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나노기술은 실현 가능한가강건일의 과학읽기 열역학 법칙에 의하면 더운 공기가 찬 공기와 섞인 다음에는 원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미지근한 공기를 덥고, 차게 다시 분리할 수는 없을까? 19세기 물리학자 맥스웰은 만일 중간에 분자를 선택하는 작은 장치들이 있어 더운 분자만을 한 방향으로 몰 수 있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뒤 이 가상적 장치는 ‘맥스웰 귀신’(Maxwell demon)이라고 불리게 됐다. 맥스웰 귀신은 파인만에 의해 부활했다. 그는 1959년 미국 물리학회의 강연에서 작은 규모의 물체를 다루는 문제를 말하는 가운데 “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원자를 배열할 수 있는지의 마지막 문제가 있다”라고 했다. 그는 이것이 물리법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하며 그렇게 된다면 “물리학자들은 화학자들이 종이 위에 그려내는 어떤 것도 합성해낼 수 있다”고 밝혔다. 원자나 분자의 규모가 나노(10억분의 1)미터인 점에서 그는 오늘날 나노과학을 말한 것이다. 그런 날이 찾아올 것인가? 파인만은 원자수준에서 관찰하고 조작하는 방법이 나온다면 생물학의 문제 해결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며 그 방법의 개발은 필연적이라고 했다. 이러한 예측은 불과 20여년이 지난 1980년대 초 비니히, 로러에 의한 주사전자현미경(STM)을 시작으로 원자력현미경(AFM) 등 주사탐침현미경(SPMs)이 개발됨으로써 증명됐다. 1990년 니켈 결정 위에 크세논 원자를 옮겨 놓아 그린 ‘IBM’이라는 글자가 나노과학의 도래를 상징한다. 나노기술이 시작된 지 10여년밖에 되지 않았으나 나노물질을 응용한 신소재 개발은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다. 탄소나노튜브 등 유기분자, DNA 등 생물학적 물질, 그리고 원자에 기초한 컴퓨터의 개발도 연구되고 있다. 미항공우주국(NASA)의 나노기술에 대한 관심도 이 때문이다. 지구 인접 행성을 넘어 성간 탐사에는 경제적인 초소형 탐사선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한 컴퓨터, 감지기, 에너지 장치 등의 개발은 나노기술에 의해 가능하며 그 근간에 특히 생물학적 물질의 모방 연구가 중요하다. 이 가운데 나노기술사회의 예측도 나오고 있다. 그 중심인물은 1970년대 MIT 학생 시절 우주생산시스템을 공부할 때부터 나노기술에 빠졌던 드렉슬러이다. 그는 어셈블러라고 부르는 분자로봇을 광고한다. 이 나노봇(nanobot)은 원료로 원자를 사용하여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고 또한 자가복제가 가능한 만능장치이다. 이것으로 우주여행에 필요한 식량과 약 등 무엇이든지 자가조달할 수 있으리라고 한다. 이러한 드렉슬러 유형의 꿈에 대해 과학자들 사이에 “이 분야는 사람의 마음에 혈류를 따라 수영하는 로봇을 상상시키기 때문에 출발이 잘못됐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나노물질 C60의 구조를 결정한 스몰리는 나노봇은 실제가 아니며 “불가능한 어린애 같은 환상물이다”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나노봇이 새로운 인공 생명체나 공포물을 연상시킴으로써 나노기술의 이미지를 훼손시켰다고 비판한다. 전 숙명여대 교수·과학평론가 dir@kops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