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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는 마력이 있다 고중숙의 사이언스크로키
영화 <허리케인>에서 백인 처녀는 열대섬의 원주민 청년에게 마음이 끌린다. 둘은 우여곡절 끝에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데, 여주인공은 어느 대목에서 “이름에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 청년의 이름은 ‘마탕기’였는데, 그 처녀는 청년의 이름에서도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이름은 언어적으로 아무런 연관도 없는, 우리가 듣기에도 어딘지 신비로움이 감도는 듯하다. 또 뭔가 어렴풋한 호감이 솟아나는 것도 같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굳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속담처럼 어떤 존재나 현상에 좀더 좋은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름은 단순히 좋은 느낌뿐 아니라 어떤 관념의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프랙털’(fractal)은 어느 한 개체의 전체 모습이 낱낱의 구성 단위를 자꾸 반복하면서 이뤄지는 경우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미국의 수학자 만델브로트는 그 이름을 ‘부분(fraction)을 닮은(-al) 모양’이란 뜻을 갖도록 지었다. 이에 따라 산맥, 해안선, 식물, 결정의 모습 등 자연계 도처에서 볼 수 있는 프랙털 현상에 대해 쉽고도 빠른 직관적 이해를 전해준다. ‘블랙홀’도 처음에는 ‘중력적으로 완전히 붕괴한 존재’라는 복잡한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나 존 휠러가 세미나를 하면서 자꾸만 이렇게 부르자 마침내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냥 ‘블랙홀’이라고 하면 안 되나요”라고 소리쳐 새로운 이름으로 거듭났다. 블랙홀은 이와 같은 간명한 이름을 가진 뒤 일반인에게도 선명한 이해를 심어주는 친근한 존재로 자리잡았다. 이런 이야기들은 어떤 일에서 내용 못지않게 형식도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과거 한참 동안 우리 교육은 너무 형식에 치우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해는 제쳐둔 채 답만 잘 얻어내면 그만인 때가 있었다. 이에 대해 당연하게도 근래 비판의 소리가 높다. 하지만 반발이 지나친 탓인지 때로는 형식을 너무 무시하는 때도 많다. 알맹이가 소중하면 포장도 예쁘게 담아내야 헛고생을 면할 수 있다. 이제부터는 한 차원 높은 단계에서 말 그대로 ‘명실상부’한 조화를 꽃피워야겠다.
고중숙 |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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