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경쟁력 내세운 영재교육 시스템의 위험성… 아동 정서 해치고 입시학원으로 전락할 수도
우리나라에서 영재교육이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1970년대부터 영재교육 관련 입법을 추진하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국가적 차원에서 영재교육에 집중하는 까닭은 무엇보다 국가 경쟁력에 충분한 보탬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부모들의 기대와 열의가 지나치다. 요즘 각 학교에서는 영재반을 개설할 수 있다. 일부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를 영재로 만들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문제는 어떤 학생이 영재인가 하는 것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0.01%, 즉 1만명에 1명을 영재아동으로 판단하고, 어떤 경우에는 전체 집단의 13%까지를 영재라고 한다. 이스라엘은 3%, 싱가포르는 대략 0.7%, 대만은 3%까지를 영재성이 있는 범위라고 본다.
영재 판정기준 모호… 준비 안 된 교원들
실제로 영재를 판별하는 평가방법은 매우 다양하고 다면적이다. 따라서 여러 전문가들이 참여해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순히 IQ가 얼마 이상이라든지, 성적이 얼마 이상이라든지 하는 식의 판별은 영재의 판정기준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영재성은 특권이 아니라 또래집단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일종의 이상 심리현상으로 볼 수 있다. 영재들의 병리현상으로는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낮은 사회성, 스트레스와 좌절감, 실패를 두려워하는 극단적 완벽주의, 정규 교과목을 무시하는 경향 등을 꼽을 수 있다. 유아영재의 경우에는 기억력이 탁월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숫자, 추상적 단어, 집중력 등에서 또래보다 앞선다. 비동시적인 정서발달은 영재아의 전형적 특징이다. 한 가지 능력은 아주 뛰어나지만 다른 영역은 아주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아동이 영재인지의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잠재된 개별적 특성이다.
우리나라는 해마다 열리는 국제정보올림피아드(International Olympiad for Informatics, IOI)에 대표학생들을 파견한다. 대표학생은 전국의 중·고등학교에서 선발된 4명의 학생으로 최종 구성된다. 이들은 초기 전국대회(한국정보올림피아드)에서 입상한 약 30여명의 학생을 몇번의 과정을 거쳐서 걸러낸 영재 중의 영재다. 거의 수만 대 일의 경쟁을 뚫고 선발되는 이들의 공통된 특성은 우리들이 이해하기 힘든 독특한 자신만의 언어와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조그마한 힌트에도 매우 빠르게 전체의 본질을 이해하는 특성이 있다.
최근 정부당국은 부산과학고를 과학영재고로 개편해 본격적인 영재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영재교육을 담당할 교원과 학생을 뽑고 있다. 영재교육의 당면과제는 잘 준비된 교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영재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영재교육에 대한 지식이 크게 부족하다. 예컨대 어떤 능력이 있는 학생을 잠재적인 컴퓨터 영재로 판단해야 할지 등에 관한 기준이 정립되지 않은 실정이다. 지역 영재센터의 지도교수들이 대부분 개별연구와 강의를 병행하면서 영재교육에 참여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각 지역 대학이 운영하는 과학영재센터를 수료하는 학생에게 제공하는 ‘사사과정’은 더욱 부담스럽다. 일종의 일대일 개별과외로 대학 연구실에서 주마다 학생을 가르치는 과정이다. 빠듯한 연구시간을 다시 사사과정에 할애하는 것은 힘겨울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는 영재학교 교원 120시간, 영재학급 교원 60시간 이상의 연수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2005년까지 약 6천명의 영재교육 전문교원을 배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목표만 있을 뿐 밑그림은 불투명하다. 전문교원들을 교육할 전문기관이나 교육과정의 목표 등이 뚜렷하지 않은 것이다. 그 정도의 교육으로 영재교육 전문교원을 배출한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금의 영재학교 프로그램이 전공별로 보통 대학 1, 2학년에서 배울 필수적인 내용(기초필수과목)들로 구성된 것도 문제다. 대학에서 배울 내용을 먼저 가르치는 것이 영재교육인지 의심스러운 것이다. 그것이 창의성 개발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영재교육을 왜곡하는 장본인은 무엇일까. 바로 서울대를 정점으로 서열화된 대학체체다. 현재 지역별로 대학에서 운영하는 과학영재교육센터(중학생이 입학함)에는 물리반·생물반·화학반·지구과학반·수학반·정보과학반 등이 있다. 여기에서 가장 입학 경쟁이 치열한 학과는 수학과다. 컴퓨터 시대이고 실험실이고 하는 따위는 소용이 없다. 오직 대학입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이유으로 수학반은 경쟁률이 가장 치열하다. 그것도 고급과외를 무상으로 교육받는 것이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또한 각종 경시대회 입상자를 우대하는 대학입시 정책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영재교육에 이은 경시대회 입상은 서울대에 입학하기 위한 가장 빠른 지름길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는 특수과학고 학생들이 제 전공을 벗어난 법대나 일반사회계열과 같이 학과에 아무런 제한 없이 입학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재교육 운운하는 것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애매한 교육의 희생양 만들지 말라
지금도 많은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를 영재아로 만들려고 막대한 투자를 한다. 인터넷에는 영재교육 사이트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런 노력의 성과는 미미할 것으로 예측된다. 영재에 대한 판정기준이 정립되지 않았고, 교육 목표도 애매한 실정에서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자칫 영재 만들기 프로그램이 도리어 평범하고 건전한 시민으로 성장할 아이를 망칠 수도 있다. 심하게 다그치면서 정서적으로 상처를 입혀 학습능력을 떨어뜨릴 가능성까지 있다. 최종 결과로 나타나는 점수로 영재를 판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동의 인지과정을 매우 면밀하게 관찰해 그 결과로 판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 과정은 매우 비경제적이고 힘든 작업일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영재교육을 위해서라면 효율을 핑계로 대출해서는 안 된다. 영재아를 키워 국가 경쟁력에 이바지하도록 한다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불완전하고 고통받는 정서를 사회적으로 포용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정부는 소수를 위하기보다는 다수의 관점에 서는 게 필요하다. 영재아 중심이 아니라 장애아나 문제아들을 적극적으로 보듬어야 한다.
조환규/ 부산대 교수·컴퓨터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