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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마음을 챙겨라! 정신건강 지키기 위한 국가적 대책 필요… 상담인력 양성하고 건강검진에 정신항목 포함
누구도 돌보지 않는 마음의 건강
정신건강 문제는 예방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해마다 500여만명의 건강보험 가입자가 건강검진을 받는데 1400억여원의 건보재정이 들어가도 정신건강을 확인하지 못한다. 국민보건 차원에서 정신건강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최근의 일이다. 보건복지부 정신보건과는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9개월 동안 전국 10개 권역의 만 18세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를 벌였다. 국가적 차원에서 처음으로 이뤄진 이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신질환 평생유병률(평생에 한번 이상 질환을 앓는 비율)이 12.7%(여성-18.8%, 남성-6.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코올·니코틴 사용장애는 뺀 수치다. 현재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서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9%도 안 된다. 현대사회에서 정신건강은 핵심적 화두로 떠올랐다. 사회경제적 여건 변화로 개인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요소가 크게 늘어난 때문이다. 게다가 자연적·고의적 재난이 끊이지 않는 ‘위험사회’에 살면서 정서적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불가능하다. 국민보건 차원에서 정신건강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WHO가 지난 1997년 8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우울증으로 인한 활동력 상실이 10%로 나타나 폐렴과, 설사, 출산합병증에 이어 네 번째를 차지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2020년에는 15%로 늘어나 심장질환에 이어 두 번째 활동력 상실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일시적 불안증이나 우울증 등이라 할지라도 그대로 두면 회복이 거의 불가능한 정신분열병으로 이환될 가능성이 있다. 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도 정신건강을 보장받지는 못한다. 불안이나 우울증은 너무 흔해 ‘마음의 감기’라고 할 정도다. 분노와 마음의 상처 등이 정신을 갉아먹고 옥죄는 바이러스로 지목된다. 마음의 바이러스는 신경세포를 갉아먹는 데 그치지 않는다. 몸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장현갑 영남대 심리학과 교수(생물심리학·한국심리학회 회장)는 “사람의 정서를 적절히 통제해 고통이나 질병에서 벗어나는 ‘심신의학’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심리상담이나 명상과 최면 등의 대체의료행위를 정신건강 예방 차원에서 표준 의료체계에 포함하는 게 필요하다. 정신건강이 육체적 질병으로 이환되기에 정신치료는 예방의료행위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치료 늦으면 면역계·심혈관계 질환 유발
실제로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은 신체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감정을 조절하는 뇌 기능의 결함으로 정서적 장애가 나타나는 것이다. 기분장애·불안장애 등이 있는 사람들은 뇌의 앞부분에 있는 전두엽 전부피질의 크기가 정상인보다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건강이 불완전한 상태에서 폭력범죄를 일으킨 사람들의 뇌 세포는 정상인보다 찻숟가락 2개 분량이 부족했다. 전두엽 전부피질은 사회적 감수성에 핵심적 구실을 하는 부위로 감정적 행동을 조절하거나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을 주관한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경험하면 해마의 신경세포가 손실되거나 위축된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데 쓰이는 세로토닌(serotonin)의 생성되지 않아 정신건강을 해치는 것이다. 한번 꼬인 뇌 회로는 좀처럼 완벽하게 복구되지 않는다. 예컨대 약물을 통해 일시적으로 복구하더라도 효과는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재생과정에서 직접 관련이 없는 회로를 건드릴 수도 있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신경과학자 캔디스 퍼트 박사는 불안·적개심 등의 부정적 정서상태가 면역체계를 직접 위협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감정을 주로 조절하는 뇌의 변연계의 신경세포들은 ‘신경펩티드’(특정 신경세포가 다른 신경세포의 신호에 따라 반응방식을 결정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수용기가 있다. 신경펩티드는 세포신호를 조절하며 인체의 면역계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정신적 고통으로 신경펩티드 같은 화학물질이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면 허피스바이러스(HSV) 같은 감염성 질환과 암이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등에 맞서 싸우는 신체의 방어수단이 파괴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몸의 질환도 알고 보면 마음의 병
하지만 신체적 이상을 느끼는 사람들이 정서적인 데서 원인을 찾기는 쉽지 않다. 스스로 신체적 증상이라 여겨 ‘닥터쇼핑’ 중독자처럼 지내도 효과를 거의 보지 못한다. 회사원 김아무개(35)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2년여 전 회사에서 상사와 갈등을 겪으며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일에 치이다 보니 끌어오르던 분노를 달리 해소할 방법이 없었다. 그 결과 몸의 곳곳에서 탈이 생겼다. 두통에 시달리기 일쑤고 늘 아랫배가 더부룩했다. 손발이 저렸고 부부생활도 거의 하지 않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내과를 들락거리고 비뇨기과까지 찾는 등 치유책을 찾았다. 그래도 신체적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신과를 찾은 뒤 비로소 자신의 병명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신과 의사는 그에게 ‘신체형 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 신체형 장애는 몸의 이상을 호소하는 신체증상을 나타내지만 실제로는 신체질환이 아닌 심리적 요인이나 갈등에 의해 일어났다고 판단되는 장애를 말한다. 언뜻 꾀병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꾀병의 신체증상이 자의적 또는 고의적인 거짓증세에 비해 신체형 장애는 환자의 의지로 증상을 조절하지 못한다. 게다가 증세도 일반적인 통증을 비롯해 소화기 계통, 성적 증상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고경봉 연세대 의대 교수(정신과)는 “환자들은 몸의 이상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단순한 신체질환으로 생각해 몸을 치료하려고 한다. 당연히 신체적 이상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도 신체적 이상을 느끼기에 정신과적 치료를 시작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한다.
9·11 테러 뒤 정신보건에 집중 투자
정서적 고통은 마음을 괴롭히고 몸을 상하게 한다. 인간의 몸과 마음이 독립적인 존재가 아닌 탓이다. 최근 병원을 찾는 모든 환자의 75% 정도가 스트레스나 기타 심리적 이유에서 병이 생겼다는 지적이 있을 정도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9월11일 역사상 가장 끔찍한 테러공격을 받은 뒤 정신건강의 문제가 국가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공포·혼란·불안 등 심리적 충격이 생화학적 무기만큼이나 위력을 떨치는 것이다. 그래서 9·11 테러의 심리적 파급효과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뉴욕시 조사에 따르면 최소한 42만여명이 테러에 따른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정신건강 대책을 서둘러 수립하고 있다. 미국 보건복지부는 산하 보건연구품질국(AHRQ)이 지원하는 ‘예방진료 특별심의회’를 통해 정신보건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기로 했다. 응급처치의가 현장에서 우울증 환자를 가려내기 위한 정신과적 질문을 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또한 뉴욕주 정신건강국이 주관하는 정신건강 관련 프로그램인 ‘리버티 프로젝트’(Liberty Project)에 1억3200만달러를 보조하기로 했다. 장기적 정신보건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정신건강을 돌보는 임상수련의들이 지역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보건교사, 구급대원, 특수교육 담당교사 등을 정신상담요원으로 육성할 방침을 세웠다.
이렇듯 국내의 정신건강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정신건강에 관한 문제를 순전히 개인적 정서의 문제로 여기는 탓이다. 심지어 현실에 대한 자각능력이 떨어지는 정신분열병 환자에 대한 대책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고작 몇몇 시·군·구에서 정신건강센터를 운영할 뿐이다. 이런 까닭에 개인이 정신건강을 챙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건강검진제도 개선안을 마련했지만 거기에도 정신건강 항목은 논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신꽃시계 보건복지부 정신건강과 사무관은 “정신질환에 대한 기초적 조사가 이제 이뤄졌을 뿐이다. 건강검진에 정신질환을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설령 인력이 있다고 해도 시간과 비용이 엄청나 깊이 있게 논의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정신건강 사회적 관리시스템 필요
그렇다면 건강을 위해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 것인가. 마음을 다스리는 환상적인 신약을 기대하는 것은 속절없는 바람에 가깝다. 일단 뇌 속에 보관된 마음의 회로를 적절히 관리하는 게 필요하다. 물론 그것은 혈압계나 체온계 같은 기기로 살펴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종찬 아주대 의대 교수(의료사회학)는 “정신건강을 사회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정서적 문제가 질병의 근원이 되는 만큼 심리학자의 활동범위를 넓히고, 건강검진에서 정신건강검진을 추가하는 등 다양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신건강은 개인의 정신적 고통과 신체적 질병을 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때론 폭력적 행동을 유발하기도 하고 기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사소한 정서적 장애를 돌보지 않아 치유가 힘든 정신질환이 되면 엄청난 사회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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