽의 꼬마거미와 뿔개미는 새끼들이 음식물을 소화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먹이를 씹어서 섬유질의 이유식으로 만들어준다. 수컷도 예외는 아니다. 물자라 수컷들은 수십개의 알을 등에 짊어지고 다니며 산소와 수분을 공급한다.

이처럼 동물들이 자식을 돌보는 것은 숙명적 본능에 가깝다. 비단 포유류나 조류 등 고등동물만의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목숨을 걸고 자식을 돌보는 곤충도 10여종이나 된다. 이들은 부모라는 이름으로 침입자를 막아낼 둥지를 틀고, 참기 어려운 진통을 겪어 새끼를 낳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찾아나서고, 홀로 살아갈 체력을 비축하도록 돕는다. 인간이라면 자식을 낳으면 평생을 책임지게 마련이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고 하듯 부모는 모든 것을 참으며 자식에게 이로운 것만을 찾는다. 물론 자신의 새끼 양육을 다른 어미에게 맡기는 ‘에그 덤퍼’(Egg Dumper)들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물들은 새로운 새끼를 낳기 위한 영양분 섭취가 부실해질 것을 알면서도 자식을 돌보는 것을 회피하지 않는다. 도대체 부모가 자식을 위해 어떤 고통이라도 감내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 동물은 왜 자식을 돌보는 것일까. 죽도록 새끼를 돌보는 염낭거미(위 왼쪽). 일부일처제의 프레리밭쥐(위 오른쪽). 알을 짊어지고 다니는 물자라(아래).

최근 생화학자들은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것은 뇌의 화학작용에 의해 기획된 행위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암컷과 수컷이 호르몬의 작용에 의해 짝짓기를 하듯 특정 호르몬의 영향으로 새끼를 돌본다는 것이다. 포유류들이 자식을 돌보는 데 필수적인 것은 뇌하수체 후엽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옥시토신’(oxytocin)과 ‘바소프레신’(vasopressin)이다. 옥시토신은 암컷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고 바소프레신은 수컷이 새끼들을 챙기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기능은 오래 전부터 관심을 끌었다. 옥시토신은 암컷의 애정 행위를 이끌며 출산과 수유를 돕고, 바소프레신은 스트레스 자극에 대해 자신의 반응을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어미는 모성애의 옥시토신으로 자식과의 결속력을 높이고, 아비는 부성애의 바소프레신으로 외부 공격을 막아 튼실한 가정을 이루는 셈이다.

암컷을 어미답게 만드는 옥시토신은 암컷의 출산 과정에서 자궁을 수축시키고 아기가 먹을 젖을 분비하도록 한다. 암컷 들쥐에게 옥시토신을 주입하면 훨씬 수월하게 짝을 고른다. 게다가 교미를 한 수컷과 붙어다니길 좋아하고 핥거나 끌어안는 자세를 자주 보이기도 한다. 만일 임신에 성공했다면 혈중 옥시토신 농도가 높아지게 된다. 뇌에 옥시토신을 주입받은 쥐는 수유 기간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난다. 중추신경계의 주요 조직을 지지하고 결합하는 가느다란 섬유질로서 신경세포를 지탱하는 신경지지질이 이내 수축되는 것이다. 옥시토신으로 인해 신경 구조가 유연하게 작동하면서 감성적인 활동이 강화된다. 사람의 경우 여자가 젖을 먹이거나 성적으로 자극될 때 옥시토신 수치가 높아지며 오르가슴에 도달할 때 최고조에 이른다고 한다.

곤충들은 무엇으로 자식을 돌보게 됐나

바소프레신은 암컷과 수컷 모두에게서 분비되지만 수컷에서 훨씬 많이 나온다. 미국 중서부가 원산지인 붉은 갈색털의 설치류 프레리밭쥐는 일부일처제 생활을 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프레리밭쥐의 수컷들이 암컷에 애정을 쏟으며 새끼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것은 바소프레신의 작용 때문이다. 프레리밭쥐에게 호르몬의 작용을 막는 약물을 주입하면 교미를 하더라도 짝짓기 상대 암컷에게 각별한 애정을 표시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바소프레신 주사를 맞은 수컷은 교미를 하지 않더라도 옆에 있는 암컷에 애정공세를 퍼부으며 다른 수컷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다. 사람의 경우 바소프레신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자폐증이나 정신분열증이 있는 사람은 혈중 바소프레신 농도가 현저히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만일 혈관에 있는 바소프레신을 뇌에 주입한다면 이론적으로는 자폐증을 치료하고 인위적으로 세심한 아버지를 만드는 게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호르몬이 동물들의 자식 사랑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호르몬만으로 전부를 설명하기는 힘들다. 호르몬 이론은 부모다운 행동을 자극하는 호르몬에 반응하는 뇌의 회로가 없는 곤충들의 전략적인 자식 사랑을 해명하지 못한다. 어쩌면 이들의 자식 사랑은 거친 환경에 서식하는 생물들의 본능적 행위일 가능성도 있다. 일부에서는 출산 과정에서 작동이 시작되는 유전자가 자식 사랑을 주도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미국 워싱턴대학 생화학자 스티븐 토머스 교수팀은 수산화효소(-hydroxylase)를 생성하는 Dbh라는 유전자가 모자라면 새끼를 돌보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약제를 통해 Dbh 유전자의 활동성을 강화하려고 한다. 동물들의 자식 사랑은 생명체의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다. 하등동물은 대부분 새끼를 낳는 것으로 종족보존의 책임을 다했다고 여긴다. 지나친 자식 사랑이 사회적 문제를 낳기도 하지만 생명체가 자식을 돌보는 쪽으로 진화해온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참고자료]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나탈리 앤지어 지음, 햇살과 나무꾼 옮김, 해나무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