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과학 | 등록 2001.11.06(화) 제383호 |
[과학] 성체줄기세포를 주목하라! 윤리적 문제없이 조직·장기로 분화… 자기 몸에서 줄기세포 얻어 면역거부 극복
최근 생물공학을 둘러싸고 가장 치열하게 논쟁이 벌어지는 주제가 ‘줄기세포’(stem cell) 문제이다. 줄기세포란 여러 차례 반복해서 분열이 가능하고, 스스로 복제할 수 있는 자기복제 능력을 가지고 있고, 여러 조직으로 분열할 수 있는 분화능력을 가진 세포를 뜻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특성 중에서도 조직이나 장기로 분화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 때문에 줄기세포는 질병치료나 장기이식을 위한 연구로 과학계의 큰 주목을 받아왔다. 그런데 문제는 이 줄기세포를 얻는 방법에 있다. 얼마 전까지 줄기세포는 사람의 배아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왔기 때문에 배아에서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난자와 정자가 수정해서 수정란이 생긴 뒤 분열을 시작해서 4, 5일이 지난 상태에서 배아는 100개에서 200개 사이의 세포로 이루어지고, 그중 일부가 앞으로 어떤 조직이나 장기로도 자라날 수 있는 만능(pluripotent) 분화능력을 가진 줄기세포가 된다. 이것을 배아줄기세포라고 부른다. 이론상 이 배아줄기세포는 적절한 제어를 통해 불치병 환자를 치료하거나 장기이식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특정한 장기로 발달시킬 수 있기 때문에 유전자 조작 곡물 이래 생물공학의 실질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중요한 분야로 급속히 부상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윤리적 쟁점들
그러나 줄기세포 연구가 윤리적, 사회적 논쟁을 빚는 것은 배아줄기세포를 얻는 방법이다. 지금까지 배아줄기세포는 불임치료를 위해 생산된 잉여배아를 사용하는 방법과 체세포 핵이식 기술을 이용해서 수정을 거치지 않고 배아를 복제하는 방법이었다. 불임치료를 위해 여분으로 만들어져서 냉동 보관되는 잉여배아를 사용해서 줄기세포를 얻는 방법은 우선 배아의 생명으로서의 지위를 둘러싸고 윤리적 논쟁을 야기한다. 연구자와 의사 중에는 수정 뒤 14일 이전까지의 배아는 생명이라기보다 세포 덩어리로 간주해야 하며,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의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 배아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종교계를 비롯한 일반적인 대중의 정서는 생명이 수정과 동시에 시작된다고 여기기 때문에 배아를 이용한 실험은 인간에 대한 생체실험과 마찬가지로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또 여성계는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활성화될 경우 호르몬 주입을 통한 과배란 유도가 성행하게 되므로 여성의 몸에 심각한 인권침해가 조장될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한편 일부 연구자들이 진행시키고 있는 배아 복제를 통한 줄기세포 연구도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 방법이 복제양 돌리를 만든 것처럼 수정을 거치지 않고 체세포의 핵을 난자에 이식해서 배아를 만들기 때문에 윤리적 문제가 없다고 말하지만, 이렇게 복제된 배아도 자궁에 이식되면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윤리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핵을 이식할 난자를 얻는 과정에서 정당한 동의 과정을 거쳤는지도 쟁점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 사람이 아닌 다른 동물의 난자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불법으로 간주하는 이종간(異種間) 유전자 조작이라는 훨씬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올해 과기부를 중심으로 ‘생명윤리기본법’(가칭)의 골격을 마련하기 위해 조직된 생명윤리자문위원회에서 가장 격렬한 토론이 벌어진 대목도 체세포 핵이식기술을 이용한 배아복제 연구의 허용 여부였다.
성체줄기세포의 가능성
그렇다면 줄기세포 연구는 불가능한가? 최근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주최한 ‘인간줄기세포 연구의 가능성과 한계’라는 토론회에서 윤리적 문제가 많은 배아줄기세포가 아닌 성체줄기세포 연구의 가능성이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성체줄기세포는 이미 1960년부터 연구가 진행되어왔고, 배아 이외에도 탯줄의 혈액, 골수, 그리고 그 밖의 성인조직에도 줄기세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져왔다. 성체줄기세포는 모든 조직으로 분화할 능력은 없지만 해당 장기나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배아줄기세포에 비해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토론회에서 성체줄기세포의 전망을 발표한 서울대 수의학과 강경선 교수는 배아줄기세포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에 분화조절 연구가 복잡한 반면에 성체줄기세포의 경우 분화의 방향으로 최소한 ‘그 장기조직’이란 방향을 설정하고 연구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장기나 조직의 생산을 위해 필수적인 과정인 분화 조절이 배아줄기세포에 비해 쉬울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성체줄기세포는 자기 몸에서 줄기세포를 얻기 때문에 장기이식의 가장 큰 어려움인 면역거부 반응을 극복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 우리 몸의 면역체계는 이식된 장기를 외부 침입자로 간주해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그러나 자신의 몸에서 줄기세포를 꺼내 분화시켜서 필요한 장기를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이런 문제는 훨씬 줄어들 수 있다. 최근 연구결과는 그동안 성체줄기세포를 둘러싼 편견이 사실이 아님을 밝혀주고 있다. 가령 성체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처럼 모든 장기나 조직으로 분화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그러나 성체줄기세포도 해당 장기나 조직이 아닌 다른 장기나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지면서 성체줄기세포의 유용성이 배아줄기세포에 비해 뒤지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유전적 이유로 태어날 때부터 특정 장기나 조직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줄기세포를 이용할 수 없다는 생각도 더이상 사실이 아님이 밝혀진 셈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최근 시민단체와 종교단체는 물론, 일부 연구자들 사이에 줄기세포 연구의 방향이 배아가 아닌 성체줄기세포 연구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폭넓게 제기되고 있다. 이제 막 연구가 출발하고 있는 시점에서 줄기세포 연구가 사회·윤리적으로 바람직한 쪽으로 방향을 잡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김동광/ 과학평론가·과학세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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